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당 40만원' 매몰비 책임은? 신고리 5·6호기 3대 쟁점

머니투데이

세종=유영호 기자
정혜윤 기자

정부가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6호기 공사를 중단하고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시민배심원단을 통해 백지화 여부를 결정하기로 한 것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공론화 결정의 절차적 정당성부터 매몰비용(의사결정 변경으로 다시 회수할 수 없는 비용) 문제까지 후폭풍이 거센 것. 공론화가 오히려 사회적 갈등을 부추길 수도 있는 분이기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사업 ‘공론조사’를 둘러싼 3대 쟁점을 분석했다.

◇"공사중단 근거 어디에?"=공론조사 결정을 둘러싼 가장 큰 논란은 ‘정당성’이다. 신고리 5·6호기는 규제당국인 원자력안전위원회가 38개월 심의 끝에 건설허가를 내줬다. 법에서 정한 절차와 규제를 준수해 건설 결정이 이뤄졌다는 의미다.

하지만 건설중단 결정의 근거는 미약하다. 건설에 문제가 있다면 원안위 전체회의에 건설허가 취소 안건을 상정하고 이를 의결하는 과정을 거쳤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실제 정부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국수력원자력의 이사회를 통해 공사 중단을 결의할 예정이다. 공기업인 한수원의 이사회를 사실상 정부가 장악하고 있고 한수원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지 못한다는 점을 활용한 ‘편법’인 셈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에너지법에 근거가 있다고 해명한다. 에너지법 4조 2항에는 ‘에너지공급자와 에너지사용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에너지시책에 적극 참여하고 협력하여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끼워맞추기식 해명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그마저 공론화위원회 운영에 관한 규정은 국무총리 훈령을 새로 만들 예정이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정부가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국무회의에서 결정한 사항인 만큼 법적 근거를 따지는 것은 옳지 않다”며 “한수원 지분 100%를 보유한 한국전력을 정부가 사실상 지배하는 만큼 절차적 문제는 크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매몰비용 가구당 40만원 부담"=사회적 매몰비용 문제도 논란이다. 한수원에 따르면 신고리 5·6호기 총 사업비는 8조6000억원이다. 이 중 설계·건설 등 이미 계약이 완료된 금액은 4조9000억원이고 32.7%(1조6000억원)가 집행됐다.

매몰비용의 경우 정부는 집행한 1조6000억원에 보상비 1조원을 합쳐 2조6000억원으로 추산했지만 업계 안팎에서는 각종 이자비용과 이어질 손해배상 소송 등을 고려할 때 4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한다.

여기에 박맹우 자유한국당 의원실에 따르면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에 따른 △지역상생지원금 집행 중단 1500억원 △지역 건설경기 악화 및 민원 비용 2700억원 △법정지원금 중단 1조원 △지방세수 감소 2조2000억원 등 직간접 손실은 3조6200억원이 추가로 발생한다.

이 경우 사회적 매몰 비용은 7조6200억원에 이른다. 한수원이 공기업인 만큼 국민 혈세로 부담하는 셈인데, 가구당 약 40만원(2015년 기준 1911만1030가구)을 부담하는 셈이다. 추가로 정유섭 자유당 의원실은 대체설비 조성에 따른 연평균 국민부담은 최대 4조6488억원으로 가구당 연평균 전기요금 인상분은 최대 18만9445원이 예상됐다.

익명을 요구한 수도권 소재 대학 경제학 교수는 “독일의 경우 가동 중 원전을 세우는 과정에서 각종 소송이 이어졌고 대부분 국가가 패소해 (배상금을) 다 물어줬다”며 “만약 신고리 5·6호기 백지화 결론이 난다면 국내에서도 상당한 혈세 부담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공론화 책임은 누가?=공론조사 과정에서 구성될 공론화위원회 위원 및 시민배심원단에 대한 논란도 뜨겁다.

정부는 중립적인 인사들로 공론화위원회를 조직하되 이해관계자나 에너지 분야 관계자를 제외하겠다고 분명히 했다. 시민·환경단체나 비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위원회가 구성될 가능성이 높은데 공언한 대로 ‘중립성’을 할 수 있겠냐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 의사결정을 할 시민배심원단 구성도 과제다. 독일 핵폐기장 부지 선정 시민소통위원회는 7만명의 국민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후 570명의 표본을 추출, 이 중 120명의 시민배심원을 선정했다. 일본은 원전 정책 관련 3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뒤 300명의 시민배심원단을 뽑았다. 우리나라는 시민배심원단 구성과 관련한 내용을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결정할 계획이다.

하지만 국가 중요 정책을 다수결로 결정하는 게 옳으냐는 문제제기는 여전하다. 특히 배심원단은 판단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에 정권에 대한 인기투표식 결정이 이뤄질 가능성도 크다. 여론이 수시로 변화하는 것도 난제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배심원단이 국민 전부 대표할 수 있는지, 그들이 ‘100년 대계’로 불리는 에너지정책을 결정하는 책임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며 “차라리 스위스나 벨기에처럼 국민투표까지 가야 할 사안이다”고 말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공론화를 하려면 ‘탈핵 선언’ 이전에 했어야 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지금 정치적 선언에 대한 책임을 (국민에) 전가하기 위한 ‘명분 만들기’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