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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웃겨도 "하하하하"…'TV 웃음 더빙알바' 해보니

[보니!하니!] 3시간 웃고 8000원…'돈' 벌자고 이 일은 못해

머니투데이 이슈팀 진은혜 기자 |입력 : 2016.07.17 08:18|조회 : 79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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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보니! 하니!'는 기자들이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듣고, 해보는 코너입니다. 일상에서의 직접적인 경험을 가감없이 전달하고자 만든 것으로, 보니하니는 '~알아보니 ~찾아보니 ~해보니 ~가보니 ~먹어보니' 등을 뜻합니다. 최신 유행, 궁금하거나 해보고 싶은 것, 화제가 되는 것을 직접 경험한 뒤 독자들에게 최대한 자세히 알리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대기 중인 더빙 알바 참가자들. 방송에서 주로 여성의 음성을 쓰기 때문에 여성 지원자만 받는다./사진=진은혜 기자
대기 중인 더빙 알바 참가자들. 방송에서 주로 여성의 음성을 쓰기 때문에 여성 지원자만 받는다./사진=진은혜 기자

안웃겨도 "하하하하"…'TV 웃음 더빙알바' 해보니
"여러분, 인생은 리액션이고 리액션은 타이밍이야. 시작하고 끝나는 타이밍 잘 맞춰주세요."

'웃음 대장'의 지령이 떨어지자 온 신경을 전방의 TV에 집중한다. 중년 방송인의 시덥잖은 농담에도 녹즙 내듯 웃음을 쥐어짠다. 배에 힘을 주고 온몸을 부르르 떨며 가까스로 5초 이상 웃는다. 웃음이 맷집이고 리액션이 경쟁력이 되는 곳. 이곳은 예능 프로그램 웃음 더빙 아르바이트 현장이다.

웃음 더빙 알바란 예능 프로그램이나 시트콤의 배경 웃음소리를 녹음하는 일이다. 녹화현장에 참관하는 방청과는 다른 개념으로 스튜디오에서 편집을 거의 끝낸 방송을 보며 웃고 환호하는 소리를 녹음한다. 자칫 밋밋할 수도 있는 방송에 감칠맛을 더하는 과정인 셈이다.

◇ 그 날, 나는 최초의 시청자였다
신기루가 보일 만큼 뜨거웠던 금요일 오후 3시. 서울 상암동에 위치한 모 방송국에 들어섰다. 1층 로비에 들어서니 50여명의 여성들이 벌써 옹기종기 모여 대기 하고 있었다. 방송은 주로 여성의 음성을 쓰기 때문에 여성 지원자만 받는다. 이 중 일부는 A 프로그램에, 나머지는 B 프로그램에 투입된다. 기자는 노래 경연 프로그램인 A에 배정받았다.

인솔자를 따라 방음벽이 설치된 방송국 스튜디오에 들어섰다. 기자 포함 총 30명의 참가자가 6열 5행으로 나열된 간이 의자에 착석했다. 대형 TV 2대와 스피커, 천장과 벽에 설치된 마이크가 눈에 들어왔다. 어수선한 분위기가 잠잠해지자 커트 머리에 목소리가 큰 웃음대장이 앞에 나왔다. 그는 몇 가지 지시 사항과 주의 할 점을 전달했다.

"여러분은 본방송 이틀 전에 이 프로그램을 보는 거예요. 오늘 본거 유출하면 벌금 물어요." 참가자는 방송 내용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겠단 내용의 서약서에 서명해야 한다. 최초의 시청자로서 이틀 먼저 방송을 보는 대신 비밀유지 책임이 부여되는 것이다.

대장은 몇 가지 수신호를 알려줬다. 그가 주먹을 쥔 손으로 원을 그리면 "우~" 하고 환호해야 한다. 그가 "으흐흐" 하고 웃기 시작하면 따라서 박장대소할 타이밍이다. 그가 양손을 피고 손바닥을 바닥 쪽으로 내리면 웃음과 환호를 멈춘다.

스튜디오를 밝히던 조명이 꺼졌다. 어두운 TV 화면이 빛으로 채워지고 스피커에선 프로그램 인트로송이 흘러나왔다. 화면에 등장한 MC가 힘차게 프로그램 이름을 외쳤다. 2대의 TV 사이에 선 대장이 원을 그렸다. "우우우~" 일제히 환호가 터져나왔다.

