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경쟁사 출신이라 안 돼'는 옛말"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야구에서 좌완 강속구 투수는 지옥에 가서라도 데리고 와야 한다는 말이 있죠. 요즘 업계가 딱 그렇습니다."

대기업 임원 인사시즌을 앞두고 4대 그룹 한 인사가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그동안 주요 그룹끼리 고위직은 데려가지 않던 암묵적인 룰이 깨지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는 "서로 어느 정도 양해를 구하든 그렇지 않든 인재를 확보해야 한다는 목표 앞에서 더 이상 '경쟁사 출신이라 안 된다'는 건 낡은 사고가 됐다"며 "이젠 고위직이야말로 진짜 FA(프리에이전트) 시장"이라고 했다.

그의 얘기대로 최근 적을 옮기는 기업 고위 임원이 부쩍 늘었다. 지난 9일 LG화학 (369,500원 ▼3,500 -0.94%) 신임 대표로 내정된 글로벌 기업 3M의 신학철 수석부회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정기인사를 보름여 앞두고 나온 깜짝 발표에 구광모 회장 체제가 시작된 LG (78,400원 ▲500 +0.64%)그룹이 순혈주의 깨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왔다. LG그룹은 신성장동력으로 키우는 자동차 전장(전자장비) 부문에도 기아차·삼성자동차 출신의 김형남 한국타이어 (56,400원 ▲100 +0.18%) 연구개발소장(부사장)을 영입한다.

지난달엔 박근희 전 삼성생명 부회장이 CJ대한통운 (125,900원 ▼1,300 -1.02%)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재계의 관심이 몰렸다. 두 그룹이 삼성그룹 창업주 고 이병철 선대회장의 유산을 두고 수조원대의 상속 소송을 벌이며 불편한 관계였다는 점에서 박 부회장의 이동이 화해의 신호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한국제지도 올 여름 안재호 전 삼성SDI (408,500원 ▼5,000 -1.21%) 부사장을 삼고초려 끝에 신임대표로 영입했다.

현대모비스는 지난 4월 SK이노베이션 (106,100원 ▼1,400 -1.30%) 배터리연구소장을 지낸 이준수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초빙교수를 전무로 영입했다. 이 전무는 스탠퍼드대 화학공학 박사로 SK그룹에서만 20년 이상 근무했던 'SK맨'이다.

지난해 현대차 (246,500원 ▼3,500 -1.40%)는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출신의 지영조 부사장을, SK하이닉스 (175,900원 ▲5,300 +3.11%)는 삼성종합기술원 출신 정태성 사장을 영입했다.

'인재사관학교'로 불리는 삼성도 일찌감치 인재 확보에서 '출신 성분'을 따지지 않았다. 전영현 삼성SDI 사장은 옛 LG반도체 출신으로 1999년 LG반도체가 현대반도체(현 SK하이닉스)에 흡수합병된 다음 해 삼성으로 이직, 2014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부사장)을 거쳤다.

지난해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 팀장을 승진한 박용인 부사장도 LG반도체와 텍사스인스트루먼트, 동부하이텍을 거친 외부인사다.

※ 이 기사는 빠르고 깊이있는 분석정보를 전하는 VIP 머니투데이(vip.mt.co.kr)에 2018년 11월 21일 (16:07)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