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1000만원씩 저축하듯 기부하는 기부 중독 사장님

2012년 12월 서재원 대표(가운데)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1억원 기부 약정을 맺고 있는 모습./사진=사회복지공동모금회

"'기부는 나중에 돈 많이 벌면 해야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잖아요. 하지만 돈이란 건 늘 부족하죠. 일단 1만원이라도 기부를 시작하면 왜 중독이 되는지 알게 될걸요."

서재원 주식회사 하나(피혁제조 수출업체) 대표(사진·54)는 기부 전도사다. 그는 인터뷰 당일에도 지인의 기부 약정식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지인 역시 서 대표의 추천을 받고 이제 막 기부에 발을 들인 참이다. 서 대표는 "얼마 지나 그분도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하게 될 것"이라며 "나는 그냥 기부의 물꼬를 터준 것"이라며 웃었다.


서 대표는 2012년 12월에 매년 2000만원씩 5년간 총 1억원을 납부하는 약정을 맺고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했다. 현재는 모두 완납한 상태. 지난해에는 그의 부인 박명희씨도 같은 방식으로 기부를 약정하면서 부부가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됐다. 그가 운영하는 회사 '하나' 이름으로도 매달 200만원씩 기부금이 들어간다.

서 대표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뿐 아니라 국제라이온스협회,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한국교통장애인협회, 경기북부범죄피해자지원센터, 적십자 양주시 대의원, 양주사랑포럼 목화장학회 등 다양한 곳에서 활발하게 기부 활동을 펼치고 있다. 매달 정기적으로 나가는 기부금에 갑자기 생기는 기부금까지 포함하면 매달 1000만원이 넘는다.

그는 "사람들은 내가 돈이 남아서 기부를 하는 줄 아는데 전혀 아니다"라며 "나도 돈을 쓰고 싶은 곳이 많지만 기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남는 돈으로 기부한다고 생각하면 평생 못하고 내 것을 나눈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금씩 시작한 현물 기부에서 이제는 '기부 전도사'로= 서 대표가 기부를 시작한 건 15년 전이다. 처음엔 기부라는 말도 그에겐 거창했다. 그저 지인이 근무하는 군부대나 보육원, 양로원 등에 10만~20만원어치 필요한 물품들을 지원하던 게 시작이었다. 그러다 점차 나눔의 의미를 알게 됐고 양주시 라이온스클럽에서 활동하게 되면서 좀더 체계적으로 기부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찾았다.

그는 기부의 시작이 거창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한다. "사람들이 기부나 봉사를 굉장히 어렵게 생각하고 꼭 현금으로 큰 금액을 내야만 기부라고 오해해요. 그래서 시작하기가 어렵죠. 저는 그냥 툭 던져요. '저기 보육원에 텔레비전 한 대가 필요하다더라'는 식으로 말이에요. 100만원 기부엔 부정적이던 사람도 이런 제안에는 큰 거부감이 없더라고요."

그도 조금씩 시작한 기부가 이제는 한 달에 1000만원이 넘는 거금이 되니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만둘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그 돈이 없어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지만 그 돈을 지원받지 못해 고통스러운 사람이 있디고 생각하면 끊을 수가 없죠. 제 부인도 기부를 많이 하기 때문에 저를 말리진 않아요."

부담이 돼도 이어나갈 수 밖에 없는 기부와 봉사를 그는 '중독'이라고 표현했다. "봉사활동을 다녀오면 그 시간이 금방 잊혀지지가 않아요. 오늘도 내가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해냈구나, 뿌듯한 생각도 들고요. 나로 인해서 누군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더 많이 벌어서 더 많은 기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 또 계획을 잡아 기부를 하고 봉사를 하게 됩니다."

그는 수입이 생기면 가장 먼저 기부부터 한다. "일단 돈이 생기면 기부를 먼저 하고 남는 돈으로 생활을 해요. 부족하면 주식 투자를 해서라도 더 벌어야죠. 아마 쓰고 남은 돈으로 기부를 했으면 시작도 못 했을 거예요."