스튜디오 내부의 모습. 전방에 대형 TV 두 대, 곳곳에 마이크가 설치 돼 있다./사진=진은혜 기자
스튜디오 내부의 모습. 전방에 대형 TV 두 대, 곳곳에 마이크가 설치 돼 있다./사진=진은혜 기자
◇웃는게 이토록 고된 일이었던가
시작한지 50분쯤 지났을까. 첫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갑작스런 공복과 더불어 체력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로비에서 서로 초코바를 주고받던 아주머니들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아무런 준비 없이 온 것 같아 후회가 밀려왔다. 녹음 시작 전 웃음대장이 "웃다가 지칠 때 상체를 앞뒤로 흔들면 덜 힘들다"고 한 조언이 떠올라 미친 듯이 몸을 흔들며 웃었다. 웃음도 요령이었다.

두 번째 위기는 1시간20분쯤 지나 찾아왔다. 프로그램에 등장한 가수의 노래에 심취해 무의식적으로 따라 부를 뻔한 것이다. 그때 웃음 대장의 따끔한 경고가 떠올랐다. "간혹 음악에 빠져 따라 부르는 분들 있는데 그럼 다시 녹음해야 해요. 정신 똑바로 차려요." 열렬한 리액션은 더빙 알바의 주된 업무지만 혼자 튀는 행동은 업무상 과실이다.

더빙이 끝나기까지는 총 3시간이 걸렸다. 영상물 길이는 1시간50분 정도지만 다시 녹음하거나 잠깐 멈추기를 반복하며 시간이 지체된 것이다. '이 정도로 배에 힘을 주면 복근이 생기지 않을까'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웃음을 쏟았더니 현기증이 났다.

일이 끝난 후 뒷자리에 앉은 C씨에게 힘들지 않냐며 말을 건넸다. C씨는 "그냥 웃기만 하는데 뭐가 힘드냐"고 답했다. 방송국 가까이 거주한다는 그는 집에만 있는 게 무료해 이쪽 일에 입문했다. 동년배 친구도 만날 수 있고 웃으면서 일할 수 있다는 게 그가 꼽은 이 일의 장점이다. 그는 지쳐 허공만 바라보는 기자에게 "웃음더빙은 수월한 편이다. 방청은 더 힘들다"며 위로(?) 했다.

반면 20살 동갑내기 친구라는 D씨와 E씨의 생각은 좀 달랐다. 방송국 구경도 할 겸 이 일에 지원했다는 두 사람은 한 번 더 해볼 의향이 있냐는 질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체력과 감정소모가 너무 크다. 안 웃긴데 웃어야 할 땐 정말 괴로웠다"는 D씨의 말에 E씨도 "재미삼아 한번은 해도 두 번 할 일은 절대 아니다. 인공지능이 더 잘할 것 같다"고 받아쳤다. 지친 두 사람은 주린 배를 부여잡고 저녁을 먹으러 떠났다.

일이 다 끝나고 프로그램 참가 영수증을 제시해야 교통비를 받을 수 있다. 이날 지급받은 교통비는 8000원./사진=진은혜 기자
일이 다 끝나고 프로그램 참가 영수증을 제시해야 교통비를 받을 수 있다. 이날 지급받은 교통비는 8000원./사진=진은혜 기자

◇내 웃음의 값어치는?…"건당 8000원"
이날 지급받은 수당은 총 8000원. 3시간 노동의 대가치고는 너무 가혹했다. 현장에선 수당을 '교통비'라고 부른다. 더빙 알바를 채용하고 관리하는 업체 측은 "타사는 5000~6000원 주는데 우린 좀 더 쳐 준다"며 교통비를 쥐어줬다. 이들은 "지급 기준은 참석 시간이 아니라 방송 건당"이라고 덧붙였다.

돈을 받고 나니 프로그램별로 녹음된 웃음 음성을 쓰는게 더 효율적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빙 알바의 주요 목적이 주요 장면에 일반인의 웃음소리를 입혀 시청자에게 더 큰 즐거움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지점에 이 일의 또 다른 존재 가치가 있었다. 방송국 관계자는 "제작자 입장에선 촬영부터 편집까지 1주일 내내 같은 걸 보니까 비약이나 부족한 부분을 놓치기 쉽다. 프로그램 방영 전 더빙 알바에게 연출과 자막이 들어간 편집 본을 공개해 반응을 살핀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령 빵 터질 거라 예상한 부분에서 참가자들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면 그 부분을 다시 편집한다"고 덧붙였다. 더빙 알바는 최초의 시청자이자 '편집의 이정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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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로그인lsy4972  | 2016.07.17 14:31

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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