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절벽' 한진해운, 고민하는 한진그룹

한진해운 선박

채권단 자율협약(공동관리)에 들어간 한진해운 (12원 ▼26 -68.4%)이 유동성 고갈로 벼랑끝에 내몰리고 있다. 용선료 인하 협상을 진행 중인 상황에서 밀린 용선료를 받지 못한 선주가 한진해운 벌크선을 억류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유동성 확보 방안으로 제시한 4100억원 규모의 자산매각도 더디게 진행돼 운영자금 부족으로 최대 위기에 몰렸다.

26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한진해운은 영국계 로펌인 프레시필즈가 포함된 협상팀을 구성하고 지난 10일부터 23곳의 선주들을 대상으로 용선료(선박임대료) 조정에 나섰으나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동성이 사실상 바닥난 한진해운이 용선료를 1000억원 이상 연체하면서 협상 자체를 꺼려 하는 선주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해운업계 핵심 관계자는 "현대상선 용선료 협상이 전세계 해운업계의 최대 관심사가 될 정도로 큰 이슈가 되면서 한진해운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진해운은 151척의 보유선대 중 해외 선주로부터 빌린 선박이 컨테이너선 63척과 벌크선 28척을 합해 91척에 이른다. 올해 23곳의 선주들에게 내야 할 용선료만 9288억원이다. 단순 계산으로도 한진해운이 용선료 인하, 사채권자 채무조정 등 자율협약의 전제조건을 이행하는데 필요한 2~3개월 동안 내야 할 용선료가 2000억원이 넘는다.

한진해운은 그러나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위해 필요한 용선 비용과, 유류비, 항만사용료, 하역비 등 운영자금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채권단도 신규자금 지원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어서 자체적으로 유동성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다. 최근 한진해운의 8만2158 DWT급 벌크선인 한진패라딥호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억류한 한진해운 선주는 현대상선과 용선료 협상을 벌이는 주요 선주 5곳 중 하나인 그리스 나비오스 관계사다. 나비오스는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에서 받는 용선료 비중이 40%에 달할 정도로 두 국적 해운사 의존도가 크다.

나비오스는 최근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재무위기 탓에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로부터 신용등급을 강등(B2→B3)당하기도 했다. 해운업계에선 이런 이유로 나비오스가 용선료 인하를 요구한 한진해운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선박 억류(arrest)라는 '실력 행사'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제는 한진해운의 용선료 연체가 장기화돼 컨테이너 정기선 선주들까지 압류 조치에 나서는 경우다. 벌크선과 달리 컨테이너선은 한진해운이 속한 해운동맹(CKYEH) 소속 선사들과 화주, 화물을 공유하고 있어 선박 압류시 상황이 복잡해진다. 화물 운송이 지연되면 화주들이 거액의 손해배상소송에 나설 가능성도 크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선주들이 저마다 채권 확보를 위해 (선박 압류 등에) 경쟁적으로 나서 컨테이너선이 하나라도 억류된다면 상황이 걷잡을 수 없게 된다"며 "최근 한진해운이 가입한 해운동맹(THE 얼라이언스)에서 퇴출되고 생존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한진해운의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면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정부와 채권단은 한진해운이 유동성 위기를 벗어나려면 사실상 그룹 차원의 지원 외엔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한진해운은 채권단 자율협약을 신청하면서 4100억원 규모의 자구안을 발표했으나 현재 1500억~1600억원 규모의 자산매각을 이행한 상태다.

이달 말 일본 도쿄 사옥 매각 대금과 에이치라인해운에 판 벌크선 및 지분(5%) 매각액 500억원 정도가 유입된다. 하지만 유동성 위기를 막기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선박 억류 등의 문제는 큰 틀에서 용선료 인하 협상 과정의 일환으로 봐 달라"며 "상황이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한진해운이 유동성 확보를 위해 전사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그룹에서도 해법을 다각도로 고민하고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