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부호들, 한국 스타트업 인수 '군침'…물밑접촉 '활발'

#스타트업(창업 초기기업)을 발굴해 육성하는 액셀러레이터인 김 씨는 지난주 중국의 한 중견그룹 오너인 C씨를 서울 여의도 L호텔에서 만났다. 양국 간 벤처투자와 창업 교류 과정에서 알고 지낸 중국 관료의 소개로 나간 자리였다. C씨는 김씨에게 한국의 괜찮은 스타트업을 소개해주면 원하는 금액 이상으로 투자할 뿐 아니라 경영권도 인수하겠다는 뜻을 수차례 강조했다고 한다.

30대 중반인 C씨는 교육과 영상·미디어, 인터넷 비즈니스를 담당하는 계열사 5곳을 거느린 중견그룹 창업자다. 그는 M&A(인수·합병)를 통해 사업을 확장시키는 수완을 발휘했다. 이젠 중국을 넘어 벤처기업 투자나 인수를 통해 신사업 진출을 적극 검토 중이며 특히 기술력이 뛰어난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에 무척 적극적이다.


25일 벤처업계에 따르면 최근 중국의 자본가들이 한국 벤처기업 투자를 위해 활발한 물밑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중국의 벤처캐피탈(VC) 등 벤처투자회사의 한국 벤처기업 투자는 간간이 이뤄졌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VC가 아닌 중국 내 창업 1세대를 비롯한 소위 '큰손'들이 한국 벤처기업 투자에 직접 뛰어들 채비를 갖추고 있다.

중국 전자상거래업체인 알리바바가 지난해 9월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하며 대박을 터뜨리면서 벤처투자에 대한 중국 거대 부호들의 관심이 급속히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특히 기술력을 갖추고 있고 지리적·문화적으로도 가까운 한국의 스타트업들이 이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김씨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중국 VC 역시 투자 수익률을 고려해야 해서 위험 부담이 큰 스타트업에 과감히 투자하기 어렵다"며 "하지만 사업체를 거느린 중국 자본가들은 기업의 신성장 동력을 확보한다는 뚜렷한 목적을 갖고 있어 가격을 크게 신경쓰지 않고 통 큰 투자에 나선다"고 전했다.


이어 "아직 초기 단계라 물밑에서 움직이고 있지만 몇 년 만 지나면 막대한 자본력을 쌓은 중국 기업과 큰손들이 우리나라의 우수한 스타트업을 하나둘씩 인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예상했다.

중국의 벤처열풍은 상당하다. 지난해에만 290만명이 창업에 나섰고 벤처업계로 투자된 자금은 156억달러(약 17조원)에 달한다. 투자금액 기준으로 미국에 이은 세계 2위이고 우리나라의 10배가 넘는 규모다.

이들은 우리나라 벤처 기업 뿐 아니라 엑셀러레이터 스카우트에도 과감한 베팅에 나서고 있다. 중국의 한 기업은 국내 벤처창업 전문가인 모 교수에게 현재 받는 월급의 10배 이상을 지급하고 10년간 고용을 보장하겠다는 의미로 10년치 월급을 선불로 주겠다고 제안했다.

스카우트 제안을 받은 교수는 "한국 벤처기업 투자를 위해 자문 역할을 맡아달라는 게 중국 업체가 내건 조건이었다"며 "제안을 받고 고민을 많이 했지만 학생을 가르치고 청년 벤처창업을 돕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다고 판단해 정중히 거절했다"고 말했다.

중국의 VC들도 한국 벤처펀드 조성에 참여하며 본격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중국 VC업계 2위업체인 '중국 IDG캐피탈'은 정부의 벤처투자금인 모태펀드와 함께 한국 벤처기업에 집중투자하는 1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올해 안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중국 IDG캐피탈은 중국 최대 인터넷 검색서비스 업체인 '바이두'와 중국 최고 브랜드 가치를 지닌 시가총액 183조원 규모의 게임기업 '텐센트'에 초기 투자했던 벤처투자회사다.

중기청 관계자는 "벤처기업이 성공하려면 중국에 진출하지 않고선 불가능하다"며 "그런 측면에서 중국의 자금을 유치해 중국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삼거나 이들에 경영권을 매각한 자금으로 재투자나 재창업에 나서는 것을 긍정적 시각으로 봐야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