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왕족, 고급 수세식 화장실 썼다

경주 동궁과 월지에서 발견된 변기형 석조물. /사진=문화재청

경주 동궁과 월지(사적 제18호, 옛 사적명 ‘안압지’)에서 통일신라 왕족이 사용하던 최고급 화장실 흔적이 발견됐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26일 오후 경북 경주시 인왕동에 위치한 동궁과 월지 북동쪽 인접지역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수세식 화장실 유구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동궁과 월지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직후 문무왕 14년(674년)에 세운 동궁과 주요 관청이 있었던 곳이다. 1975년 문화재관리국(옛 문화재청) 경주고적발굴조사단이 첫 조사할 당시 인공 연못, 섬, 동궁 관련 건물지 일부와 유물 3만여 점이 출토됐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2007년부터 북동쪽 인접지역에 대한 발굴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이번에 발견된 신라 왕궁의 수세식 화장실 유구는 화장실이라는 공간과 그 부속품(변기시설, 오물 배수시설)들이 한자리에서 발견된 최초 사례다. 초석 건물지 내에 변기가 있고, 변기를 통해 나온 오물을 배출하기 위해 점차 기울어지게 설계된 암거(暗渠·지하에 고랑을 파서 물을 빼는 것) 시설까지 갖췄다.

변기형 석조 구조물은 양 다리를 딛고 쪼그려 앉을 수 앉는 판석형 석조물과 그 밑으로 오물이 밖으로 나갈 수 있게 타원형 구멍이 뚫린 또 다른 석조물이 조합된 형태다. 변기형 석조물을 통해 내려간 오물이 하부의 암거로 배출되는 구조로 추측이 가능하다. .


사용방식은 변기에 물을 흘려 오물을 제거하는 수세식으로, 물을 유입하는 설비가 따로 갖추어지지 않아 따로 물을 떠서 오물을 흘려보내는 방식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주 동궁과 월지 조사지역 현황도. /사진=문화재청

동궁과 월지 화장실 유구의 특징은 통일신라 최상위 계층의 화장실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고급석재인 화강암을 가공해 만든 변기시설 △수세식 오물 제거 △변기 하부와 오물 배수시설 바닥에 타일 기능의 전돌(쪼개어 만든 벽돌)을 깔아 마감한 점 등을 미루어 볼 때 통일신라 왕궁에서 사용된 고급 화장실의 실체를 짐작할 수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이번 유구는 현재까지 조사된 통일신라 시대까지 고대 화장실 중 가장 고급형”이라며 “신라 왕실의 화장실 문화의 발달 정도를 가늠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발굴현장 동쪽에서 동궁과 월지 출입문으로 추정되는 대형 가구식 기단(목조가구 제작 방식으로 만들어진 석조 기단) 건물지가 확인돼 유적 전체의 규모와 경계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외에도 동궁 내 생활과 관련된 창고시설과 물 마시는 우물 등 신라 왕궁의 일상생활을 알 수 있는 연구자료를 확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