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협조' 투명 공개나선 인터넷기업, 통신사는?

# 지난 21일 서울고등법원 민사1부는 참여연대가 시민 3명을 대리해 SK텔레콤 (51,300원 ▲300 +0.59%), KT (34,500원 ▲400 +1.17%), LG유플러스 (9,780원 ▲30 +0.31%) 등 통신 3사를 상대로 낸 정보공개 및 손해보상 청구소송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수사기관에 자신들의 신상정보를 제공했는지 여부를 알려달라는 요구에 통신사들이 응하지 않았다며 2년 전 시작된 소송에서다. 재판부는 “자료 제공 현황공개는 헌법상 기본권인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실현하는 것으로, 수사 편의보다 보호할 가치가 더 크다”며 1인당 20만~3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동안 수사기관의 고객 신상정보 요청에 관행적으로 응했던 통신사들이 심각한 딜레마에 빠졌다. 국내외적으로 프라이버시 권리 보호가 강조되는 판례 추세를 따져볼 때, 향후 최종심도 결코 유리하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렇다고 항소를 포기할 경우, 관련 유사 소송이 봇물처럼 터져 나올 수 있다.


최근 인터넷 기업들의 ‘커밍아웃’은 통신사들을 더욱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지난 주 네이버와 다음카카오가 수사기관의 요청에 따른 개인정보 자료 제공 현황을 낱낱이 공개한 투명성 보고서를 발표했다. 카카오톡 감청 논란 이후 세간의 따가운 시선이 이제 통신사로 쏠리고 있다.

◇신상정보 제공, 통신사 ‘늘고’ 인터넷 ‘줄고’

미래창조과학부의 ‘통신제한 및 통신자료 제공현황’ 자료에 따르면, 통신사들이 수사기관들에 넘긴 통신자료(인적사항) 제공 건수는 갈수록 급증하고 있다. 휴대전화 가입자 정보 제공 건수만 해도 2013년 상반기 35만3720건에서, 하반기 36만5438건, 작년 상반기에는 다시 37만1645건으로 급증하고 있다.


반드시 법원의 허가서가 필요한 감청 및 통신사실확인 자료와 달리, 주민번호와 주소, 전화번호, 아이디 등 통신자료의 경우, 수사기관 요청에 사업자들이 따라야 할 의무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신사들의 가입자 신상정보 제공 건수는 해마다 늘고 있는 셈이다.

반대로 인터넷 기업들은 통신자료 요청에는 상당히 소극적이다. 실제 인터넷 기업들이 제공한 신상정보 건수는 2012년 6만5983건에서 2013년 상·하반기에는 각각 5만7000여건 수준으로 떨어졌다. 작년 상반기나 돼서야 6만1040건으로 소폭 올랐을 뿐이다. 지난 2012년 10월 신상정보를 경찰에 넘겼다는 이유로 가입자들이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에서 네이버가 패소한 이후 주요 인터넷 기업들이 수사기관들의 통신자료 제공 요청을 사실상 거부해왔기 때문이다.

네이버가 발간한 투명성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년 사이 압수수색 영장 요청 건수가 6.3배 이상 증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영장 없인 회원들의 신상정보를 쉽게 넘겨주지 않겠다는 것.

◇“통신사 정보제공도 더 투명해져야”

수사기관 자료 협조는 양날의 칼과 같다. 신속한 수사 공조 등 ‘공익’ 가치와 회원들의 ‘프라이버시’ 가치가 매번 충돌할 수 밖에 없는 사안이다. 다만, 과거에는 ‘공익’ 가치에 중점을 뒀다면 최근 들어 ‘프라이버시’ 가치에 더욱 무게가 쏠리는 분위기다.

지난 2013년 미국 CIA 요원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사태 이후 구글, 트위터, 페이스북 등 글로벌 인터넷 기업들이 잇따라 투명성 보고서를 내놓기 시작했다. 지난해 ‘카카오톡 감청’ 논란을 계기로 네이버, 다음카카오 등 국내 인터넷 기업들도 공개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공익 차원에서 수사 협조는 불가피 하지만 관련 현황이라도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고객들의 신뢰를 잃지 않겠다는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

정보보호 업계 관계자는 “통신업계가 인터넷 기업들과 대조적으로 '영장 없이’ 이뤄지는 신상정보 요청에 너무 관행적으로 응해왔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며 "자료협조가 보다 투명한 기준에 따라 이뤄지고 가입자 정보 제출 고지 의무화 등 고객 프라이버시 정책 개선도 절실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