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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오늘도 아름다운 날일 수 있다

[김재동의 틱, 택, 톡]

김재동의 틱, 택, 톡 머니투데이 김재동 기자 |입력 : 2012.09.01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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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갯마루를 올라선 사내는 나무그늘을 찾아들었다. 십오리길 종달음쳐온 다리쉼도 할 겸 어쩐지 요동치는 심장박동도 달래볼 요량이었다.

방앗간집 외동딸이라 들었다. 참하다 건네들었다. 중신을 넣기 전 눈으로 확인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설레는 사내 눈에 쓰개치마를 덮어쓴 댕기머리 처녀의 모습이 보였다. 처녀는 고개를 오르는 중년여인을 반색으로 맞으며 짐 보따리를 건네받는다. 그런 처녀의 자태가 사내 눈에 고와보였다. 본의 아니게 사내는 털레털레 모녀 뒤를 따라 마을로 길을 잡았다. 모녀는 마을 한켠 방앗간 사립으로 들어섰다.

“인자 얘기지만 난 임자를 그때 미리 봤네.” 2006년 봄, 갑상선암이 재발한 어머니를 모시고 꽃구경 가는 차안에서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다. “하여튼 의뭉스런 양반이라니까” 차창으로 시선을 돌리는 어머니의 눈매가 아련해졌다.

#. 국민학교 저학년 무렵으로 기억된다. 그날도 동네형들 따라 논으로 메뚜기를 잡으러 갔었다. 교과서며 공책에까지 바알갛게 배어든 김치에 넌더리가 날 때쯤 어머니가 기름에 달달 볶아주시는 메뚜기는 도시락 반찬으로 대단한 인기였다.

눈 시린 하늘이 있었고 누런 들이 있었다. 기억이란 게 아름답게 윤색되기 마련이지만 어쨌건 참 아름다운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동네 형 중 하나가 이미자를 흉내내 노래를 불러제꼈다. 시린 하늘만큼이나 어쩐지 서러운 곡조였다. 지금이야 곡조도 가사도 까먹었지만 이름 하나는 남아있다. ‘두영이’. 집에 오니 이모가 알려주었다. 그 이름 두영이는 ‘유괴된 아이’라고. 그 슬픈 이름 ‘두영이’는 그렇게 뇌리에 각인되었다.

불현듯 떠오른 그 이름을 검색해보았다. 잘못알고 있던 탓에 한참 걸렸다. ‘조두형’. 이미자씨노래 제목은 ‘두형이를 돌려줘요’였다. 위키 백과사전엔 1963년 11월 마포구 공덕동에서 당시 6살 나이로 납치된 아이라고 나온다.

조두형 유괴사건은 그렇게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 끝내 못찾은 ‘두형이’란 이름은 어쨌거나10여년 이상을 온 국민의 입에서 안타깝게 회자됐었다.

#.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이 ‘Aa3’로 상향됐거나 말거나 살림살이가 힘들다. 청년실업도 심각한데 조기퇴직도 못지않다. 퇴직자들이 줄줄이 창업하다보니 기존 중소상권이 망가진다. 물어보면 둘에 하나, 혹은 셋에 둘은 ‘00푸어’라 답하리라.

왕따자살, 생활고 자살도 빈번하고 각종 성범죄에 연쇄살인, 묻지마 살인 등 민심도 흉흉하다. 북한이 하룻밤이면 서울을 점령한다고 하고 일본이 독도는 자기네 땅이라고 우긴다. 태풍도 쌍으로 올라와 볼라벤이 지나가니 덴빈이 덤빈다. 대선을 앞두고는 공천헌금파문으로 누가 누가 구속되고 유력 후보를 향한 마타도어에 니 편 내 편 정신없이 소란스럽다.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잠이 들면 깨기 싫은, 뭉뚱그려 한마디로 ‘정말 살기 힘든’ 세월이다.

그런 판에 묵은 기사 하나를 보았다. 2006년 2월 ‘서울 용산 초등생 납치 살해사건’으로 외동딸 허미연양(당시 11세)을 잃은 부모의 이야기. 그 부모는 2007년 1월부터 10년을 기약하고 매년 1천만원씩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하고 있다. 이 기부금은 ‘미연이의 수호천사기금’이 되어 강력범죄 피해자 가족들을 돕고 있다. 이들 부부가 적은 글귀가 감동적이다. “소중한 딸아이를 잃었습니다. 슬픔이 분노가 되지 않기 위해 작은 실천을 해봅니다...”

50년전엔 두형이를 애달파하는 마음들이 있었다. 지금은 미연이를 기리는 마음들이 있다. 세상은 그런 선한 의지들이 꾸려간다. 왕년의 김대두, 우범곤이나 지금의 유영철 정남규 강호순 오원춘 따위 끔찍한 이름들은 선한 의지들이 끌어가는 세상을 어쩌지 못한다.

전쟁을 두 번이나 치른 내 부모님들이 구질구질한 가난과 전쟁처럼 싸워온 삶 속에서 터득한 “살다보면 옛말 할 날 온다”는 교훈은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당신들이 살아내신 그 험한 세월을 아름답게 반추하시던 어머니의 아련한 눈길이 그립다.

기억은 신통하게도 모진 고통은 경감시켜주고 좋은 일은 더욱 아름답게 윤색하는 효능이 있다. 그래서 이 살기 싫은 2012년의 날들도 아름답게 회상되는 어느 날이 올 것이다. 우리의 선의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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