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 '빅 배스(Big Bath)', 박정원 부담 덜어주고 용퇴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사진=두산

박용만 두산 (137,600원 ▲2,600 +1.93%)그룹 회장(61)이 큰 조카 박정원 회장(54)에게 그룹 경영권을 넘겨준 표면적인 이유는 박용만 회장의 등기이사 임기 만료다.

박용만 회장의 등기이사 임기는 올해 3월 31일까지로 돼있다. 하지만 박용만 회장은 꾸준히 등기이사 임기가 만료될 때마다 재선임된 전력이 있다. 2012년 4월 이사회 의장을 맡은 뒤에도 2013년 3월 주주총회에서 등기이사로 재선임된 바 있다.


두산그룹은 고 박두병 회장의 '형제경영' 유지를 이어 받아 박용곤 명예회장(84)을 시작으로 박용오(2009년 사망), 박용성(76), 박용현(73), 박용만 회장 등 5형제가 차례대로 그룹 경영을 맡았다. 이들 외에도 박두병 회장의 6남 박용욱 이생그룹 회장(56)이 있으나 그룹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박용욱 회장은 처음부터 독자적으로 무역업(오퍼상)에서 사업을 시작해 이생그룹을 경영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형제 승계 '순번'이 끝나고 다음 항렬, 두산그룹 4세 중 최연장자인 박정원 회장이 경영권 바통을 이어 받은 것이다.

두산 관계자는 "이생그룹은 형제라는 점을 제외하면 지분 등 모든 면에서 두산그룹과 독립적"이라며 "이생을 특수관계사로 봐야할지 과거 두산그룹 내에서 논의된 적이 있으나 결국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결론내렸다"고 설명했다.


박용만 회장은 2일 (주)두산 이사회에서 박정원 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 이유에 대해 "오래 전부터 그룹회장직 승계를 생각해 왔는데 이사 임기가 끝나는 올해가 적절하다고 판단했다"며 "이런 생각으로 지난 몇년간 업무를 차근차근 이양해 왔다"고 말했다.

아울러 "지난해까지 세계적 경기침체 속에서도 턴어라운드 할 준비를 마쳤고, 대부분 업무도 위임하는 등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주)두산 사내 등기이사진은 박용만 회장, 박정원 회장과 함께 오너가가 아닌 이재경 부회장으로 구성돼있다.

박용만 회장과 박정원 회장의 적은 나이 차이도 매끄러운 경영권 승계에 일조했다. 삼촌-조카 관계지만 박용만 회장은 1955년생, 박정원 회장은 1962년생이다. 그룹 입사 시기도 비슷하다. 박용만 회장은 1982년 동산토건(현 두산건설)에 입사했으며 박정원 회장은 1985년 두산산업(현 ㈜두산 글로넷BU)에 입사했다.

지난해 두산그룹이 연결기준 당기순손실 1조7008억원을 기록한 점도 박정원 회장으로의 승계 구도를 위한 '빅 배스(Big Bath)'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빅배스는 CEO(최고경영자) 교체 시기 전임자 임기에 잠재적 손실 등을 대부분 반영하는 등 보수적인 회계를 적용해 차기 CEO의 부담을 덜어주는 전략이다.

두산그룹은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 18조9604억원, 영업이익 2646억원을 거뒀지만 두산인프라코어 (8,020원 ▲50 +0.63%), 두산건설 (1,240원 0.0%) 등 계열사 실적 악화와 구조조정 비용 반영 등으로 당기순손실 1조7008억원을 기록했다.

재계 관계자는 "지난해 두산인프라코어가 신입사원 희망퇴직 등으로 사회적 비판 여론을 감수하면서도 단기간에 4차례에 걸친 대규모 퇴직을 감행한 것은 비단 업황 악화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라며 "박정원 회장으로의 경영 승계를 염두에 둔 박용만 회장이 비판여론과 부담, 잠재적 리스크를 모두 짊어지고 가겠다는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