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첨될 뻔 했는데…" 즉석복권에 숨겨진 비밀

/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

“어휴 거의 당첨될 뻔 했는데, 아깝네. 거의 다 맞았는데.”

복권 가운데 가장 빨리, 손쉽게 당첨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게 바로 즉석복권입니다. 보통 감춰져 있는 부분을 긁어서 그림을 서너 개 맞추면 당첨되게끔 만들어져 있습니다.


즉석복권의 당첨 방식은 카지노에 있는 슬롯머신과 유사합니다. 슬롯머신도 그림 세 개를 맞추면 잭팟(jack pot)이 터지게끔 프로그램이 돼 있습니다.

즉석복권을 긁거나 슬롯머신을 당기면 나오는 결과는 두 가지입니다. ‘당첨’(win) 아니면 ‘꽝’(loss)이죠. 그런데 사람들은 여기에 또 다른 결과가 한 가지 더 숨어 있다는 사실은 잘 모릅니다.

'아까비'(near miss)


골프 경기에서 퍼팅한 볼이 홀컵을 살짝 빗나갔을 때, 테니스 경기에서 서브한 공이 라인을 살짝 벗어났을 때 플레이어는 “아까비~”라는 탄성을 지릅니다. ‘아까비’는 스포츠 경기에서 안타까운 장면이 연출될 때 자주 사용되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즉석복권과 슬롯머신에서도 이런 짜릿한 경우가 발생합니다. 거의 당첨될 뻔했는데 막판에 살짝 빗나가면서 안타깝게 만드는 그런 경우입니다.

사실 ‘아까비’는 ‘꽝’입니다. 당첨이 안됐으니까요.

그런데 ‘아까비’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은 저마다 다릅니다. 마치 물이 절반 담긴 물컵을 바라보는 시각이 제각각인 것처럼요.

신경과학자인 서던일리노이대학(Southern Illinois University)의 리자 하비브(Reza Habib) 박사는 2010년 슬롯머신 결과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에 극명한 차이가 있다는 재밌는 실험결과를 보여줬습니다.

그는 도박에 중독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일반 사람들에게 슬롯머신 결과를 보여주고 MRI 촬영을 통해 이들의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관찰했습니다.

예상한대로 도박에 중독된 사람의 뇌는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슬롯머신에 ‘당첨’됐을 때 더 흥분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슬롯머신의 그림이 막판에 살짝 돌아가 안타깝게 당첨에서 빗나가는 ‘아까비’ 상황에서 도박에 중독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반응은 극도로 달랐습니다.

‘아까비’ 상황에서 도박에 중독되지 않은 사람의 뇌는 그냥 ‘꽝’과 별 다름없이 반응했습니다. 그러나 도박에 중독된 사람의 경우엔 뇌가 ‘당첨’됐을 때와 유사하게 흥분된 반응을 보였습니다.

도박에 중독되지 않은 사람은 ‘아까비’가 나오면 ‘아, 또 꽝이네. 역시 난 도박에 소질이 없어. 돈을 더 잃게 전에 그만 둬야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슬롯머신을 그만두고 카지노를 떠납니다.

그런데 도박에 중독된 사람은 ‘아까비’가 나오면 ‘어휴 거의 당첨됐는데. 다음번엔 되겠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또 돈을 넣고 슬롯머신을 잡아 당깁니다. ‘아까비’가 나오면 나올수록 도박에 중독된 사람은 계속 슬롯머신을 당기려는 충동에 휩싸입니다.

카지노를 운영하는 회사는 이런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수십년간 ‘아까비’가 좀 더 많이 나오도록 전략적으로 슬롯머신 프로그램을 바꿔왔습니다. 즉 '꽝'이 나와도 그냥 '꽝'이 아니라 '아까비'가 나오도록 한 것이죠. ‘아까비’를 통해 도박중독자들을 더 흥분시켜 계속 슬롯머신을 당기게 할수록 카지노 매상이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슬롯머신이 안타깝게 빗나갔을 때 흥분하며 계속 슬롯머신을 당기는 도박중독자들은 ‘아까비’가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나와도 멈추지 않습니다. 돈을 완전히 잃을 때까지 말이죠.

즉석복권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슬롯머신과 같이 그림 맞추기 방식으로 당첨 여부가 결정되는 즉석복권도 ‘아까비’가 좀 더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제작해 왔습니다.

복권중독자는 처음엔 한 두 개만 긁는다고 시작했지만 결국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 복권을 구입해 긁고 맙니다. ‘아까비’의 유혹에 걸려들기 때문이지요.

그럼 주식시장에서는 어떨까요? 도박중독자나 복권중독자와 같이 주식투자자 가운데도 '아까비' 상황에서 더 주식투자를 하려는 충동에 빠지는 주식중독자들이 있습니다.

‘이번 주에 팔았으면 상한가였는데’, ‘지난 주에만 팔았어도 하한가는 면할 수 있었는데’ 등이 이들이 단골 메뉴로 말하는 '아까비' 사연입니다.

그런데 주식시장은 슬롯머신이나 즉석복권과 달리 결과들이 미리 프로그램 돼 있지 않습니다. '아까비' 상황을 전략적으로 더 많이 나오게 할 수도 없고, '꽝'이나 '당첨'이 나올 확률이 미리 정해져 있지도 않습니다.

주식시장에서 ‘아까비’ 상황이 발생하면 그건 투자자의 잘못된 투자방식 때문이지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닙니다. 즉 '아까비'는 투자자 자신이 그렇게 매매를 하면서 사후적으로 '아까비'가 되는 것이지 미리 '아까비'가 나오도록 프로그램 돼 있는 게 아닙니다. 잘못 매매한 나는 '아까비'가 되지만 매매하지 않은 제3자는 전혀 '아까비'가 되지 않습니다.

당신은 주식투자를 하면서 '아까비'를 얼마나 많이 경험했나요? 만약 매번 경험한다면 투자방식을 얼른 바꿔야 합니다.

그리고 ‘아까비’를 경험했을 때 ‘난 주식에 소질이 없나봐’하며 주식투자를 그만두는 쪽과 ‘정말 아깝지만 다음엔 대박을 낼 수 있어’라며 또 다시 주식투자에 덤벼드는 쪽 가운데 어느 쪽입니까?

만약 ‘아까비’를 경험하고 더 주식투자를 하려는 충동에 빠진다면 당신은 이미 주식중독자입니다.

'아까비'는 '꽝'입니다. 투자방식을 고치던가 아니면 주식투자를 그만 둬야 합니다. 돈을 다 날려버리기 전에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