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자살한 男, 아들 손잡고 모텔 가서···

고(故) 최진실씨의 5주기 추모식이 열린 지난 10월2일 오전 경기도 양평군 갑산공원묘역을 찾은 어머니 정옥순 여사를 비롯한 동료 연예인인 이영자, 홍진경 등 지인들이 애도하고 있다/ 사진=뉴스1

# "아내를 (자살로) 잃은 지 2개월을 갓 넘겼다. 내 아내의 장례를 내 손으로 직접 치러야하는 비정상적인 현실에서 시간을 어찌 보냈는지 모른다. 아내의 마지막 얼굴을 만져보면서 '그래 잘가라. 나도 곧 뒤따라 갈게'를 속으로 되뇌었다. 한탄과 원망 속에서 새벽 늦게 잠든 아들 녀석을 바라보면서 모텔방 컴퓨터를 켰다. '자살'을 입력했다. 자살예방핫라인 '1577-0199'이 보였다. 무작정 전화를 눌렀다. 이곳 '자작나무' 선생님들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서울시자살예방센터 자조모임 '자작나무' 소속 유가족 김모씨의 수기 중)

지난 26일 고(故) 최진실씨의 매니저 박모씨(33)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박씨는 지난 2008년 최씨가 사망하기 전 자택으로 데려다 준 매니저로 알려져 있다. 앞서 2010년 2월에는 최씨의 남동생 최진영씨가 우울증으로 직접 생을 마감했고, 지난 1월에는 전 남편이었던 야구선수 조성민씨가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자살은 이처럼 주변사람에게 강한 파급력을 지닌다.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다.

세계보건기구에서 발표한 자살예방 지침서에 따르면 자살은 강한 파급효과를 갖고 있어 1명이 자살할 경우 가족, 친구 등 그 영향을 받는 '자살유가족'이 약 5~10명씩 발생한다.

자살유가족은 자살의 위험에 노출돼 있는 자살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 미국정신의학회는 자살자 유가족이 받는 정신적 충격을 '참사'로 분류했고, 이를 강제 수용소의 경험과 동급으로 정의했다.


자살자 1명당 5명의 자살유가족이 생긴다고만 가정해도 지난 1년간 발생한 유가족은 7만7065명. 그러나 유가족 자조모임 등에 나가 심리치료를 받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정택수 한국자살예방센터장은 "자살 유가족이 자살할 확률은 일반인에 비해 6배나 높은데도 불구하고 유가족은 사실상 방치돼 있다"며 "유가족 사후 지원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것이 자살예방을 막는 최선책"이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자살유가족 지원프로그램은 여전히 미흡하다. 서울시에서 자살유가족 지원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곳은 서울시자살예방센터, 사랑의전화 등 손에 꼽을 정도다.

국내에서 가장 활발한 유가족 자조모임인 서울시 자살예방센터 자조모임 '자작나무'의 경우 모임에 참가하는 유가족이 한번에 20명 정도에 불과하다.

자살 유가족을 최일선에서 접하고 있는 조연정 서울시 자살예방센터 네트워크 및 유족지원팀 정신보건사회복지사는 유가족 지원프로그램이 활성화 되지 못하는 이유를 자살 문제에 대해 폐쇄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찾았다.

조 복지사는 "자녀가 사망했음에도 사회적 편견 때문에 유학갔다고 둘러대고 제대로 장례를 치르지 않는 분도 있었다"며 "고인이 사망한 뒤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갖고 슬픔을 나눌 시간을 가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경우 대다수의 유가족들이 자살 문제에 폐쇄적인 사회 분위기 때문에 정상적인 애도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과 캐나다의 경우 추수감사절 1주일 전 토요일을 '자살생존자의 날'로 지정해 고인의 사진을 들고나오거나 고인 생전에 입던 옷을 입고 나와서 거리를 걸으며 고인을 추억하는 행사를 갖는다. 또 '밤길 걷기 행사'를 통해 참가자들이 걷는 거리에 따라 자살예방을 위한 기부 행사와 유가족들이 모여 강연을 하거나 고인을 추모하는 행사를 갖기도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조 복지사는 "폐쇄적인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 꿈도 못 꿀 일"이라고 씁쓸해 했다.

자살유가족지원사업에 투입된 인력이 부족한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지난해 서울시 자살자수는 2722명. 1년에 1만명 이상의 자살유가족이 발생하지만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에서 자살유가족 지원 업무에 배정된 인원은 5명에 불과하다. 인천시 역시 지난해 872명이 자살해 4000명 이상의 자살유가족이 발생했지만 이들을 지원하는 데 배정된 인원은 단 1명뿐이다.

조 복지사는 "사회복지사나 심리치료사 등 관련 인력이 좀 더 늘어나면 심리치료에 소극적인 자살유가족들을 직접 찾아가 적극적인 자살 예방 사업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