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타매매 속도경쟁 가열...이젠 '레이저'까지

최첨단 기술의 발달로 금융시장의 속도 경쟁이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초단타매매(high-frequency trading) 수단으로 '레이저'가 급부상했다.

초단타매매는 고성능 컴퓨터에 자동주문거래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거래소 컴퓨터와 연결해 빠른 속도로 주문을 반복하는 알고리즘 거래의 일종이다. 미국 증시의 전체 거래량 가운데 절반 이상이 초단타매매로 이뤄진다.


촌각이 거래의 성패를 가르는 만큼 초단타매매의 핵심은 통신기술이다. 2000년대 들어설 때 수초나 걸렸던 거래 체결 시간은 최근 1000분의 1초, 100만분의 1초 단위로 단축됐다. 초단타매매 회사들이 맞춤형 광섬유 케이블에 이어 마이크로파, 밀리미터파 전송 시스템 등을 도입한 결과다.

초단타매매를 둘러싼 속도 경쟁을 월가에서는 '제로(0)를 향한 경주'(race to zero)라고 한다. 트레이더들이 주문을 내는 속도와 빛의 속도간의 차이를 없애는 게 이 경주의 궁극적인 목표이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2일(현지시간) 이런 속도 경쟁에 레이저가 등장했다고 보도했다. 미군 제트기가 통신수단으로 쓰는 레이저 장비를 초단타매매에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는 설명이다.


일례로 미국 통신회사 아노바테크놀로지는 다음 달 뉴저지주에 있는 뉴욕증권거래소(NYSE) 데이터센터와 나스닥 데이터센터를 레이저 장비로 연결할 계획이다. 두 센터는 약 56km 떨어져 있는데 그 사이에 있는 고층건물 꼭대기에 설치되는 레이저 장비로 이어진다. 아노바는 미국의 모든 증권거래소를 이렇게 연결할 셈이다.

초단타매매 회사들도 거래소 데이터센터에 있는 자사 컴퓨터서버를 통해 레이저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 한 소식통은 아노바가 이미 NYSE와 NYSE 고객사에 레이저 기술을 제공하기 위한 논의를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WSJ는 다만 아노바의 레이저 기술이 초단타매매의 주문 속도를 얼마나 더 빠르게 해줄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많다고 전했다. 마이크로파와 밀리미터파를 통한 주문 속도가 이미 광속에 가깝다는 이유에서다. 더욱이 도심의 네트워크 속도 차이는 갈수록 작아지는 추세다.

그럼에도 초단타매매를 둘러싼 속도전은 가속화할 분위기다. 초단타매매의 대상이 주식은 물론 원유 선물, 국채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지고 있어서다. 아노바를 비롯한 초단타매매 관련 통신회사들이 워싱턴에 설치한 네트워크 장비가 정부기관 가까이에 있는 것도 고용지표처럼 금융시장에 민감한 정부자료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전송하기 위한 것이라고 WSJ는 설명했다.

그러나 미국 규제당국에서는 초단타매매시장의 끈질긴 속도 경쟁을 경계하고 있다. 무차별적인 초단타매매가 시장 변동성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2010년 5월6일 뉴욕증시가 갑자기 붕괴한 '플래시크래시'(Flash Crash)가 좋은 예다. 당시 다우지수는 마감을 15분 남겨놓고 1000포인트 가까이 폭락했다가 곧 회복됐는데 초단타매매가 배경으로 지목됐다. 2012년 8월에는 전자거래 중개업체인 나이트캐피털그룹이 45분 만에 4억6000만달러가 넘는 손실을 봤다.

일련의 사태와 관련해 미국 재무부는 최근 초단타매매를 '모든 금융시장 운영리스크의 주요 근원'으로 지목했다.

카라 스테인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은 "(초단타매매시장의) 속도기술 군비경쟁이 왜 일어나고 시장에는 어떤 위협이 될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초단타매매 옹호론자들은 초고속 거래가 오히려 매수호가와 매도호가 사이의 격차를 줄이고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