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리앗 전사 "기득권 쥔 노조에 미래는 없다"

이갑용 노동당 대표 인터뷰. /사진=이동훈 기자

"한국 노조는 사측의 미끼를 물었습니다. 정부와 자본가들이 쥐어 주는 권력에 취한 노조 지도부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는 사이 진짜 노동자들은 힘을 잃고 있어요."

'골리앗 전사'가 작심한 듯 친정을 향해 독설을 쏟아냈다. 28년 전 현대중공업 노조원 100여명과 지상 80m 크레인(골리앗)에 올랐던 이갑용 노동당 대표(59, 전 민주노총 위원장)다. 골리앗 점거 농성은 오늘날 강력한 대기업 노조 건설에 밑바탕이 된 역사적 사건으로 남았다.


격렬했던 한국 노동운동사의 산 증인이자 환갑을 바라보는 그에게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맞은 지금 노조의 미래를 물었다.

곧장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은 노조에 미래는 없다"는 날 선 대답이 돌아왔다. 소위 귀족 노조가 국가 경제·기업의 발전을 막는다는 보수진영과 재계의 비난은 이미 익숙하다. 이제는 진보 내에서도 노조가 제 역할을 위해선 대수술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이 대표는 "빠르게 변하는 사회 흐름에 맞춰 노조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변화의 시작은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만 여념이 없는 귀족 노조의 기득권 버리기라는 지적이다.


"사측은 30년 전에는 '해고' '감옥행'이라는 채찍을 휘둘렀습니다. 지금은 각종 복지와 권력이라는 당근으로 노조를 관리합니다. 정부도 마찬가지예요. 명망 있는 노동운동가 출신을 공직에 임명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들이 전체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하기보다 개인적 이익 등을 챙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노조가 기득권을 내려놓는 방법으로는 "현장으로 돌아갈 것"을 제시했다.

이 대표는 "현 노조 간부 중에는 노조 전임자만 20년째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며 "이런 분들이 우리나라에 1만명 정도는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 간부들이 노동 현장으로 돌아가 일을 하며 실제 필요한 게 뭔지 미래를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다음 세대를 책임질 젊은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노조의 세대교체도 자연스레 진행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갑용 노동당 대표 인터뷰. /사진=이동훈 기자

비정규직·외국인 노동자 등 소외된 노동자와 연대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 대표는 "정규직 지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비정규직을 도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재정 지원"이라며 "대형 노조가 비정규직을 위한 기금을 별도로 모으고 이를 비정규직 노조에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아직 상당수 노동자의 현실이 과거에 머물러 있다고 진단했다.

"1만 달러 시대, 2만 달러 시대를 쭉 살아왔지만 노동자의 위치가 늘 똑같아 보입니다. 제가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크레인에 올랐던 게 1990년입니다. 한 세대가 지났지만 지금도 몇몇 노동자들은 기본적인 권리를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3만 달러가 아닌 4만, 5만 달러 시대가 돼도 이런 현실은 바뀌지 않을 수 있다. 노조 스스로 변화와 혁신이 꼭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