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판교

◇ 합리적인 험블, The Humble Dining
프렌치 레스토랑이 ‘험블’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더 험블 다이닝을 찬찬히 둘러보면 그 이름에 수긍이 간다. 개성이 넘치지만 과하지 않은 의자와 테이블, 음식을 대하는 담백한 태도, 마음에 짐이 되지 않는 합리적인 가격과 A4지 두 장으로 끝나는 단순 명료한 메뉴를 보면 말이다. 스프와 샐러드가 있는 스타터, 두세 가지 스테이크, 간단한 사이드 메뉴와 디저트가 메뉴의 전부다. 그러나 종류가 적은 만큼 2~3주에 한 번씩 새로운 메뉴를 개발한다. 덕분에 이곳을 두 번째 방문할 때는 전에 없던 음식을 맛보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더 험블 다이닝은 스테이크를 파는 곳인데도 넓은 바 테이블이 있다. 여자 친구가 없어도 혼자서 부담 없이 프렌치 요리를 먹으러 와도 된다는 얘기다.
주소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 동판교로 52번길 9-9 전화 070-4148-9808
영업시간 Lunch 12:00~15:00, Dinner 17:00~21:30






◇ 성실한 맥주 메이커, The Tap House
맛있는 생맥주의 맛은 무엇보다 주인의 성실함에서 나온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술 좋아하는 한국에서 맥주 관리를 잘하는 주인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판교 테크노밸리에 생긴 더 탭 하우스의 주인은 요즘 보기 드문 성실한 맥주 관리자다. 빨간 철제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치 맥주 창고에 들어선 기분이다. 더 탭 하우스의 한쪽 벽면에는 열여섯 개의 맥주 탭이 달린 빨간색 컨테이너가 있는데 그 뒤쪽의 1.5평 남짓한 냉장창고에 시원한 맥주가 대기하고 있다. 주인은 효모가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냉장창고의 온도를 매일같이 체크하고, 캐그에서 탭으로 연결되는 파이프 속까지 깔끔하게 청소한다. 이토록 성실하니 맥주 맛이 참 좋다. 맥주를 따르는 잔의 선택도 더할 나위 없이 세심하다. 향이 진한 다크 에일은 오목한 잔에, 가볍고 깔끔한 라거는 보기 좋은 시원한 잔에 따라준다. 투박한 술이라고 믿었던 맥주의 미묘한 맛 차이가 그대로 느껴진다.
주소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 681 H스퀘어 N동 120호 전화 031-737-7447 영업시간 17:00~1:00







◇ 반듯한 커피, Coffee Stone
백현동 커피 거리의 카페는 너 나 할 것이 없이 아름답다. 한껏 꾸민 숍들 사이에서 나무판자로 뚝딱뚝딱 지어올린 듯한 커피 스톤은 그래서 더 눈에 띈다. 커피 스톤은 아기자기함으로 유혹하려는 기색도 기발한 소품으로 관심을 끌 생각도 없다. 그저 육중한 로스팅 기계로 정성 들여 고른 원두를 성실하게 볶고 긴 시간을 기다려 천천히 커피를 내릴 뿐이다. 잘 다린 화이트 셔츠에 반듯한 블랙 앞치마를 두른 바리스타가 손님을 맞는 이곳은 멋없는, 그러나 정직한 커피 공방이다. 커피만 전문적으로 다루다 보니 메뉴판에는 알아보기 힘들거나 읽기 어려운 커피의 이름이 줄줄이 쓰여 있다. 그럴 땐 주저 말고 카페의 주인에게 자문을 구하자. 얼마 전 커피 스톤은 더치커피를 응용해 만든 큐브 라테에 꿀과 휘핑크림을 넣어 좀 더 달달해진 스톤 라테를 개발했다. 오전 11시, 아침부터 여는 백현동의 여느 카페에 비해 느지막이 오픈하지만 그만큼 늦은 시간까지 문을 열어두는 곳이다.
주소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 581-10 전화 031-8017-0529 영업시간 11:00~23:00






