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증시 위기냐, 기회냐…금리·재정·물가 '말말말'

미국 뉴욕증시 S&P500지수 추이/자료=블룸버그

미국 증시에 비관론과 낙관론이 동시에 쏟아지고 있다. 이달 초 급격한 변동성을 겪은 만큼 어두운 전망에 더 관심이 쏠리지만 아직 더 두고 볼 만하다는 진단도 만만치 않은 분위기다.

22일(현지시간) 로이터에 따르면 세계 최대 헤지펀드 운용사인 브리지워터어소시에이츠의 설립자인 레이 달리오는 전날 미국 하버드 케네디스쿨 정치연구소에서 "미국 증시가 거품 단계로 진입할 수 있는 거품 전 단계에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 경제가 2020년까지 경기침체에 돌입할 가능성이 70%에 이른다고 경고했다.


달리오는 그동안 자신의 링크드인 계정에서도 향후 18~24년 동안의 침체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말해왔다. 그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금리 정상화 과정에서 정책 실수를 빚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마켓워치 칼럼니스트인 제프 리브스는 이날 쓴 글에서 증시가 내리면 오르기 마련이지만 이번엔 다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주가 하락은 매수 기회라는 시장 낙관론자들의 통념을 뿌리 채 흔들 수 있는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FRB의 통화긴축, 미국 정부의 재정적자 확대, 유럽중앙은행(ECB) 등 다른 주요 중앙은행의 통화긴축 움직임 등이 시장의 반등을 제한할 수 있다고 봤다.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도 지난달 말 미국 증시와 채권시장이 거품 상태에 도달했다고 진단했다. 그 역시 FRB의 금리인상 압력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 지출 확대에 따른 재정적자 확대가 시장을 위협한다고 경고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고 있는 데 대한 우려도 크다. 이는 FRB의 금리인상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는 관측과 맞물려 이달 초 시장에 직격탄을 날렸다. 그린스펀은 경기가 침체된 상황에서 물가만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반면 하워드 골드 마켓워치 칼럼니스트는 이날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는 시기상조라고 진단했다. 지난 반세기를 되짚어 보면 인플레이션이 갑자기 나타난 적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압력이 급격히 커진 1970년대의 '대인플레이션'(Great Inflation)도 수년에 걸쳐 시작되고 끝이 났다고 지적했다.

골드는 시장이 현재 단기적으로 직면한 위협은 인플레이션이라기보다 지정학적 위기와 엉망진창인 재정상태라고 덧붙였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 추이(단위: %)/자료=블룸버그

CNN머니도 금리상승이 증시의 파멸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1971년 이후 9차례의 금리상승기 가운데 8번에 걸쳐 S&P500지수가 상승세를 뽐냈다고 지적했다. 이때 배당을 포함한 총수익률이 20%에 달했고 지수의 상승폭은 두 차례나 40% 가까이 올랐으며 최악의 해에도 하락폭이 4%에 그쳤다는 설명이다. CNN머니는 미국 증시가 이달 초 급락장에서 벗어난 것도 이런 경험에 따른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디 건즈버그 S&P다우존스지수 미국 증시 책임자는 최신 보고서에서 "지금처럼 성장세와 인플레이션이 가속화하면 금리상승으로 자산가격이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지난 20일 미국 증시에 대해 '비중확대' 의견을 냈다. 트럼프 행정부의 재정부양 정책이 기업 실적 낙관론을 뒷받침한다는 판단에서다.

일각에서는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가 3%를 넘으면 채권시장에 돈이 몰려 증시가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연초 2.4%에서 최근 4년 만에 가장 높은 2.9% 선으로 올라섰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시장에서 주목해야 할 건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에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실질금리라고 지적했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의 실질금리는 약 0.8%로 아직 '긴축발작'이 한창이던 2013년 9월의 0.92%를 밑돈다는 지적이다. 실질금리가 아직 낮은 수준으로 장기적인 추세를 벗어나지 않은 만큼 증시에 당장은 위협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