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교과서' 사회·경제학자 참여?…"전례없어…현대사 왜곡 우려"

김현미(오른쪽), 김관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19일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사회=뉴스1

정부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면서 경제, 사회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집필진에 포함시키겠다고 밝혔지만 지금까지 거의 전례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역사학계 관계자들은 "근현대사 부분의 왜곡의 가능성이 크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19일 머니투데이가 서울시교육청이 제공한 현행 초등 국정교과서 3·4학년 국어·사회 과목 교과서 4권을 분석한 결과, 타 전공의 대표 집필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3학년 사회 교과서의 대표 집필자 2인(장원순 공주교육대 교수, 정길용 부산 반송초 교사)과 4학년 사회 교과서 대표 집필자 2인(홍미화 춘천교육대 교수, 한춘희 부산교육대 교수)은 모두 초등사회교육 전공이다.

마찬가지로 3학년 국어 교과서 대표 집필진(이경화 한국교원대 교수, 이주섭 제주대 교수, 이재승 서울교육대 교수, 이창근 전주교육대 교수, 최규홍 대구 해안초 교사)과 4학년 국어교과서 대표 집필진(이경화·이재승·이창근·이주섭 교수, 원진숙·이병규 서울교대 교수, 진선희 대구교대 교수)은 모두 초등국어교육 전공자다.

국정교과서뿐 아니라 검·인정제도로 제작되는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도 타 분야 교수나 교사가 집필 작업에 참여하는 일은 드물었다. 과거 중학교 역사 교과서 집필 작업에 참여한 경력이 있는 한 사학계 관계자는 "통상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 교수가 함께 교과서를 쓰지만 경제학자나 사회학자가 집필진에 이름을 올린 경우는 뉴라이트 성향의 일부 교과서 외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역사 학자들은 정부가 타 분야 전공자를 교과서 집필에 참여시키는 것에 대해 "근현대사 부분을 대폭 수정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고 해석했다. 박걸순 충북대 사학과 교수는 "정부가 집필진에 넣겠다는 경제학자나 정치학자는 고대사보다는 근현대사 부분에나 도움을 줄 수 있는 분들"이라며 "몇 없는 집필진에 이들을 넣겠다는 것은 (현대사 부분 수정의) 의도가 다분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일제강점기, 전(前) 대통령에 대한 평가 등의 내용이 포함된 근현대사가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박걸순 교수는 "미국 경제학자 중에는 일제강점기를 식민지근대화론의 관점에서 보는 사람들도 있다"며 "이들은 통계나 수치로 역사를 서술하기 때문에 논리적인 것 같아 보이지만, 수치 이면에 숨어 있는 상황을 읽어내지는 못한다는 맹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2010년부터 교과서 집필 작업에 쭉 참여했던 A교사는 "위안부 문제 역시 당시 일본 측의 모집 공고 등의 사료를 중점적으로 다룬다면 강제 동원 사실이 '자발적 참여'로 왜곡될 수 있다"며 "통계, 수치, 사료보다는 이를 해석하는 시각이 중요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원준 경희대 사학과 교수는 "일본은 1945년 이후의 역사는 정치학 분야에서 집필하는 등 국가별로 학문의 분류가 다른 경우도 있으므로 역사 교과서가 역사학자들만의 전유물이라고 할 수는 없다"면서도 "다양한 사실을 한꺼번에 아우를 수 있는 사람은 역사학자가 돼야 하며 주객이 전도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한편, 교육부는 지난 12일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발표하면서 "역사학자뿐 아니라 경제학자나 정치학자들도 역사 교과서 집필에 참여시키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