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는 SPA브랜드, 백화점서 쫓겨난 사연은···

자라와 H&M 같은 글로벌 SPA(제조·유통 일괄 의류회사) 브랜드가 백화점 노른자위에 초대형 매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판매실적이 부진해 백화점들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일부 백화점은 입점 매장의 성적표인 평당 효율성(영업면적 대비 수익 비율)이 백화점 평균치에도 못 미치는 SPA 매장을 처음으로 퇴출시키며 SPA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롯데백화점은 안양점 2층에 있던 스페인 SPA브랜드 자라 매장을 지난달 전격 철수시켰다. 유니클로와 망고 등 다수의 글로벌 SPA브랜드를 유치해온 롯데백화점이 SPA 브랜드 철수를 결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내 40개 매장 중 롯데백화점 18곳에 입점해 있는 자라는 이번 매장 철수로 체면을 구겼다. 2009년에 일반 캐주얼 브랜드 매장의 4~5배에 달하는 600㎡ 규모로 문을 연 안양점 자라는 월 평균 매출액이 1억5000만~2억원에 그쳤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평당 효율성이 안양점 평균치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지난해에도 자라는 같은 이유로 갤러리아백화점 수원점에서 매장을 철수 당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국산 패션브랜드의 희생을 감수하며 파격적인 조건으로 SPA 입점을 결정했지만 실제 면적 대비 매출이 낮아 입점을 재검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다"고 밝혔다. 롯데백화점은 앞으로 다른 점포에서도 브랜드 개편이나 매장 리뉴얼 시 수익성 낮은 SPA 브랜드의 퇴출을 검토할 방침이다.

2011년 3월 국내 백화점 최초로 지상 3개층에 'H&M'을 입점시킨 신세계백화점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H&M을 위해 대규모 매장을 할애하고 단독출입구까지 설치해줬지만 평당 효율성이나 집객효과가 기대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SPA는 대규모 매장을 갖고 있지만 제품 단가가 낮아 평당 효율성이 낮고 입점수수료율도 10% 정도에 그쳐 백화점 입장에서는 솔직히 빛 좋은 개살구"라고 밝혔다.

특히 글로벌 SPA 브랜드들이 백화점 매장이 아닌 가두 독립점을 급속히 늘리면서 기존 백화점 매장과 상권이 중복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도 해당 백화점 입장에서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예컨대 유니클로의 경우 서울 명동 롯데 영플라자 반경 2km 안에 국내 최대 규모로 꼽히는 가두 독립점을 2곳이나 운영하고 있다. 롯데 영플라자에 입점한 자라과 망고도 길 건너 명동에 백화점 매장보다 훨씬 큰 가두점을 별도 운영하고 있다.

가두 독립점이 백화점과 별개로 여러 차례 균일가 행사를 진행하는 것도 백화점 가격 정책에 혼선을 주는 등 백화점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SPA의 박리다매 전략에 따른 중저가형 디자인도 고급 제품을 추구하는 백화점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백화점이 혜택을 준 것에 비해 효율성이 낮다는 것이 확인된 만큼 글로벌 SPA의 비중을 조절하는 구조조정이 계속될 것"이라며 "글로벌 SPA에 맞서 경쟁력을 키운 토종 브랜드에게도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