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자부활전' 없이 '루저'만 있는 사회

/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헬조선’, ‘5포 세대’, ‘루저’…

지옥이라는 Hell과 한국의 옛 이름인 조선(朝鮮)을 합해 만든 ‘헬조선’은 ‘한국이 지옥에 가깝고 전혀 희망이 없는 사회’라는 의미다. ‘지옥불반도’로도 쓰인다.


‘5포 세대’는 연애 결혼 출산(3포)과 인간관계, 내 집 마련을 포기한 세대라는 뜻이다. 루저는 원래 패배자(Loser)라는 뜻이나 ‘키뿐만 아니라 사회적 능력에서 열등하다고 느껴지는 사람’이란 뜻으로 변했다.

◇사람은 몇 종류로 나눌 수 있을까?

이처럼 요즘 유행하는 말은 우리의 현실이 얼마나 힘들고 부정적인지 잘 나타내 준다. 이런 부정적 경향으로 사람들을 2종류로 나누는 관행이 나타나고 있다.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 돈 많은 사람과 가난한 사람, 취직한 사람과 취준생(취업준비생),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善의 반대말은 惡이기도 하지만 不善이기도 하다)…. 각자의 관심과 처한 상황, 그리고 가치관에 따라 2종류의 사람은 무한정으로 늘어날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을 2종류로 구분해보면 삶을 어떻게 살아, 어떤 결과가 나타났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2종류로 나누다 보면 좋음과 나쁨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양자택일로 연결될 우려가 있다. 이는 흑백논리로 이어져 상대방을 부정해야 내가 사는 생사의 싸움으로 확대되는 부작용을 낳는다.

실제로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싸움의 대부분은 흑백논리에서 일어난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발생하는 갈등과 싸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을 3종류로 나눠보는 것은 어떨까. 예를 들어 42.195km를 달리는 마라톤의 경우, 완주자와 중도 포기자, 그리고 시도조차 하지 않은 사람으로 말이다. 중도에서 포기하는 사람과 아예 시도하지 않는 사람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 ‘중도이폐(中道而廢)’라는 게 있다. 무엇을 하다가 마무리 짓지 못하고 중간에 그만두어 일을 그르친다는 뜻으로 쓰인다. 따라서 중도이폐는 ‘가다가 중지하면 아니 간만 못하다’는 속담과 함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해야 성공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가다가 멈추면 아니 간만 못할까?

하지만 중도이폐의 어원인 『논어(論語)』(옹야편)에서 공자는 이를 다른 의미로 쓴 것으로 해석된다. 원문을 보자. “苒求曰 非不說子之道 力不足也. 子曰 力不足者 中道而廢 今女畫(염구왈 비불열자지도 역부족야. 자왈 역부족자 중도이폐 금여획).” 공자의 제자 중 한 사람인 염구가 “선생님의 도를 기뻐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힘이 부족합니다”라고 하자, 공자는 “힘이 부족한 사람은 중도에서 그만두나니 너는 지금 선을 긋고 있다”고 꾸짖었다.

주자(朱子)는 이에 대해 “力不足者 欲進而不能 畫者 能進而不欲, 謂之畫者 如畫地而自限也(역부족자 욕진이불능 획자 능진이불욕, 위지획자 여획지이자한야)”라고 설명했다. “힘이 부족하다는 것은 나아가려고 하나 할 수 없고, 선을 긋는다는 것은 나아갈 수 있으면서도 하고자 함이 없는 것이다. 선을 긋는다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설정해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공자와 주자가 말한 ‘중도이폐’는 ‘가다가 중지하면 아니 간만 못하다’는 부정적 뜻이라기보다 ‘사전에 스스로 포기하지 말고 일단 시도하려는 의지가 중요하다’는 긍정적 의미가 강한 것이다. 하지만 공자의 말을 거두절미하고 ‘중도이폐’라는 말 자체만 갖고 부정적으로 쓰는 관행이 정착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공자는 사람들이 스스로 하려는 자발적 의지를 중시했다. 『논어(論語)』 (술이편)에 나오는 “不憤不啓 不悱不發 擧一隅 不以三隅反 則不復(불분불계 불비불발 거일우 불이삼우반 즉불부)”라는 구절이 대표적이다. 이 말은 “(스스로) 분발하지 않으면 열어주지 않고, 답답해하지 않으면 펴 주지 않는다. 한 모퉁이를 알려주었는데 세 모퉁이로 대답하지 않으면 더 가르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끊임없이 의문을 갖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답답해하며, 선생님께 질문해 깨치려는 자발성이 없으면 옆에서 아무리 도와줘도 공부든 사업이든 제대로 성공할 수 없다. 공자는 이를 간파했기 때문에 “知之者不如好之者(지지자불여호지자) 好之者不如樂知者(호지자불여낙지자)”(『논어(論語)』(옹야편))라고 말했다. “(억지로 배워서)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깨달음을 얻어) 즐거워하는 사람만 못하다”는 뜻이다.

◇중도이폐(中道而廢)와 발분망식(發憤忘食)의 적극성을 되살려야

우리 사회에서는 ‘중도이폐’의 부정적 측면을 지나치게 드러낸다. 무엇을 하다 힘에 부쳐 그만두면 실패자로 낙인을 찍는다. 다른 것에서 다시 시도해 성공을 꿈꾸는 ‘패자부활전’이 없다. 그러다 보니 뭔가 ‘확실한 것’, ‘부모나 선생이 하라고 하는 것’에 수동적으로 시도할 뿐 스스로 ‘즐기고 잘 할 수 있는 것’에 도전하지 않는다.

‘중도이폐’의 긍정적 측면과 ‘발분망식(發憤忘食; 밥 먹는 것도 잊고 일에 몰두한다)’, 그리고 ‘한 모퉁이를 제시하면 세 모퉁이를 찾는(擧一隅以三隅反, 거일우이삼우반)’ 적극성을 되찾는 게 시급하고 절실하다.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사명과 능력을 깨달았을 때 즐겁고 치열하게 노력한다. 그런 노력은 성공과 행복으로 이어진다. 그러면 사람을 2종류로 나누든 3종류로 나누든 상관없다. 그런 사람은 이미 그런 논란에 휩싸이지 않고 훨씬 앞서 가고 있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