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퀴' 비수꽂고 'ㅇㅇ충' 손가락질…공동체 '갉아먹는' 혐오

머니투데이

김주현 기자

#유바른씨는 오랜만에 예전에 자주 찾던 인터넷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이전에는 서로 일상을 공유하거나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 영화 이야기를 나누던 공간이었지만 부쩍 OO남 OO녀 OO충과 같은 표현이 늘어났다는 걸 한눈에도 파악할 수 있었다. ‘한남충은 이래서 안된다’, ‘이런 질문하면 페미니스트니까 믿고 거르세요’ 등 공격적인 게시글이 몇 개인지 셀 수 없었고 댓글창에서는 편이 갈려 심각한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고 있었다.

대한민국 사회가 혐오로 물들어가고 있다. 특히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 상에서는 혐오표현의 빈도와 강도가 더 심각하다. 혐오표현은 당사자뿐 아니라 인터넷으로 글을 접하는 불특정 다수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사회적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혐오로 물든 온라인 커뮤니티=방송통신심의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올 1~7월까지 온라인상 차별·비하정보 심의 건수는 1041건으로 집계됐다. 시정요구 건수는 913건을 기록했다.

최근 5년간 심의건수 통계를 살펴보면 △2014년 861건 △2015년 1184건 △2016년 3022건 △2017년(1~6월) 1356건 등으로 2016년을 기점으로 크게 늘었다. 시정요구건수도 △2014년 705건 △2015년 891건 △2016년 2455건 △2017년(1~6월) 1166건 등으로 나타났다.

올 1~7월 차별·비하 정보 시정요구가 가장 많았던 웹사이트는 일베저장소로 총 368건의 시정요구를 받았으며 디시인사이드 360건, 워마드 97건 등이 뒤를 이었다.

실제로 온라인 상에서는 특정 지역에 대한 혐오글, 여성이나 남성에 대한 비하표현 등을 쉽게 볼 수 있다. 아이를 데리고 공공장소에 가는 엄마는 맘충이다. 한국남자는 한남충,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니는 여성은 된장녀·김치녀가 된다. 명품가방을 들고 아이를 데리고 카페에 간 여성은 된장녀인 맘충이 된다. 노인들은 틀딱(틀니를 낀 모습을 비하한 단어), 외국인은 외퀴(외국인을 바퀴벌레에 빗댄 비하단어)로 불린다. 말그대로 혐오시대다.

전문가들은 극단적으로 양극화가 심화된 사회에서 집단에 속해야 한다는 심리 탓에 온라인 혐오표현이 더 심각해졌다고 진단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남북 대치상황이나 정치 문제 등 양극화와 편가르기가 심한 사회적 환경 탓에 타인을 수용하지 못하고 공격하는 심리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곽 교수는 “서로 마주하고 있을 때보다 온라인에서 상대를 공격하는 수위가 6배는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면서 “평소에는 분노하지 않던 일도 컴퓨터 자판 앞에만 가면 돌변하는 이른바 ‘루시퍼 효과’가 온라인 공간을 혐오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인터넷 커뮤니티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이를 사용하는 개개인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으로 성숙한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면서도 “장기적으로는 교육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당장 해결책을 위해선 온라인 상 혐오표현에 대한 규제도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방심위 관계자도 “인터넷 상 차별과 비하 등 혐오표현이 근절되기 위해선 어떤 부분보다도 이용자들의 인식개선과 자정활동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특히 ‘착한차별’이나 ‘정당한 혐오표현’이 없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사이트 운영자들의 진정성있는 자정 활동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혐오표현 기준은…국가별로 다른 혐오표현 규제=혐오표현의 사전적 정의는 ‘인종.종교.성별 또는 성 정체성에 근거해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 증오를 표현하거나 폭력을 선동하는 대중적 행위’다. 외국에서는 온라인 상 혐오표현을 어떻게 규제하고 있을까.

영국과 독일, 프랑스 등 제2차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유대인 학살(홀로코스트)을 경험한 유럽국가에서는 혐오표현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법적 규제를 두고 있다. 반면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미국은 국가차원의 혐오표현 규제가 없다.
외국에서도 각 국가별로 사회적 경험과 역사적 배경에 근거해 특정 혐오표현만을 규제하는 등 차별적인 혐오규제가 드러난다. 우리나라도 현실에 맞는 혐오의 개념 설정과 규제를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달 초 허미숙 방심위 부위원장은 독일 청소년미디어보호위원회를 방문해 방송·통신 상 양성평등 실현과 혐오표현 대응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에 양국이 함께 혐오표현 대응 마련을 위한 국제 컨퍼런스를 개최하자고 약속했다.

우리 나라의 경우 현행법상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받는다. 이 관련법은 일반적으로 ‘표현의 자유’라고 말한다. 표현의 자유는 익명 표현의 자유도 포함한다. 인터넷 상 혐오표현을 규제하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논쟁이 이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혐오표현의 개념이 명확히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온라인 상 혐오표현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방통위 관계자는 “개인에 대한 차별·비하 글은 명예훼손죄로 처벌받을 수 있지만 피해자가 고발하지 않으면 정부 개입이 어렵다”면서도 “유해정보 방치가 사회적 문제로 심화될 수 있어 혐오·비하 발언이 많은 사이트에 대한 청소년의 접근 차단을 신중하게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