◇ 공방 옆 라이브 바, Toggle
‘공방 옆 라이브 바’라는 부제가 붙은 토글은 가죽 공방과 라이브 바라는 신기한 조합을 보여주는 곳이다. 공방에서는 가죽으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가죽 공예를 일대일로 배울 수 있다. 가죽을 자르고 잇고 형태를 만드는 작업에는 생각보다 섬세한 손길이 필요해서 뭔가 몰두할 것이 필요할 땐 그만이다. 묵직한 재료와 도구를 이용해 손에 잡히는 물건 하나를 만들어내는 것은 꽤나 보람 있는 체험이다. 가죽 공방의 클래스는 초급반부터 고급반까지 나뉘어 있어 가위질마저 어설픈 사람이 찾기에도 좋다. 해가 지고 공방 수업이 끝나갈 즈음 공방은 라이브 바로 변신한다. 금, 토, 일 저녁 8시부터 10시 사이에 근사한 재즈와 블루스 라이브 공연을 볼 수 있다. 토글의 주인이 추천하는 와인 리스트는 쇼칼란 그랑리제르바 블렌드와 포트 와인. 재즈와 블루스를 사랑하는 사람이니 믿고 마셔보자. 시원한 에딩거 생맥주도 생음악에는 제격이다.
주소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 578-1 지하 1층 전화 070-3210-0420 영업시간 10:00~26:00





◇ 속이 꽉 찬 햄버거, Williamsburg-er
뉴욕에서 7년간 요리 학교를 다닌 셰프가 한국에 돌아와 처음 만든 요리는 햄버거였다. 대중에게 가장 친숙한 음식을 만들고 싶어서였다. 친근한 음식치고 떡볶이와는 가격이 천지 차이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버거에 들어가는 패티는 등심, 채끝, 안창살 등 여덟 종류의 소고기 부위를 모아 다진 것이다. 씹는 순간 입안에 가득 퍼지는 풍부한 육즙이 일품이다. 주방에서 직접 만드는 베이컨과 소시지는 두께부터 급이 다르다. 말이 햄버거이지, 모든 재료를 접시 위에 가지런히 펼쳐 놓으면 근사한 메인 요리가 될 것이다. 본래의 재료 맛을 해치는 소스는 전혀 넣지 않고 만들기 때문에 양념 맛에 익숙해진 사람에게는 낯선 맛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브런치 메뉴에도 쓸데없는 양념 대신 재미를 가미했다. 브리오슈 버터 식빵 안에 구멍을 뚫고 반숙 계란을 넣어 반으로 자르면 크리미한 노른자가 터지면서 입안으로 흘러들어온다. 윌리암스버거의 메뉴는 대부분 이렇게 셰프의 아이디어와 재료로 꽉 차 있다.
주소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 579-4 전화 031-8016-7676 영업시간 11:00~22:00





◇ 우아한 식탁, Cuisson
휘황찬란한 외관을 보면 거금을 내고 위에 기별도 가지 않는 음식을 파는 초호화 프렌치 레스토랑이 아닌가 염려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입견이 그러하듯 그것은 오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밖에서 했던 걱정을 더 심각하게 만드는 초호화 인테리어에 또 한 번 놀랄지도 모르지만 그 역시 완벽한 오해다. 화려한 외관. 마치 중세의 프랑스에 있는 어느 고급 레스토랑에 온 듯한 뀌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점심, 저녁의 세 가지 코스는 보통 브런치에서 차값을 한 번 더 내는 정도의 가격이다. 따로 먹는 디저트까지 생각하면 오히려 합리적이다. 파스타, 리조토, 생선 요리 같은 음식은 프렌치보다 이탤리언에 좀 더 가깝다. 바쁜 점심과 저녁 시간을 피하면 우아한 분위기에 어울리는 애프터눈 티를 즐길 수 있는데, 밀가루 대신 증편으로 만든 샌드위치가 포함되어 간식이라기보다는 식사에 가깝다. 함께 나오는 티는 매일 먹는 립톤이 아닌 맛있는 포트넘 앤 메이슨이다.
주소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 578-1 전화 031-8017-9793 영업시간 11:00~22:00




사진 LEE YONG 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