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표 '훈풍', 현실은 '삭풍'...체감고용률 괴리 왜?

대한민국이 '고용률 미스매치'에 빠졌다. 올들어 고용률이 계속 상승하는 등 고용시장엔 '훈풍'이 불고 있지만, 대기업들의 잇따른 구조조정 발표로 산업 현장에선 찬바람이 쌩쌩 불고 있다.

15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3월 취업자는 전년 동월 대비 64만9000명 증가했다. 올 1월 이후 석 달 연속 60만명 이상 취업자가 늘어나는 추세를 이어갔다. 특히 지난 2월엔 취업자 수가 83만5000명 증가, 12년 만에 월 기준으로 가장 많이 늘어나는 등 수치상으론 고용시장에 완연한 봄이 왔다.


하지만 고용시장 현장 분위기는 정부 발표 고용지표와 딴판이다.
8일 KT가 전체 직원의 70%에 달하는 15년차 이상 2만명을 대상으로 특별 명예퇴직을 발표했고, 재계 서열 1위 삼성그룹 역시 삼성중공업 등 일부 계열사 구조조정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금융권을 비롯해 다른 기업들도 감원 등 구조조정에 착수할 것이란 얘기가 들린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에선 고용률이 상승하면서 고용시장 상황이 크게 개선됐다고 하지만, 자고나면 기업들이 인력 구조조정에 나선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어서 그런지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이처럼 고용지표와 산업 현장간 괴리에 대해 최근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구조조정 움직임이 고용통계에 잡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재흥 고용부 고용정책실장은 "고용통계는 가구 조사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개별 기업의 인력감축 등 고용상황이 실제 통계에 반영되려면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또 고용통계 대상인 2500만명 중 기업들의 감원 인력이 차지하는 비중 자체가 작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지표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진행,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어도 재취업하거나 창업하면 신규 취업자로 잡히기 때문에 감원한 인력만큼 그대로 실업자가 생기는 건 아니란 설명이다.

특히 지난해부터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시간선택제 일자리 등 다양한 형태의 일자리가 많기 때문에 중장년층 등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예전보다 고용시장에 쉽게 들어올 수 있게 됐다는게 정부의 판단이다.

문제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실제 구조조정에 나설 경우다. 이들 기업이 인력감축을 하면 국민들은 모든 기업이 감원을 하는 것처럼 착시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 실제로 이들 기업엔 무수한 2~3차 협력업체들이 있기 때문에 이들 기업 역시 연쇄적으로 구조조정에 나설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재흥 실장은 "외환위기나 금융위기때와 같이 인력감축 바람이 산업계에 한번 몰아치면 무섭게 퍼지기 때문에 정부에서도 최근 기업들의 구조조정 뉴스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고 경계했다.

강준구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경제성장률이 높지 않은 상태에서 고용률이 증가하는 건 지난해부터 정부가 추진한 시간선택제 등 일자리 나누기 정책의 효과로 봐야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제가 성장하면서 만들어지는 풀타임 정규직이 아니라 시간선택제처럼 고용의 질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일자리들이 고용률 상승지표로 반영되기 때문에 체감 고용률은 더 낮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실장은 고용의 질이 떨어졌다는 지적에 대해 "40~50대의 일자리 질은 나빠지지 않았고 사회보험가입 현황과 지니계수 등 몇가지 지표를 봐도 질적인 측면엔 큰 영향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동안 우리가 소홀히 한 자발적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많이 생긴 것으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