기부 중에서도 최근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는 장학 사업이다. 가난의 대물림을 끊을 수 있는 건 교육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돈이 없어 학업을 이어가지 못하는 일만은 막고 싶다고 한다.

"어려운 사람들은 당장 먹고 사는 게 힘드니까 교육은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아이들이 커서도 가난의 대물림을 끊지 못하죠. 그래서 아이들 교육 쪽에 더 많이 기부를 하려고 해요. 한국 전체로 봐도 교육 시스템이 잘돼 있어야 더 나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결국엔 부강한 나라가 되지 않겠어요."

서 대표는 운영하는 회사에서도 교육 복지만큼은 책임지려 한다. 직원들이 야간대학에 진학하면 학비를 지원해주고 임직원 자녀의 초중고 교육비를 제공한다. 자녀의 대학 학자금도 1회 지급한다.

이 같은 노력 덕에 지난해 연말에는 봉사 부문 국민포장(훈장)을 받기도 했다. 이는 국민의 복리 증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하거나 공익시설에 많은 금액의 재산을 기부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대통령 국민 포장이다.

서재원 대표.

◇'어금니아빠'로 기부 축소될까 걱정… 단체 스스로도 변화해야 = 최근 사회적으로 어두운 소식이 많이 들리면서 서 대표의 걱정도 늘었다. 기부금을 유용하고 횡령한 '어금니 아빠'나 '새희망씨앗' 등의 사례처럼 선의로 모인 기부금이 기부자가 원하는 목적과 다르게 쓰이는 사건들 때문에 사회적으로 기부 문화가 축소되진 않을까 안타깝다.

"봉사를 다니면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나오는 지원금만으로는 자선단체를 운영하기가 정말 어려워요. 거의 대부분의 단체들이 기부금을 받아야 정상적인 운영이 가능할 거예요. 그런데 이런 몇몇 안 좋은 사건들 때문에 좋은 일을 하는 단체들까지 오해를 받게 되고 혹시 피해를 입진 않을까 참 안타까운 부분이에요."

하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자선단체들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한다. 자선단체가 더 투명해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대부분의 자선단체들이 기부받은 돈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설명해주지 않아요. 기부금 사용내역 정도는 공개해야죠."

서 대표도 불미스러운 사건 이후 기부금 사용내역이 베일에 가려져 있는 단체에 대해선 기부를 중단했다. 그저 좋은 일 한다는 마음으로 기부를 하고 있지만 무조건적인 기부가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돈이 남아서 기부를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래서 우리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 더 알고 싶죠. 단체가 알아서 기부금을 투명하게 운영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를 들면 연말에 기부자들을 초청해 결산 행사를 하면 얼마나 좋아요. 이런 투명성이 기부 문화를 확대하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숨어서만 하던 기부, 이제는 문화 달라져야= 기부를 장려하기 위해 한가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칭찬하는 문화 조성이다. "예전에는 기부하는 것을 숨기는 게 미덕이었어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이 있잖아요. 하지만 좋은 일은 더 널리 알려야 그게 또 문화가 되잖아요."

서 대표는 "주위에 적은 돈이면 기부한 사실을 부끄러워 하며 숨기려 하는 분들이 있는데 기부는 얼마를 했든 자랑스러운 일"이라며 "얼마를 냈든 다 귀한 돈인데 조금 냈다고 덜 귀하고 많이 냈다고 더 귀하고 그러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당당한 부자들이 많아질수록 존경할만한 부자가 많아질 것이라며 "아무리 많이 기부를 해도 혼자만 알고 있으니 국내에 존경할만한 부자도, 부자를 존경할 이유도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저 사람은 본받을만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게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나쁜 사람이라는 소리만 안 들어도 다행이죠. 그래도 존경받고 본받을만한 사람이 되려고 더 노력해야죠. 특히 마흔 두 살에 낳은 늦둥이 아들이 지금 초등학교 6학년인데 누군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니'라고 물었을 때 '우리 아빠요'라고 대답했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열심히 봉사하다 보면 언젠가 그런 날이 오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