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가서 야전 침대 찾은 최부총리..무슨 일이?

“(합의 도출을 못하면) 비행기가 뜨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야전 침대를 구하라”

전시에 나올 법한 무서운(?) 말들이 오갔다. 29일 부산 벡스코에서 폐막한 미주개발은행(IDB) 연차총회에서다. 공식 일정은 29일 저녁 폐회 리셉션으로 마무리됐지만 힘겨루기는 끝나지 않았다. 아침 10시에 시작된 회의는 자정이 넘도록 이어졌다. IDB 민간부문 지원 조직 개편방안을 두고 미국과 이탈리아를 필두로 한 공여국과 브라질·아르헨티나를 중심으로 모인 수여국이 한창 논쟁을 벌였다.

여러 조직으로 분산돼있는 중남미 내의 민간부문 지원조직을 미주투자공사(IIC)로 통합하고 IIC내에 뉴코(NewCo)를 설립하기로 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재원마련 방안에 대해 아직 합의가 되지 않은 탓이었다. 주요 쟁점은 IDB의 자본을 뉴코로 얼마나 이전하느냐는 것.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수여국들은 IDB 재원이 많이 이전 될수록 IDB의 대출여력이 줄고 금리도 비싸질 것을 우려했다.

이번 IDB 총회에서는 이례적으로 장관들이 직접 나서서 자본이전 규모 등을 두고 협상을 벌였다. 그만큼 중요한 쟁점이고 합의를 이루기 어려운 난제였기 때문이다.

전날 IDB 의장으로 취임한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총회를 개회하면서 “이 쟁점에 대해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면 각국 대표단의 비행기가 뜨지 못하도록 막겠다”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으름장을 놓았다. 최 부총리는 공여국과 수여국 대표단을 오가며 설득에 나섰다. “옥동자를 낳으려면 산통이 크다”는 한국 속담까지 인용하며 각국 대표단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오후 6시30분이면 합의를 이룰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8시가 넘도록 결론이 나지 않았다.

최 부총리는 결국 폐회행사를 먼저 치르고 다시 회의를 진행하는 '강수'를 뒀다.

아직 논의를 진행중인 상황에서 폐막식을 앞당겨 하면 분위기가 냉랭해 질 것이라는 주변의 우려도 있었지만 최 부총리는 역발상을 택했다. 그리고 이 결정은 신의 한수로 작용했다. '흥'많은 남미사람들이 가수 싸이의 축하공연과 태권도 시범공연 등을 보면서 조금씩 마음 문을 열기 시작한 것. 폐막식을 끝낸 뒤 다시 회의를 시작하자 회의는 오히려 활기를 뗬다.

그러나 2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한순간에 해결될 순 없었다. 공여국의 대표격인 미국과 수여국의 대표격인 브라질이 큰 틀에서 합의를 이뤘지만 이번엔 과테말라 등 논의에서 소외된 중미국가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최 부총리는 실무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숙소에서 휴식을 취할 수도 있었지만 임시 집무실에서 논의 과정을 챙겼다. 직원들이 야전침대를 구하러 다닌 것도 이 때문이다. 오전 2시30분쯤 수여국과 공여국간의 협상이 타결됐다는 낭보가 날아들었다. 회의를 시작한 지 17시간 만이었다. 최 부총리는 다시 총회를 소집하고 의사봉을 세 번 힘차게 두드렸다.

그는 마지막으로 사흘간의 총회를 준비하고 차질 없이 진행한 기재부 직원들과 일일이 악수하고 격려한 뒤 회의장을 나섰다. 시계는 이미 오전 3시를 넘은 새벽시간. 최 부총리는 일부직원들과 함께 인근 복집에 가서 전날 못 한 저녁 식사를 한 뒤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