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재계 지배구조 재편, 그룹가치 끌어올린다

효성 (61,100원 ▼8,800 -12.59%)그룹이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본격화하면서 올 들어 활발해진 국내 주요 그룹의 지주회사 전환 움직임이 주목받고 있다. 기업들이 지주사 전환을 서두르는 이유는 저평가받던 유·무형 자산의 재평가 기회가 되는 데다, 대기업 규제 움직임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주회사 전환을 마친 상장사들이 평균 15%가량 기업가치 상승효과를 누린 것으로 나타나 지주사 전환을 앞둔 기업의 가치 재평가 결과에도 관심이 쏠린다.


4일 SK증권이 2010년 이후 지주회사 전환을 마친 기업 33곳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주사 전환 선언 이후 분할 재상장 직후 시가총액이 평균 15.3%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전체 33곳 중 20곳의 시가총액이 늘었다. 지주회사 선언 이후 상장주식 거래 정지일까지 수익률도 13%다.

대표적인 사례가 현대중공업 그룹이다. 현대중공업 그룹은 올해 2월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사업분할 안건을 통과시켰다. 현대중공업으로부터 현대로보틱스, 현대건설기계, 현대일렉트릭 등 사업 3사가 분사하고 이 가운데 현대로보틱스가 사업지주회사 역할을 맡는 방식이다.

지주사 전환 선언 직전 현대중공업의 시가총액은 11조1340억원이다. 분할 재상장으로 상장사 3개가 늘어난 직후 시가총액 합계는 16조8235억원으로 지주사 선언 전과 비교해 51.1% 증가했다.


특히 지주사 현대로보틱스가 사업지주회사로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분할 재상장 첫날 종가 기준 4조6956억원이던 현대로보틱스 시가총액은 지난 1일 7조1740억원으로 불어났다. 1일 현대중공업 그룹 상장사 5곳(현대미포조선 포함)의 시가총액 합계는 19조8552억원으로 지난해 말 대비 덩치를 60%가량 키웠다.

전문가들은 지주회사 전환 작업 이후 기업가치가 오르는 배경에는 유무형 자산의 재평가효과가 자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상장사 장부 혹은 재무제표 기준으로만 평가받던 여러 사업·영업권과 자산을 재평가받는 계기가 된다는 설명이다. 동시해 알짜사업의 할인요소로 꼽힌 지배·투자 지분 리스크를 투자회사가 떠안아 사업회사의 기업가치 상승을 이끈다.

롯데그룹 중간지주사 전환 선언 이후 롯데칠성이 보유하고 있던 부동산 자산이 부각받은 것처럼 과거 지배구조와 타 사업 업황 등에 눌려 있던 각종 유무형 자산을 새로 평가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주주의 경영권 확보에 가장 적은 비용이 드는 방법 중 하나라는 점도 매력이다. 회사 분할 시 주주는 분할 후 재상장하는 상장사의 지분 역시 기존 지분율에 따라 받을 수 있다. 신규 상장사 지분 교환을 통해 지주사 지분율을 확보할 재원을 마련하는 셈. 효성 역시 과거 조현문 전 사장의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 이후 대주주 지배력이 흔들린 경험으로 지주사 전환을 검토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시장에서 직접 주식 사들이거나 상속·증여하는 것보다 분할 이후 지주사 지분을 확보하는 게 일반적으로 경제적이라는 설명이다. 후계 승계 작업과 지주사 전환이 맞물린 기업에게는 회사가치와 최대주주 지분율을 동시에 올리는 방법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사업회사와 지주회사로 인적분할이 되면 투자지분가치 불확실성에 할인받던 사업회사 밸류에이션(기업가치)이 오를 수 있다"며 "일반적으로 지주사는 하락하고 사업회사는 오르지만 합산하면 전체 기업가치는 상승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배당과 상표권 사용료(로열티)가 주 수입원인 지주회사 특성상 배당성향 확대 가능성과 그에 따른 주가 상승,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강화되는 지배구조 규제 역시 재계의 지주사 전환작업을 부채질하고 있다.

과거 대주주의 우호지분 격으로 사용하던 자사주에 대한 규제 강화 움직임 역시 지배구조 재편작업을 유보했던 기업들이 지주사 전환을 재검토하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외국계 자산운용사에 근무하는 한 애널리스트는 "사업회사와 투자회사를 구분해 각각 재평가하는 것만으로도 전체 회사가치는 늘어날 수 있다"며 "사업 효율화에 배당 증가 기대감 등으로 올해 지주사 전환에 나선 기업이 주목받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