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관리 '기로' 한진해운…5500억~6000억 자구안 통할까

한진그룹이 KDB산업은행 등 채권단에 제출할 한진해운 (12원 ▼26 -68.4%) 자구안 규모가 5500억~6000억원 수준인 것으로 24일 전해졌다. 채권단이 요구하는 7000억원에는 못 미치지만, 법정관리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한 '절충안'이라는 설명이다.

한진그룹이 25일 제출할 '답안지'에 대해 채권단이 어떤 채점 결과를 내놓을지 주목된다.


당초 한진그룹은 자구안 규모로 4000억원 이상은 어렵다는 입장을 보인 반면 채권단은 부족자금 규모를 감안할 때 최소 7000억원 정도는 되어야 한다며 팽팽한 줄다리기를 해왔다. '3000억원의 간극'이 존재했지만, 한진그룹의 자구안에 따르면 그 차이는 1000억~1500억원으로 줄어들게 된다.

채권단은 내년 말까지 한진해운이 경영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1조원에서 1조2000억원 정도로 보고 있다. 한진해운은 이와 관련, 유상증자(4000억원)와 용선료 조정(약 1000~2000억원), 선박금융 만기 연장 등을 통해 부족자금을 조달하겠다는 자구안을 제출한 바 있다.

지난 4월에는 터미널·사옥 매각 등을 통해 부족자금 4112억원을 조달하겠다는 방안도 제출했고, 이후 일본 도쿄 사옥, 아시아 항로 운영권, 베트남 터미널 지분 매각 등을 통해 2677억원을 확보했다. ㈜한진과 미국 롱비치터미널(1000억원 규모) 유동화 작업을 시작했을 때에는 "팔고 싶어도 더 이상 팔 자산이 남아 있지 않다"고 항변했다.


채권단은 그러나 유상증자 외 용선료 조정에서만 진전을 보이고 있을 뿐 선박금융 상환 유예 협상은 지지부진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HSH노르드방크, 코메르츠방크 등의 금융기관이 정부의 지원을 전제로 한 만기 연장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현재까지 현대상선 (15,080원 ▲230 +1.55%)과의 형평성 문제로 "추가지원은 없다"는 정부 입장은 확고하다.

법정관리를 피하려면 자구안에 특단의 대책이 담겨야 한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이와 관련, "한진그룹이 4000억원 이상의 노력을 보여야 산은도 한진해운 용선료 조정 협상과 해외 선박금융 유예 협상이 원활해지도록 도울 수 있다는 뜻을 전달해 절충안이 나왔다"고 전했다.

구체적인 자구 방안과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다. 한진그룹은 대한항공 유상증자 등으로 4000억원을 조달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으나, 증자 액수를 늘려 5500~6000억원을 확보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그룹은 이미 1년여 전 대한항공 유상증자를 통해 1조원 가량을 한진해운 회생을 위해 지원했다. 이번 자구안에서 대한항공이 추가 증자 부담을 안고 추가 지원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 대한항공의 부실을 우려한 주주들의 반대는 넘어야 할 산이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지난 4월 한진해운이 자율협약에 들어간 이후 한진해운의 경영권 포기를 선언했고, 이후 시장에서는 한진해운과 대한항공의 관계가 끊어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손실확대가 지속되고 있다.

한진해운 지분(33.2%)을 보유한 대한항공이 1~6월간 입은 손상차손(시가변동으로 인한 자산가치 하락)은 6월 말 기준 2814억원이었다. 여기에 지난 2월 인수한 한진해운 신종자본증권과 관련된 1100억원의 손상차손을 더해 전체 손실액이 3914억원으로 커졌다.

대한항공의 최대주주는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31.0%)이며, 한진칼의 5%이상 지분을 소유한 주주는 조양호 회장(17.67%), 국민연금공단(11.35%), KB자산운용(9.90%), 한국투자신탁운용(6.69%) 등이다. 조 회장을 제외한 주주들이 추가 증자에 동의해야 하는데, 험로가 예상된다.

조 회장의 사재출연 여부도 관심이다. 자구 규모가 채권단의 기대에 못 미치지만 최대한 성의를 보인다는 측면에서 출연이 이뤄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올 초 현대상선을 살리기 위해 사재 300억원을 출연한 바 있다.

법정관리라는 최악의 상황을 벗어나려면 채권단과 한진해운이 조건부 자율협약이 만료되는 내달 4일 전까지는 어떤 식으로든 합의를 봐야 한다.

채권단 관계자는 "자구안에 7000억원 확보 계획이 명시되지 않으면 한진해운은 9월 4일 이후 법정관리행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에 변화는 없다"며 "자구 방안을 보고 입장을 정리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