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유럽 같은 노동이사제 도입이 부적합한 이유

전문가들은 노동이사제 도입 움직임에 우려를 나타냈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반영한 민주적인 의사 결정이 가능하고 노동환경 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이란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노조의 지나친 간섭으로 경영효율성이 떨어지고 주주이익에 반하는 결정이 내려질 수 있어서다.

시중은행 한 부행장은 “지금도 노조가 경영진을 고소하거나 임원 해임을 요구하는 등 경영권 개입이 심해 논란이 많은데 이사회에 노조 추천 이사가 들어가면 노조 입김이 더욱 세져 경영권이 위축될 것”이라며 “직원들의 복지와 근무환경 등을 개선하기 위한 건설적인 견제는 노동이사 없이 지금 노조의 힘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노동자 권리를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이사회가 주주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이시연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고 있는 독일 등 대부분의 유럽 국가는 우리와 이사회 체제가 다르다”며 “유럽 국가는 경영이사회와 감독이사회가 명확히 분리돼 있고 노동이사는 감독이사회에만 참여해 경영권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특히 “노조 이익이 주주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볼 수 없다”며 “노동이사가 경영에 참여하면 인건비 증가 등에 따른 추가 운영비 발생, 의사결정 지연 등의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올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35개 회원국과 중국, 콜롬비아 등 11개 비회원국을 조사해 발간한 ‘2017 OECD 기업지배구조 팩트북’에 따르면 노동이사제를 도입한 국가는 17개국이며 이 가운데 스웨덴을 제외한 16개국이 모두 경영이사회와 감독이사회가 분리된 이중 이사회를 운영하고 있다. 회사의 주요 경영활동에 대해선 사내이사가 포함된 경영이사회가 결정을 내리고 노동이사는 감독이사회에만 들어가 감시와 감독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에대해 금융노조는 금융회사는 다른 사기업과 달리 공적인 측면이 강해 노동자 대표가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자 대표가 이사회에 참여하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화되고 경영진을 견제하는 사외이사제의 취지를 더욱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허권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노동이사를 소수주주 몫으로 추천할 필요가 있다”며 “노동이사제를 통해 금융회사의 지배구조 개혁도 앞당길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현정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위원장은 “노조만으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투명성과 책임 있는 경영을 담보하기 어렵다”며 “노동이사제 도입을 통해 금융회사 소유·지배구조를 재구축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융당국은 노동이사제 도입이 노사대립 완화에 기여한다면 고려해볼 수 있지만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노동이사 선임이 노사대립을 완화해 기업가치를 올릴 수 있다고 주주들이 판단한다면 경영권 침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사회에서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면 소수주주 추천의 의미가 퇴색하고 주주들의 지지를 받을 수도 없을 것”이라며 “이제 장내의 링 위로 올라오겠다는 것인 만큼 노조의 활동 방식도 달라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