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기마다 '교복 대란'…살 길 찾기 바쁜 교복업체들

"5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공장을 가동했는데 '학교주관구매제' 시행 이후 수요 예측이 어려워 봄·여름에는 거의 주문량이 없어요. 대부분 공장이 생산 라인을 반으로 줄이거나 아예 폐업한 곳도 있습니다. 연말이 가까워져서야 낙찰된 업체들의 주문이 몰리는데 생산 라인은 부족하니 촉박한 납품 일정을 맞추기 어려운 아이러니한 상황이 나올 수 밖에 없죠."(A교복생산업체 관계자)

"낙찰 업체로 선정됐지만 학교에서 추가 할인, 제품 기증 등 무리한 요구를 제시해 오히려 난감합니다.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학교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니 한숨만 나오네요."(B교복업체 대리점주)


2015년 교육부가 '학교주관구매제'를 도입한 후 매년 '교복대란'이 일고 있다. '학교주관구매제'는 개별 학교가 직접 업체를 선정해 학생들에게 교복을 일괄 공급하는 방식인데 촉박한 납품 일정, 재고 부담 등으로 업체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최저가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교복 품질이 저하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제도 시행 3년차, 교복값 내려갔지만='학교주관구매제'는 교육부가 서민 물가안정과 교육비 절감 취지로 2015년부터 시행했다. 국·공립학교는 의무, 사립학교는 권고 사항이다. 초기에는 최저 가격이 유일한 기준이었으나 생산현황·품질·가격 등을 종합 평가하는 제한적 최저가 입찰제 형태로 자리잡았다. 시행 후 전국 평균 낙찰가는 2015년 16만8490원(동복 4pc 기준)으로 2014년 개별 구매 평균가 25만6925원(교육부 전국 국·공립학교 중·고등학교 전수조사), 공동구매 평균가 20만506원보다 각각 34%, 16% 감소했다.

역효과도 낳았다. 업체들은 신입생 수요 예측 후 8~10개월 전에는 생산에 들어가야 안정적으로 납품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학교들이 학사 일정에 쫓겨 연말에 선정 작업을 시작해 정상적인 사업 계획이 불가능해졌다. 납품사로 선정되면 1~2월에 생산을 시작해 3월 입학식까지 한두 달 만에 사이즈 조사·생산·납품 등 모든 과정을 마쳐야 한다. 기간을 맞추지 못해 신입생들이 사복을 입고 등교하는 상황이 벌어지기 일쑤다.


C교복업체 관계자는 "현실과 맞지 않는 최저가 경쟁 구도는 오히려 품질 저하를 가져온다"며 "중소업체의 품질 저하, 재고 및 유통망 부족, A/S(사후관리) 불편함 등을 이유로 비슷한 가격이면 타 브랜드 제품을 구매하려는 소비자들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교표(학교마크) 상표제까지 도입하면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서울시교육청이 학교주관구매제 강화책으로 교표를 상표등록해 선정 업체에만 사용권을 주는 방안을 내놨다. 2018년부터 일부 학교에 한해 시범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공공재 성격의 교표를 특정 업체에게만 허용하는 것은 판매업자의 영업 자유, 소비자의 선택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시장 갈수록 어려워…살길 찾는 교복 업체들=시행 첫해, 국내 교복 시장 점유율 70% 이상을 차지했던 4대 업체(형지엘리트, 아이비클럽, 스마트에프앤디, 더엔진(스쿨룩스)) 매출은 많게는 34.5%까지 감소했다. 제도 개선을 요구하며 입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던 것도 실적 하락에 작용했다. 어쩔 수 없이 입찰 경쟁에 뛰어들면서 지난해에 소폭 만회했지만 여전히 사업 환경은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교복 산업은 다품종 극소량 생산체제다. 전국 5300개가 넘는 학교별 지정 디자인에 특정 수요를 대상으로 제품을 공급한다. 업체들은 학교에서 정해주는 기준을 바탕으로 학생들의 만족도를 동시에 높일 수 있는 제품 개발을 위해 힘쓰고 있다. D교복업체 관계자는 "원가를 낮추면서 품질은 유지해야하니 몇배의 노력이 든다"며 "품질 및 디자인 개발 등 연구 활동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매년 학생수도 감소해 국내 시장 환경은 더 어렵다. 이에 업체들은 저마다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더엔진은 최근 짧은 기간에도 납품이 가능하도록 생산 시스템을 강화했다. 스마트에프앤디는 유치원복 브랜드 '리틀스마트'를 론칭해 원복 시장에 진출했다. 중국 보스덩 그룹과 손잡고 현지 학생복 시장에도 진출했다. 형지엘리트도 중국 빠오시니아오 그룹과 합자법인을 설립해 교복에 이어 운동복 등으로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E교복업체 관계자는 "교복 품질 향상은 물론 소비자들의 선택권이 보장받는 것이 중요하다"며 "정부가 원가를 합리적으로 검토해 기준 가격을 제시한 후 이를 바탕으로 업체들이 자유롭게 경쟁하는 시장 환경이 구축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