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MLB산책]'WS의 사나이' 범가너가 ML 톱10에 못낀다고?

매디슨 범가너./AFPBBNews=뉴스1

매디슨 범가너(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메이저리그에서 톱10 투수가 못된다?

지난해 플레이오프에서 범가너가 거의 혼자 힘으로 자이언츠를 월드시리즈 정상에 올려놓는 모습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사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당대 최고의 투수라는 클레이튼 커쇼(LA 다저스)마저 일단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어쩌면 역대 최고의 포스트시즌 투수 중 한 명인 범가너가 톱10 투수가 아니라는 주장을 과연 누가 할 수 있을까.


그런데 바로 그런 주장이 미국의 메이저리그 전문가 입에서 나왔다. MLB 네트워크의 ‘MLB Now’ 호스트인 브라이언 케니는 얼마 전 자신의 프로그램을 통해 바로 이런 주장을 했다. 자신의 말이 얼마나 터무니없게 들리는 줄 잘 알지만 자신의 배운 세이버메트릭스의 원칙을 적용하면 피할 수 없는 결론이라는 것이다. 즉 범가너는 무조건 톱10 투수라는 결론을 먼저 내리고 그 결론을 뒷받침하는 데이터를 찾는 것이 아니라 투수랭킹 산정에 필요한 기준을 설정하고 객관적으로 데이터를 분석한다면 결과가 그렇게 나온다는 것이다.

케니는 일단 범가너의 포스트시즌 성적과 정규시즌 성적을 비교하는 것으로 출발했다. 범가너는 2010년부터 2012, 2014년까지 3차례 포스트시즌에 나가 88⅓이닝을 던지며 평균자책점 2.14라는 눈부신 성적을 남겼다. 정규시즌에선 952⅔이닝동안 평균자책점이 3.06이었다. 정규시즌 평균자책점이 포스트시즌보다 1점 가까이 높다. 케니는 샘플사이즈의 엄청난 차이를 지적하며 범가너의 퍼포먼스를 예상할 때 포스트시즌이 아닌 정규시즌 성적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케니는 기본적인 분석을 위해 범가너의 ERA+와 FIP, 그리고 WAR 수치를 분석했다. 직전 시즌의 성적이 가장 중요하긴 하지만 샘플사이즈가 클수록 좋기에 지난 1년, 2년, 3년, 4년으로 나누어 범가너의 통계를 메이저리그 다른 투수들과 비교해 순위를 살펴본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비교대상은 해당기간 중 시즌 평균 150이닝을 던진 투수들로 제한했다.




이 도표에서 살펴보면 범가너가 탑10에 든 경우는 총 12개의 경우 가운데 딱 한 번밖에 없다. 물론 2011, 2012년 등 커리어 초반기 성적은 범가너가 아직 어리고 경험도 적은 핸디캡을 안고 싸운 것이었다고 해도 그가 24세로 전설적인 포스트시즌 퍼포먼스를 보였던 지난해 성적조차 상위 20위내에 들까말까 하는 수준이다.

케니는 범가너가 월드시리즈에서 보여준 경이적인 퍼포먼스에 대한 인상이 워낙 강렬해 범가너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힘들게 한다면서 범가너의 포스트시즌 성적을 봐도 경이적인 지난해(52⅔이닝, 1.03)를 빼면 35⅔이닝동안 평균자책점 3.79로 준수하긴 해도 전설급은 아니라며 클리프 리의 예를 들었다. 지난 2009년 포스트시즌에 40⅔이닝동안 평균자책점 1.56을 기록하는 경이적인 피칭을 보였던 리의 이듬해 평균자책점은 3.18이었다. 2011년에는 2.40으로 더 좋아지긴 했으나 대신 플레이오프에서 1게임에 나서 6이닝동안 5실점했다.

결국 케니의 결론은 범가너의 순위는 메이저리그 선발투수 중 15~25위급에 해당된다는 말이다. 포스트시즌에 아무리 빛났던 투수들도 길게 보면 결국은 원래 실력에 해당되는 성적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케니는 범가너가 아직 25살로 아직 전성기를 앞두고 있다고 보아야 하고 4년 연속으로 시즌 200이닝 이상을 던졌으며 지난 시즌 탈삼진률과 볼넷비율이 훌쩍 향상된 것을 볼 때 범가너의 랭킹이 앞으로 계속 올라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지난해 딱 한 달(10월)간의 성적을 제외하면 범가너를 올 시즌 메이저리그 톱10 선발투수로 볼만한 증거가 거의 없다고 결론지었다. 케니는 자신의 선발투수 톱6로 클레이튼 커쇼, 펠릭스 에르난데스, 크리스 세일, 맥스 슈어저, 애덤 웨인라이트, 코리 클루버를 꼽았고 이어 7위부터 18위까지 12명의 이름을 제시하며 범가너를 16위에 올렸다.

케니의 주장은 곧바로 많은 비판과 반박을 받았다. 대표적인 주장은 메이저리그 구단의 궁극적 목표는 월드시리즈 우승인데 3차례 월드시리즈에서 총 5게임에 등판, 36이닝동안 14안타로 단 1점만을 내주고 4승무패, 평균자책점 0.25를 기록하며 이미 3차례나 월드시리즈 챔피언에 오른 범가너를 정규시즌 성적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 케니의 주장은 세이버메트릭스의 특성상 팬들이 피부로 느끼는 정서적, 감정적 측면의 평가와는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32개 팀이 팀당 162게임을 치르는 메이저리그에서 그 어떤 광팬이나 전문가도 모든 경기를 다 볼 수는 없다. 그렇기에 누구나 다 지켜보는 포스트시즌에서의 활약상이 마치 그 선수의 전부인 것처럼 각인되기가 아주 쉽다. 반면 통계수치는 팬들이 보지 못한 모든 경기의 퍼포먼스를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당장 지난해 월드시리즈가 끝난 뒤 범가너와 커쇼를 놓고 누가 더 뛰어난 투수인가에 대한 논쟁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범가너와 커쇼의 모든 경기를 볼 수 없었던 팬들로선 포스트시즌에서 커쇼의 참담한 실패와 범가너의 경이적인 활약에 대한 강렬한 인상 때문에 커쇼보다는 범가너 쪽으로 기울었던 적이 있다. 물론 두 선수의 통계치를 비교하면 두말할 필요도 없이 커쇼가 월등히 앞선다. 세이버메트릭스를 통한 순위와 팬들이 피부로 느끼는 순위와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케니의 선발투수 랭킹은 실제 팬들이 공감하는 랭킹이라기보다는 판타지 베이스볼에 더 적합한 순위로 보여진다. 판타지 베이스볼은 모든 선수들의 성적이 수치로 환산되기에 감정적 요소가 개입할 여지가 별로 없다. 세이버메트릭스가 적용되기에 최적의 환경이다. 통계와 숫자가 말을 하는 판타지 베이스볼 세계에서 범가너가 리그 20위권 투수라고 하면 별다른 반발이 없을 것이다. 물론 개중엔 판타지 베이스볼에서도 커쇼에 앞서 범가너를 선택하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사람이란 감정적인 존재이고 또한 야구의 최대 매력 중 하나는 예측 불가성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