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렁이는 환율, 치솟는 금리… '시계제로' 통화정책

미국 45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난해 11월 이후 한국은행 통화정책 결정문에는 새로운 문구가 추가됐다. 바로 ‘미국 새 행정부의 정책 불확실성’이다. 이는 트럼프가 내세운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에 기반한 각종 정책들이 우리나라 입장에서 득보다 실이 될 것이란 전망이 깔려 있다. 그렇지 않아도 올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추가 금리인상 예고와 국내 가계부채 증가로 대응책을 부심 중인 한은에 또 다른 중요한 정책 변수가 추가된 것이다.

이런 우려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전후 곧바로 현실화 됐다. 그의 ‘강달러 우려’ 발언은 국내외 환율 시장에 충격파를 던졌다. 지난해 12월 연준 금리인상 영향으로 연말 ‘달러당 1210원’을 넘었던 원/달러 환율은 트럼프 부임 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70원 이상 떨어졌다. 원/엔 재정환율도 심리적 지지선인 ‘100엔당 1000원’이 위협받고 있다. 지난 15일에는 100엔당 999.08원에 마감, 2016년 2월 1일(989.12원) 이후 1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소규모 개방경제로 비기축통화국인 우리나라는 환율 민감도가 높다. 단기 환율 변동성이 클수록 경제에 악재로 작용될 우려가 크다. 외환당국이 하루 10원 이상 급등락하는 장을 반기지 않는 이유다. 올해 1월 원/달러 환율 변동폭은 일평균 7.7원으로 2011년 남유럽 재정위기 이후 가장 변동성이 컸던 지난해(7.5원)보다 확대됐다.

미국 환율조작국 지정 우려로 외환당국 미세조정 대응도 녹록치 않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펼쳐질 ‘최악의 시나리오’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유럽, 일본, 중국처럼 자국 통화가치를 방어할 수단이 거의 없다”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향후 한·중 통화스와프가 중단될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시장금리 상승세도 주목할 점이다. 한은이 1.25% 기준금리를 유지하기 위해 시장안정화 조치를 하고 있지만 장기금리까지는 컨트롤 하기 어렵다. 실제로 5년물 이상 장기금리와 연동되는 신규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지난해 10월 이후 평균 0.4%포인트 상승했다. 대출금리가 오르면 가계 이자부담이 커져 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은 추정결과 대출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연간 가계 이자부담은 약 9조원 늘어난다. 그만큼 소비여력은 줄어 들어 내수에 악영향이 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전체 대출자 75%, 신용등급 7~10등급 저신용자 80% 이상이 변동금리로 돈을 빌렸다. 금리인상기의 ‘뇌관’이 될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국내 경제는 앞선 미국 금리인상기와 달리 침체 국면이다. 한은이 내외 금리차를 고려해 기준금리를 올리는 것도 쉽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은 통화정책 향방에 대한 시장의 혼선도 상당하다. 국내 투자기관과 전문가들은 동결기조 유지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해외 투자은행(IB)들의 생각은 다르다. 특히 모건스탠리는 최근 한은이 올해 금리를 세 차례 내려 연말 국내 기준금리가 0.50%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한은은 어느 때보다 신중한 입장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대외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는 통화정책 효과가 제한적”이라며 추가 금리조정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수 금통위원들도 경기회복을 위해 일단 재정을 더 풀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향후 위기 상황에 대비한 한은 역할론을 주문하는 의견도 많다. 금리 이외에 새로운 정책 수단을 고민할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임승태 금융채권자조정위원회 위원장(전 금통위원)은 “한은 금융중개지원대출 한도를 50조원으로 대폭 늘려 성장성 있는 중소기업이나 취약계층 가계부채 해소에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