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윤종신·스타트업 4 :33·가나아트센터가 뭉쳤다?

- "술자리서 의기투합한 재미니스트들의 '콜라보' 예술이죠, 하하."

게임, 음악, 전시가 어우러지는 '3각 아트 콜라보레이션 전시회'가 8월1일부터 24일까지 서울 인사동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다. '회색도시'의 게임업체 네시삼십삼분의 소태환 대표, '월간 윤종신'의 가수 윤종신, 가나아트센터 이정권 총괄(왼쪽부터)이 대화 도중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

가수 윤종신은 곡을 만들 때, 소위 전문 작곡가가 만드는 품새에서 멀찌감치 떨어져있다. 전문 작곡가들이 “이런 진행이 아닌데….”라고 혀를 차도, 윤종신의 고집을 막을 순 없다. 남들이 가는 안락한 길을 비껴 ‘뭐, 재미난 거 없어?’하며 마구 달려드는 모험정신은 ‘오늘의 그’를 있게 한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런 파격의 일환으로 지난 2010년 처음 시작된 것이 ‘월간 윤종신’이다. 이 이름으로 매달 음원을 내는 색다른 시도로 그는 음악인의 삶을 강제했고,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삶은 윤기를 머금고 더 촉촉해지고 있는 중이다.

‘회색도시’라는 게임으로 유명한 업체 네시삼십삼분(4:33)의 소태환 대표는 ‘월간 윤종신’ 마니아다. 최근 ‘월간 윤종신’이 음원과 스토리, 동영상이 어우러진 잡지 형태의 ‘1인 미디어’ 스마트폰 앱(App)으로 출시된 것을 보고 무릎을 쳤다.

“이 콘텐츠를 보니, 새로운 미디어로서 진화 가능성과 잠재력이 보였어요. 또 CD를 내는 가수는 스마트폰과 안맞는 경우가 많은데, ‘월간 윤종신’은 음원과 스토리가 한몸으로 가는 빠른 호흡을 가지고 있어 도발적이고 기발한 상품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스마트폰 앱 시장에 동시에 진출했으니, 같이 뭔가 할 수 있는 게 없을까하는 기대가 있었죠.”(소태환)


소 대표와 윤종신은 곧바로 의기투합했다. ‘뭘 같이 할까’ 고민하다 기존의 게임 OST 형식이 아닌, 게임 스토리와 음악이 연계된 ‘특별한 무엇’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끙끙 앓고 있던 시기에 평소 소 대표와 친분이 깊던 가나아트센터 이정권 총괄이 끼어들었다.

콜라보레이션(협업) 얘기를 들은 이 총괄은 윤종신이 운영하는 인근 카페에서 본 작년 전시회를 떠올리며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냈다. ‘고품격 미술 전시장’으로 유명한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전시회를 열어보자는 파격 제안이었다.

“사실 걱정이 많았어요. 가나아트 전시는 심사과정을 거치는 등 보수적인 색깔이 강하거든요. 그런데 작년 윤종신씨가 미술 아티스트를 꾸준히 소개하고 전시하는 노력에 감명받기도 하고, 가나아트에 대한 이미지 변신도 필요해서 선뜻 허락했어요.”(이정권)

‘충동적인 장난’ 기질이 강한 세 사람의 협업 전시회는 그렇게 시작됐다. 모두 ‘호기심 천국’의 사나이들이고, 결과보다 과정의 미학을 즐기는 ‘놀 줄 아는’ 문화인들이다.

음악, 게임, 미술이 어우러진 아트 콜라보레이션 전시회는 8월1일부터 24일까지 3주에 걸쳐 서울 인사동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다. ‘월간 윤종신’의 매달 음원 표지를 장식한 신진 미술 작가 11명이 ‘회색도시’ 시리즈의 인물을 상상력으로 재구성해 표현한 작품들이 전시회에서 선보인다.

