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채용 때 취업재수생 배려해 달라"…시중은행 '황당'

'금융권 공동 채용박람회'가 13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개최된 가운데 많은 금융업계 구직자들이 박람회장에 들어서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 사진=김창현 기자

금융당국이 주요 은행에 채용할 때 취업재수생에 대한 배려를 주문했다. 은행들은 블라인드 채용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에 취업재수생을 배려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요구라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이 5년치 채용 계획을 받은 데 이어 취업재수생까지 배려해달라는 등 일자리와 관련해 무리한 요구가 잇따르면서 주요 은행은 진땀을 흘리고 있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주요 은행에 하반기 신규 채용을 진행할 때 취업재수생을 고려해줄 수 있는지 확인했다. 지난 13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금융권 공동 채용박람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취업재수생을 좀 더 많이 채용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 시중은행에 타진한 것.


취업재수생들이 사라지지 않고서는 청년 실업률을 낮출 수 없다는 게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지난 8월 청년실업률은 9.4%로 1999년 이후 최고였다. 특히 취업준비생까지 포함한 체감실업률은 22.5%로 지난해보다 1.0%포인트 상승했다. 특히 은행 등 금융권 일자리는 청년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장이어서 은행 등 금융권이 취업재수생을 흡수하면 청년 실업률을 크게 낮출 수 있다.

금융당국의 이같은 주문이 은행들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내면서 취업재수생 배려는 유아무야됐다. 블라인드 채용을 확대하면서 응시생이 언제 졸업했는지, 졸업후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정보가 없다는 게 은행들 입장이다. 취업재수생을 배려하고 싶어도 누가 취업재수생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설명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블라인드 면접을 하기 때문에 이 사람이 재학생인지, 졸업생인지 알 수 없다"며 "블라인드 채용을 하라고 하면서 취업재수생을 배려하라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라고 말했다.


보통 취업재수생은 졸업한지 여러 해가 지난 청년들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졸업 자체를 미루는 대학생들이 많아 졸업예정자 중에서도 취업에 여러 번 도전한 청년들이 많다. 또 여러 차례 도전했음에도 낙방하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게 채용 실무자의 생각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실력이 좋더라도 은행 업무에 맞지 않으면 채용해도 곧 퇴직하게 된다"며 "은행이 원하는 인재상이 아니면 입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은행권은 금융당국이 일자리 창출에 신경쓰는 것도 좋지만 최근 들어 무리한 주문이 많아졌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앞서 금융위는 금융권에 인력운용 계획을 요구하면서 향후 5년간 매년 채용 계획을 기재하도록 했다. 금융당국은 금융권 일자리 창출 방안에 참고한다는 명목으로 올 하반기 채용 규모도 제출받았는데 은행은 이를 누가 많이 채용하는지 '줄 세우기'로 받아들였다. 이 때문에 각 은행은 당초 계획했던 것보다 더 많은 채용 계획을 금융당국에 제출했다.

한 외국계 금융회사는 본사에서 인력을 10% 줄이라고 했으나 금융당국의 압박으로 오히려 신규 채용 규모를 늘렸다.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지점을 줄이면서 인력도 줄일 수밖에 없는 구조를 무시하고 채용을 더 하라고 요구하니 답답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