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읽으니 소설 내용에도 비가… 새로운 문학 실험

증강현실 스마트폰 도서 '숨'의 소개영상. /사진=에디션스 엣 플레이 홈페이지 갈무리

스마트폰 시대에 돌입하며 독서 인구가 줄고 있는 가운데, 해외 각지에서 문학과 스마트폰 기술을 접합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22일(현지시간) 미국매체 패스트컴퍼니에 따르면, 구글의 '에디션스 엣 플레이'와 영국 복수 대학교의 공동프로젝트인 '앰비언트 릿' 등은 작가들과 손잡고 블록체인·증강현실(AR) 등을 활용한 새로운 문학 장르를 개척하고 있다.


그 중 캐나다 작가 케이트 풀린저가 쓴 '숨(Breathe)'은 독자의 현재 위치, 날씨 정보, 카메라를 참고해 소설의 설정을 바꾼다. 비오는 날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이 소설을 읽는다면 그 내용이 이야기에 반영된다.

'숨'의 독특한 설정 때문이다. 주인공은 유령과 대화가 가능하며 유령으로부터 정보를 제공받아 독자를 포함한 이 세상의 많은 것들을 알고 있다. 특히 유령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나는 지금 광화문에 와있어, 너는 그가 아닌 내가 필요해" 등의 대사가 나온다.

이로써 소설의 사건이 독자 인근에서도 벌어질 수 있으며, 소설의 주인공이 독자를 이미 알고 있다는 인식을 준다. 손에 쥔 스마트폰이 가리키는 방향의 사진을 찍어 소설의 텍스트가 올라오는 아래쪽 배경으로 삼기도 한다.


풀린저는 "우리는 시각 매체가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며 "기존의 전자북과 다른, 스마트폰만이 제공할 수 있는 독서의 경험을 고민했다"고 기술을 활용해 소설을 쓰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GPS 정보가 소설의 내용을 크게 바꾸지는 않지만 "화자가 독자의 위치를 꿰고 있다는 기묘한 느낌을 주는 데 일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마트폰 앱 예술 '바니타스'의 소개 영상. 특정 위치에 도착하자 극중 인물에게서 문자가 오고 있다. /사진=바니타스 홈페이지 갈무리

호주의 예술가 로버트 월튼과 제이슨 말링이 만든 '바니타스' 역시 스마트폰을 활용해 독자의 이야기 참여를 유도한다. 독자가 묘지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을 그린 이 스릴러를 체험하려면 실제로 인근 묘지를 방문해야 한다.

바니타스 앱에 인근 묘지를 방문하겠다고 신청하면 묘지 지형·묘비명 등의 지역 정보를 활용한 이야기를 약 60분 간 체험할 수 있다. 소설에서 화자(독자 시점)가 누군가와 만나기로 했다면, 실제 그 장소를 독자가 방문해야 이야기가 전개된다. 성우들이 연기한 목소리가 팟캐스트를 활용해 전달되며, 미술가들의 그림이 상황에 맞게 스크린에 뜬다.

한편, 구글과 영국 출판사 비주얼 에디션스가 협력해 만든 '에디션스 엣 플레이'는 내달 머신러닝을 활용한 책을 출간할 예정이다. 에디션스는 풀린저의 '숨' 제작에도 참여했으며 지난해에는 블록체인, 구글맵 등을 활용해 내러티브를 구성한 소설을 온라인에 무료로 배포하기도 했다.

패스트컴퍼니는 이를 놓고 "새로운 소설들은 독자의 환경에 맞추어 이야기를 전개한다"며 "독자가 허구의 소설 세상에 몰입하기를 원한 기존 소설과는 정반대"라고 분석했다.

영국 버밍엄대학교의 매트 헤일러 교수는 이에 "지금은 이 기법이 새롭기 때문에 이상하게 느껴진다"며 "새 기법을 활용해 제대로 된 작품 20개만 나와도 모든 작가가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문학기법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