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2014…출간 30년, 다시 읽는 '노동의 새벽'

1984-2014. 지금이야 '유명인'이 돼있지만, '얼굴 없는 노동자 시인'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풀빛)'이 올해로 출간 30년이 됐다. 출판사 '느린 걸음'에서 개정판으로 다시 발간했다.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새벽 쓰린 가슴 위로/차거운 소주를 붓는다/아/이러다간 오래 못 가지/이러다간 끝내 못 가지//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기름투성이 체력전을/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오래 못 가도/끝내 못 가도/어쩔 수 없지…(노동의 새벽, 중략)"


노래 '노동의 새벽'은 음율 때문에 원래 시구 일부가 조정됐다. 단일 시집으로 가장 많이 노래로 만들어졌고, 당시 젊은이들은 시 전체를 암송하는 것보다 노래를 부르는 걸 더 편안해 했다. 군사정부가 금서로 규정했지만 '노동의 새벽'은 100만부 가까이 발간됐다.

"1984년, 한 공장 노동자의 손에서 한 문학평론가의 손으로 신문 하나가 건네졌다. 그 신문지 사이에서, 얇은 습자지 위에 연필로 또박또박 눌러 쓴 시들이 쏟아져 나왔다. 군사독재 치하의 엄혹한 시절, 한 편 한 편의 시는 가슴에 불을 지피는 충격이었고 눈물이었고 위험한 그 무엇이었다. 시인은 자신을 밝히지 말아줄 것을 당부하며 사라졌다. 그 시들이 묶여 한 권의 시집으로 탄생했다."

우리가 아는 '노동의 새벽'이 시작이다. 노동의 새벽이 문단을 발칵 뒤집고, 당시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는 것을 다시 얘기하는 게 우습다.


개정판은 형식이 다소 바뀌었다. 우선 표지 블루칼라가 주는 어둔 분위기와 투박함은 다소 어색하다. 세련됨을 추구한 듯한데 촌스러움이 느껴진다. 목판화로 구성된 당시 표지와 '노동'은 일정 맥락이 통했는데 이번엔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랄까.

출판사측은 "1984년 초판본의 미학과 정신을 새롭게 계승했다"고 말한다. 표지는 '실크 인쇄' 기법이 적용됐다. 이 방식은 오랜 인쇄 기법 중 하나로 기계 보다 사람의 손이 더 많이 가는 작업이라고 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타이포그래퍼'인 홍동원 출판디자이너가 맡았다고 한다.

시집 표지에서 낯설음을 느꼈음에도 표지를 여는 순간 반전이다. 30년 전 시집과 비슷한 종이 재질 무엇보다 지금은 '익숙하지 않은 그러나 바로 '익숙한' 글씨체를 만나기 때문이다.

'납활체'다. 납활체는 컴퓨터가 상용화된 이후 거의 사라져 찾아보기 어렵다. 이번 개정판 본문은 1984년 초판본의 납활체를 가능한 그대로 살렸으며, 읽기 어려운 글자는 하나하나 수작업을 거쳐 되살려냈다고 출판사는 말한다.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의 암울한 생활속에서도 희망과 웃음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며 활동하는 노동 형제들에게 조촐한 술 한 상으로 바칩니다. -1984년 타오르는 5월에 박 노해" 당시 초판에 실린 시인의 인사말이다.

개정판 '노동의 새벽'의 내용은 시가 수정되거나 이후 시인의 새로운 시는커녕, 개정판 발간에 대한 시인의 인사도 없다. 1998년 8월 15일 특별사면조치로 석방된 후 스스로 사회적 발언을 금기한 채 살고 있는 시인의 고집일까.

"1980년대를 이 땅에서 살았던 사람들에게 박노해는 역사이고 상징이며 신화다."(도정일, 문학평론가)라는 평가가 울림으로 남는다.

박노해 시인은 1957년 전자남도 함평에서 태어나 고흥에서 자랐다. 낮에는 노동자로 밤에는 선린상고(야간부)를 다니며 현장 노동자로 일했다. 1991년 7년 여 수배 생활 끝에 체포돼 불법 고문을 받고 사형이 구형되고, 무기징역형에 처해졌다. 1993년 옥중에서 두번째 시집 '참된 시작'을 1997년 옥중 에세이집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출간했다. 현재 사회운동단체 '나눔문화'를 설립해 활동중이다. 2010년 10월, 신작 신비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