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업계 1위 타이틀보다 선의의 경쟁자 환영"

"NH투자증권이 IB(투자은행) 분야에서 줄곧 1위를 유지하는 것은 시장이 정체돼 있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회사가 우리를 추월하는 것은 우리나라 자본시장이 발전하는 셈이니 나쁠 게 없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들처럼 서로 경쟁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정영채 NH투자증권 IB사업부 대표(사진)는 "외형 부문에서 국내 1위를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수년째 국내 증권 IB부문 최강자로 군림해 온 NH투자증권의 아성이 흔들리고 있다. NH투자증권은 올해 상반기에도 영업수익(매출) 1556억원, 영업이익 824억원을 기록하며 독주하고 있다. 하지만 경쟁사들의 추격이 어느 해보다 거세다. 특히 상반기 영업수익 1200억원(추정), 영업이익 646억원을 기록한 한국투자증권이 하반기에 굵직한 IPO(기업공개)를 준비하고 있어 NH투자증권의 실적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게다가 미래에셋대우와 미래에셋증권 그리고 KB투자증권과 현대증권의 합병으로 강력한 경쟁상대가 등장하는 것도 NH투자증권 입장에선 새로운 위협요인이다.


정 대표는 국내 IB를 대표하는 인물로 꼽힌다. 그래서 업계 순위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그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이와 관련 정 대표는 "자본시장의 역할은 실물경제가 성장하는데 기여하는 것"이라며 "경쟁자들이 등장하게 되면 자본시장의 경쟁력이 커지게 되는 순기능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자본시장이 전보다 더 효율적으로 작동해 실물부문의 성과가 좋아지면 증권사들이 가져갈 수 있는 몫도 커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달 초 금융당국이 내놓은 '초대형IB 육성방안'에 대한 기대도 크다. NH투자증권의 자기자본은 4조5000억원으로 기업 고객과의 현물환 매매 업무와 발행어음을 통한 자금조달 그리고 어음 발행분에 대한 레버리지 규제 미적용 등 수혜를 누릴 수 있다. 그는 "전체적으로 자금조달의 다양성이 생겼다"며 "위험이 있는 성장산업에 투자하는 모험자본의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지난 2005년 옛 우리투자증권 IB사업본부장으로 와서 당시 IB분야 7~8위권이었던 사업부문을 수년 만에 업계 1위로 끌어 올렸다. 특정분야에서 1등을 목표하지 않고 IPO(기업공개), M&A(인수합병), 인수금융, 부동산금융, 사모투자(PE), DCM(채권자본시장) 등 IB와 관련된 전 분야에서 고르게 톱티어(상위권)에 들자는 전략이 통했다는 평가다. 정 대표는 "기업들이 IB와 관련된 서비스를 원할 때 선택될 수밖에 없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며 "직원들이 한 분야에서 오래 일할 수 있게 해 전문성을 높여준 것이 고객들의 신뢰를 얻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NH투자증권 IB본부의 경우 특정분야의 매출 비중이 30%를 넘지 않는다. 그래서 수익구조가 안정적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옛 대우증권의 자금부서장으로 있으면서 대우그룹의 흥망을 지켜본 그는 '대우사태'를 온 몸으로 겪었던 이야기를 주변에 자주 옮긴다. 다시는 있어서는 안될 일종의 금융시장 징비록으로 삼기 위해서다. 웅진, LIG그룹 등의 자금 숨통을 트이게 해준 역할을 한 것도 그였다. 그는 개인적인 목표도 소개했다.
정 대표의 개인적인 목표는 후배들이 IB사업부문을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정 대표는 "10년 전 아시아지역 IB분야의 리더가 되자는 목표를 세웠는데 어느 정도 이룬 것 같다"며 "투자대상과 지역을 넓혀갈 수 있도록 업계 시니어의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