가수 윤종신은 최근 매달 음원으로 음악을 발표해온 '월간 윤종신'을 스마트폰 앱으로 출시했다. 이 앱에는 음원뿐 아니라 동영상, 스토리 등 다양한 정보가 들어있다.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

“작년 12명의 미술 작가와 (음원) 커버 작업을 한 뒤 제 카페에서 자그마한 전시도 가졌죠. 페인팅, 일러스트, 패브릭 등으로 꾸린 다양한 작품을 1년간 전시했는데, 이게 진화하면서 콜라보레이션까지 오게 됐어요. 주류의 도움없이 아티스트 한 명이 근면과 아카이빙(자료 보관함)만으로 새로운 미디어를 창출한다는 것에 묘한 흥분감을 느껴요. 이 일이 하나의 문화운동으로 되길 원하는 이유이기도 해요.”(윤종신)

이 이색 전시회는 아직 구체적인 포맷과 내용이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전시회 1, 2층에 작가들의 ‘회색도시’ 그림들이, 3층에 ‘월간 윤종신’의 노래와 스토리가 담긴 앱 매거진이 소개된다는 내용이 전부다. 그래도 이들은 느긋하다. 콜라보레이션이 이뤄진 것 자체가 큰 성과라는 식이다. 시작부터 치밀하게 꾸민 '계획의 예술'이라기보다 술자리에서 재미삼아 건넨 이야기로 구성된 '실체적 예술'이기 때문.

드라마게임 '회색도시'를 출시한 게임업체 네시삼십삼분의 소태환 대표.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

소 대표는 “사실은 다른 장르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아서 쉽게 (일을) 도모할 수 있었던 것 같다”며 “구체적인 내용보다 전체적인 그림을 보고 ‘재미있을까, 없을까’만 고려했다”고 했다.

이정권 총괄의 설명은 나름 그럴듯하게 들렸다. “다른 장르끼리의 콜라보레이션은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예술인들은 시작 자체를 고려하지 않는 편이에요. 특히 미술 작가들은 ‘콜라보’를 타부시하죠. 공연이나 연극은 대중을 보고 하지만, 미술은 대중의 등 뒤에서 하는 작업이어서, 한번씩 건드려주지 않으면 계속 굴로 들어가기 일쑤예요. 그래서 콜라보는 작업의 전환점을 맞는 계기나, 또다른 작업의 변화를 고민하는 기회가 될 수 있어요. 게임 역시 스마트폰의 굴에서 빠져나와 오프라인의 콜라보를 통해 또다른 영감을 얻을 수 있지 않나요?”

'고품격 전시장'으로 유명한 가나아트센터의 이정권 총괄.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

방송인과 음악인으로 살아온 윤종신에게 ‘섞임’의 정의는 ‘아이 돈 캐어’(I don’t care·상관없어)다. “규정지어진 것은 발목을 잡는 것과 동의어라고 생각해요. 콜라보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대세’여서가 아니라, ‘재미있기’ 때문이에요. 두 다른 문화가 엮이는 것 자체가 궁금하잖아요. 개인적으로 ‘펀’(fun·재미)에 대해 경박시하는 면이 없어요. 소 대표와 얘기했을 때, ‘재미있겠다’고 하고 바로 수용했죠. 이번 전시회도 감동보다는 보는 재미가 쏠쏠할 거예요.”

지난해 7월 출시된 드라마게임 ‘회색도시 for Kakao’는 비주류 장르인데도 250만 다운로드, 2500만판 플레이를 기록하는 등 성공에 안착했다. 소 대표의 편안한 자신감은 이런 성공에 기인하는 듯했다. 이 총괄 역시 “2년 전 다이나믹 듀오 등이 소속된 아메바 컬쳐 전시에 하루 관람객 4500명이 온 전례가 있다”며 이번 전시의 성공을 기대했다. 다소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이는 윤종신뿐. “너무 성공에 연연해하지 말자”면서도 “그래도 좀 오겠지…”라고 말끝을 흐리는 그를 보고, 참석자 모두 박장대소를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