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을 먹고 크는 '렌탈의 경제학'

#30대 운전자인 A씨는 타이어 교체시기가 다가오자 인터넷으로 필요한 타이어를 골라 집 근처 영업소로 배달받았다. 프리미엄급 타이어 1개당 월 렌탈료(3년 기준)는 2만300원. A씨는 "한번에 타이어 4개를 모두 교환할 경우 비용부담이 만만치 않았는데 타이어 렌탈을 통해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며 흡족해했다.

#신생아를 둔 주부 B씨는 이달 초 3년 약정, 월 3만원대 요금을 내는 조건으로 공기청정기 렌탈을 신청했다. 전체 비용은 일시불로 구매하는 편이 더 저렴하지만 두 달에 한 번씩 교체하는 필터 비용이 2만원이라는 얘기를 듣고 B씨는 렌탈로 마음을 굳혔다. B씨는 "관리에 따로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아 렌탈을 택했다"고 말했다.


렌탈 시장이 불황의 그늘 속에서 거침없는 질주를 하고 있다. 두 집에 한 집꼴로 정수기, 비데 등 다양한 렌탈 제품을 쓰고 있다. 저성장, 경기침체의 여파로 돈은 지불하되 소유하진 않는 '렌탈'이 보편적인 소비 방식으로 빠르게 자리매김하고 있어서다.

더구나 한 번에 목돈을 들이지 않아도 고가의 다양한 상품을 사용할 수 있고, 주기적인 관리까지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부각되면서 렌탈은 장기화된 경기 침체로 구매력이 약화된 소비자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다.

국내 B2C 렌탈 시장 규모 성장 추이(왼쪽 진한색 막대)/출처=KT경제경영연구소, KDB대우증권

14일 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B2C(기업 대 소비자 간 거래) 렌탈 시장 규모는 연평균 12%대의 성장률을 보이며 지난 2011년 10조6000억원에서 2015년 16조9000원으로 60%가량 커졌다.


정수기, 비데 등 주요 생활가전 렌탈업체들의 누적 계정수는 지난해 3분기말 기준으로 △코웨이 572만개 △청호나이스 102만개 △쿠쿠전자 80만개 △동양매직 75만개 △교원웰스 35만개 등 총 860여만개에 달한다. 지난해 국내 전체 가구수가 1870만인 것을 감안하면 전체 가구의 절반 가까이가 렌탈을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B2C 렌탈 시장의 이 같은 성장세가 △경기 침체에 따른 구매력 약화△가전 교체주기 단축 △렌탈 기간 내 무상 사후관리(AS) 서비스의 편리함 등에 기인한 것으로 본다.

김태현 토러스투자증권 연구원은 "소비자들의 인식이 '소유'에서 '이용'으로 바뀌며 렌탈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며 "휴대폰 의무약정기간, 통신요금제 약정할인이 보편화되면서 렌탈에 수반되는 고정요금 지출의 거부감이 줄어든 것도 한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렌탈 시장의 성장세에 따라 신규 진출 업체도 늘어나면서 시장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업계 및 증권사 등에 따르면 현재 국내 렌탈 업체수는 무려 2만3000여개에 달한다. 아이템도 다양화되는 추세다. 과거 정수기, 비데 등 생활 가전에 국한됐다. 하지만, 넥센타이어가 지난해 9월 타이어 업계 최초로 타이어 렌탈 서비스인 '넥스트레벨'을 선보이는 등 렌탈 아이템은 최근 명품, 유류 등 잡화, 악기, 유아용 장난감 등으로 지속적으로 영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이은영 KT경제경영연구소 연구원은 "합리적 소비에 대한 관심, 친환경을 중시하는 풍토 등에 힘입어 선진국에서 렌탈 서비스는 이미 생활 깊숙이 자리잡았다"며 "국내에서도 향후 위치기반 서비스, 온라인·모바일 결제서비스 등 스마트폰의 확산과 IT기술의 발달이 렌탈시장에 새로운 성장 전환점을 제시해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