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로 간 '일감' 소급과세…2조 증여세 '전쟁'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덕중 국세청장이 지난해 11월2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뉴스1제공.

감사원이 지난해 4월 권고한 현대글로비스와 롯데쇼핑 등 9개 대기업 일감몰아주기 증여세 소급과세 논의가 국세청에서 기획재정부로 넘어갔다.집행부서에서 결정을 내리기 힘드니 법을 만든 곳에서 해석을 해 달라는 의미다.

기재부의 결정은 2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이는 일부 대기업들의 편법 부 이전 관련 증여세 부과에 중요한 근거가 될 것으로 보여 관심이 집중된다.


9일 기재부와 과세당국에 따르면 국세청은 지난해 말 현대글로비스와 SK C&C, CJ, 롯데쇼핑, GS, 동국제강, 신세계, STX, 대선주조 등 9개 대기업의 편법 부 이전에 대한 2004년부터 2012년까지의 증여세 소급과세 여부에 대해 기재부 세제실에 유권해석을 의뢰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국세청으로부터 의뢰를 받은 것이 맞다"며 "그러나 현재 새법개정에 따른 시행령 작업을 2월까지 마무리 지어야 해 관련 유권해석은 잠시 미뤄둔 상태"라고 말했다.

기재부의 유권해석은 빨라야 3월에나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기재부 예규를 다시 국세청이 검토한 후 과세 여부를 판단한다고 봤을 때 상속·증여세법의 완전포괄주의 원칙에 의거한 일부 대기업 증여세 소급과세 여부는 4월을 넘길 것으로 관측된다.


◇9개 대기업에 대한 감사원 증여세 과세 근거는?

9개 대기업에 대한 일감몰아주기 증여세 소급적용 논란은 지난해 4월 감사원의 권고가 시발점이 됐다. 감사원은 당시 감사보고서를 통해 "대기업 최대 주주들이 자녀 등이 보유한 비상장주회사에 일감몰아주기 등을 통해 편법적으로 부를 이전했는데도 국세청이 제대로 증여세를 부과하지 않았고, 기재부도 소극적으로 법을 운영했다"고 강조했다.

감사원의 이 같은 지적은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증세법)에 2004년부터 명시된 완전 포괄주의 규정에 의거한다. 법에 별도로 면세조항을 두지 않는 한 상속 및 증여로 볼 수 있는 모든 거래에 세금을 물릴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상증세법 2조3항에는 '경제적 가치가 있는 재산을 직접·간접적인 방법으로 무상 이전하는 것'과 '기여에 의해 타인의 재산가치를 증가시키는 것'을 증여로 보고(증여의제) 과세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감사원은 이들 9개 대기업이 전환사채, 법인분할 등 세법에 적시되지 않은 편법증여로 거액의 세금을 회피했지만 기재부와 국세청은 증여개념을 폭 넓게 해석해 과세할 수 있도록 세법 규정을 개정했으면서도 과세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 대기업 일감몰아주기 두고 1년 소비한 이유는?

지난해 감사원이 관련 감사보고서를 발표하자 기재부와 국세청은 난감해 했다. 과세 근거는 있지만 누구에게 얼마만큼의 이익이 정확히 증여됐는지(과세표준)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법에 없어 유야무야 됐던 '아킬레스건'을 감사원이 집어냈기 때문이다.

현재는 대주주가 특수관계에 있는 법인(주식보유 비율 3%초과)과의 거래가 매출의 30%를 넘고, 이를 통해 이익을 내게 했다면 증여세를 부과하는 근거가 상증세법에 명시돼 있다. 일감몰아주기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마련된 조치다. 세액 산출 방식도 새롭게 정했다.

그러나 이는 지난해부터 적용이 됐다. 감사원은 세법에 일감몰아주기 증여세 과세표준 근거가 명시되기 전이면서도 완전 포괄주의 원칙이 적용된 2004년부터 2012년까지의 부의 편법 증여분에 대해 증여세를 부과하라고 권고를 한 것.

감사원의 보고서대로라면 9개 대기업은 지난해부터 적용된 새로운 세액 산출 방식이 아닌 기존의 50% 세율(30억 원 이상 증여는 50% 세율 적용)을 적용받고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될 경우 9개 기업의 소급 과세 총액이 약 2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감사원의 지적사항을 받아들여 2012년 이전 과세 방식으로 이들 대기업에 증여세를 부과하기로 결정을 하더라도 다시 과세표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문제에 다시 직면할 수밖에 없다. 국세청도 감사원 권고 이후 2013년 내내 전문가 설문 및 내부 토론 등을 통한 의견 수렴을 했음에도 결론을 도출하지 못했고 결국 공을 기재부로 돌린 것이다.

◇'폭탄' 떠 안은 기재부의 결론은?

'폭탄'을 떠 안게 된 기재부의 한 고위 관계자도 난감함을 표시했다. 그는 "일단 소관 과에서 검토 중이지만 해석으로 풀릴 상황이 아니다"라며 "과세가 불가능하진 않다. 문제는 (법에 내용이 없어서) 증여이익(과세표준)을 어떻게 계산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현행 규정(일감몰아주기 증여세)은 2012년 사업년도 이후이기 때문에 적용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세법을 연구 중인 전문가들은 대부분 정부의 과세가 불가능할 것으로 관측하는 분위기다. 한 조세전문 교수는 "과세 여부를 두고 당국과 납세자가 충돌할 경우 최대한 납세자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 세법의 기본적인 원칙"이라며 "감사원 권고대로 9개 대기업에 증여세 소급과세를 하는 것은 세법의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국세청이 지난해 세법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대다수의 응답자들이 '불가' 방침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경기침체로 세수 부족이 심각한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해 이례적으로 과세 방침을 결정할 수도 있다는 기류가 조심스럽게 정부 내에서도 감지되는 상황이다.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대기업 일감몰아주기 소급과세와 관련해 국세청이 자체적으로 결정을 하지 못하고 기재부에 유권해석을 맡긴 것만 봐도 깊은 고민이 느껴지는 대목"이라며 "그 동안의 사례를 봤을 때 기재부도 명확한 결정을 내려 하달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