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위 부재 여파 현실화, '타임래그' 직면한 文정부

머니투데이

우경희 기자

문재인정부 시스템에 일시적 오류가 감지된다. 겉보기엔 ‘위장 전입’ ‘인사 원칙’ 등 거대담론 문제 같지만 이면엔 '인수위(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없는 인수'가 있다. 선거 캠페인과 국정 운영, 공약과 정책 사이의 괴리가 불거진 때문이다. 자연스레 정책 전반에 ‘타임래그(time lag : 시간지연)’가 예상된다.

29일 정부와 국회에 따르면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준이 늦어지면서 새 정부 정책 추진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공백 최소화를 위해 취임 첫날 총리 후보자를 지명했지만 결국 그 효과를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번엔 야당이 발목을 잡았다고 보기 힘들다.

문 대통령이 던진 공약이 덫이 됐다. 이른바 ‘인사 5대 원칙’이다. 야당 의원은 “자승자박”이라고 표현했다. 청와대도 모르지 않는다. 공약을 구체화해 기준을 제시한 뒤 인사를 해야 하는 데 다듬을 시간이 부족했다는 게 청와대 설명이다. 청와대는 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의 위장전입을 모두 알고도 전자는 공개하고 후자는 공개하지 않았다. 내부적으론 나름의 인사 기준이 있었다는 거다. 하지만 그 기준은 정형화되지도 대중을 설득할 만큼 완성되지도 않았다. 이전 정부라면 인수위에서 다듬었을 문제다.

조기대선으로 인해 빚어진 인수위 실종사태가 문재인정부의 이상을 현실에 곧바로 부닥치게 했다. 준비된 정부를 내세워 새로운 행보를 이어갔지만 결국 디테일 부족이 확인됐다. 인수위 70일은 정부 편제를 새 대통령 철학에 따라 바꾸고 공약 이행 방법을 구체화하는 기간이다. 문재인정부엔 이 기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한 경제부처 관계자는 "인수위가 없어서 인사 5대원칙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는 임종석 비서실장의 말이 틀린말은 아니다"고 했다.

인수위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를 출범시켜 가다듬고 있지만 뜸 들이면서 밥을 내놔야 하니 버겁다. 이번엔 ‘인사 원칙’이 불거졌지만 곳곳에 복병이 존재한다. 이상과 현실간 괴리, 선거와 국정의 다른 무게감을 느끼게 할 이슈는 쌓여있다. 대표적인 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공항을 찾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약속했다. 이벤트가 끝나고 그럼 어떻게 할 것이냐를 문의했을 때 별도 법인을 설립할지, 아니면 그냥 정규직으로 바로 전환할지를 놓고 그제야 격론이 벌어졌다. 문 대통령의 ‘아젠다 제시’로는 환영받을 만한 이슈였지만 기업 현장은 비정규직 대책을 두고 혼란에 빠져 있다. 청와대와 국정기획위, 한국경영자총연합회(경총)가 신경전을 벌인 것도 ‘구체’가 없는 정책 아젠다 때문이다.

일자리 상황판도 비슷하다. 취지는 야당도 공감할 정도로 좋다. 하지만 각론이 문제다. TK(대구경북) 출신 한 한국당 의원은 "매달 취업자 수를 챙기겠다는 취지엔 공감하지만 방식을 보면 '초안의 초안'대로 한 느낌"이라며 "매달 기업의 채용성적을 대통령 눈앞에 띄워놓는다니, 다들 벌써 블랙리스트라며 무서워한다"고 말했다.

공약을 정책화할 시간 부족이 불러온 ‘타임 래그’다. 결국 해법은 일관된 방향 제시와 시간이다. 야당은 인수위 부재에 따른 일시적 오류를 공약 불이행으로 몰고 가선 여론의 역풍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청와대도 국회와 조율하며 나가야 한다. 한 야당 의원은 "원칙의 관철도 공약이지만 소통과 협치도 공약이었다는 점을 명심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