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에 유로화 하락까지…韓 자동차산업 '빨간불'

현대자동차의 유럽시장 전략차종 i20./사진제공=현대자동차

엔저에 이은 유로화 가치 하락으로 한국 자동차산업에 비상이 걸렸다. 독일차를 중심으로 한 유럽연합(EU) 국가에서 생산된 차들의 국내 자동차 시장 공략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유럽과 미국 시장에서 국내 자동차 업체들의 입지는 좁아지게 됐다.

26일 외환시장에 따르면 원/유로 환율은 1년 전인 지난해 1월27일 1482.48원에서 이날 1200원대 초반으로 15% 가까이 하락했다. 환율 하락세는 지난해 완만하게 이어지다 올 들어 유럽중앙은행(ECB)이 양적완화 계획을 발표하자 가팔라졌다.


현대차의 경우 수출보다는 현지 생산 위주의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에 환율 조건이 직접 판매에 반영되는 구조는 아니다. 하지만 유로화 가치가 하락할 경우 원화 표시 매출액은 줄어들고 수익성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현대차 체코 공장의 경우 판매 대수가 30만8000대로 전년 대비 4000대 늘었지만, 매출액은 5조3980억원으로 0.9%(520억원) 감소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현대차는 지난해 엔화와 신흥국화폐 가치의 하락 때문에 영업이익률이 8.5%로 전년도보다 1.0%포인트 하락했다. 기아차는 현대차보다 현지 생산분 비율이 적어 더 큰 타격을 받았다. 지난해 영업이익률이 5.5%로 전년 대비 1.2%포인트 하락했다.

현대·기아차는 현대차가 기아차를 인수한 1998년 이후 처음으로 지난해 70% 밑으로 떨어진 국내 시장 점유율을 회복하는 것도 더욱 힘에 부치게 됐다. 국내 수입차 시장의 다수를 점하고 있는 독일 메이커들이 유로화 가치 하락을 등에 업고 더욱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독일 브랜드들은 당장은 판매 가격을 조정하지는 않는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국내 수입차 판매 1위였던 BMW코리아 관계자는 "한국에 차를 들여올 때 환율 등락에 관계없이 고정된 환율로 들여오기 때문에 유로화 가치가 낮아진다고 하더라도 한국 시장에서 가격을 조정할 여지는 없다"고 말했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관계자도 "차량 가격은 환율뿐 아니라 시장 사이즈나 원가, 경쟁 차종 가격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며 "당장 가격을 내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폭스바겐코리아 측도 "독일에서 차를 생산해서 한국에서 판매되기까지 3∼4개월 걸리기 때문에 당장 가격을 내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독일 본사 차원에서는 유로화 환율 하락으로 한국 판매 차종의 유로화 표시 수익률이 높아짐에 따라 시장을 확대하기 위한 할인 프로모션을 확대할 여지가 커졌다. 수입차업계 관계자는 "아직 신년이어서 각 브랜드들이 할인 프로모션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는데, 앞으로 실시할 프로모션은 환율 조건도 반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해외 공장과 경쟁하는 위치에 있는 완성차 업체의 국내 공장은 경쟁력 하락이 불가피해졌다. 르노삼성은 소형 스포츠다목적차(SUV) QM3를 전량 스페인의 르노 공장에서 수입해 국내에 판매한다. 또 부산 공장에서 닛산 로그, SM5, SM3, QM5 등을 생산해 북미와 유럽 등지에 수출한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유로화 가치 하락으로 당장 국내 공장 수출 물량이 줄지는 않겠지만 실적은 기존에 1유로에 1400원을 받을 것을 1200원밖에 받지 못하기 때문에 수익성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최근 막을 내린 북미 국제오토쇼(디트로이트모터쇼)에서도 확인된 것처럼 독일 메이커들이 미국 시장 공략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한국 브랜드들이 미국 시장에서 일본차에 이어 독일 차에 대해서도 좋지 않은 경쟁 조건에 놓이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