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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날] 기본권엔 한 가지가 빠져있다… '죽을 권리'

[웰다잉 시대②] 존엄사, 의사조력자살 등 인간에게 '죽음'을 맞이할 권리가 있다고 보는 시각

머니투데이 이재은 기자 |입력 : 2018.12.09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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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월 화 수 목 금…. 바쁜 일상이 지나고 한가로운 오늘, 쉬는 날입니다. 편안하면서 유쾌하고, 여유롭지만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오늘은 쉬는 날, 쉬는 날엔 '빨간날'
/그래픽=김현정 디자인 기자
/그래픽=김현정 디자인 기자
[빨간날] 기본권엔 한 가지가 빠져있다… '죽을 권리'
"나는 늙고 있습니다. 시력을 포함해 내 모든 능력은 퇴화했습니다. 이제 나는 집에 24시간 갇혀있거나, 양로원에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지 않아요. 죽고 싶어요. 슬프냐고요? 아뇨, 내가 슬픈 건, 죽어야해서가 아니라 죽을 수 없어서입니다." (故 데이비드 구달 박사, 이 같은 인터뷰 후 지난 5월9일 104세로 스위스에서 의사조력죽음 통해 사망.)

내년 3월28일부터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조건이 완화된다. 이전에는 연명치료(심장마사지·인공호흡·점적수액요법 등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의료행위 전반) 중단 조건 중 환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을 때 19세 이상 배우자 및 직계 존·비속 전원의 서명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손자·손녀 동의는 없어도 되는 것으로 바뀐다. 앞으로 가족의 동의가 부족해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이어나가는 일이 크게 줄면서 존엄사를 맞는 이들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품위 있는 죽음'과 '죽음을 선택할 권리'

이 같은 '연명 치료 중단' 요건 완화는 존엄사가 필요하다고 보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가능했다.

이들은 회생(다시 살아남) 가능성이 없는 이들이 마지막까지 생명을 연장하는 것만을 위하여 온갖 기기를 매단 채 가족들과 함께 있지 못하는 중환자실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보다,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게 품위 있게 생을 마감하는 방법이라고 본다. 이처럼 회복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명치료중단은 '존엄사' 혹은 '품위 있는 죽음'의 한 방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법적으로 연명치료중단을 통한 존엄사가 실행됐고, 이제서야 존엄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지만, 외국은 이미 오래 전부터 존엄사를 허용해왔다. 법적으로 존엄사를 허용하는 국가는 네덜란드·벨기에·스위스·태국 등이다. 미국은 50개 주 가운데 40개 주가 존엄사를 인정하고 있다.
2010년 7월29일, 미셀 코스가 그의 74세 생일에 의사조력죽음을 맞이하는 장면. /사진=유튜브
2010년 7월29일, 미셀 코스가 그의 74세 생일에 의사조력죽음을 맞이하는 장면. /사진=유튜브
나아가 이미 많은 나라에서는 존엄사보다 한 차원 나아간 수준의 논의도 활발히 하고 있다. '의사조력죽음'(의사조력자살·PAS, Physician-Assisted Suicide)에 대한 논의다.

의사조력죽음은 환자 스스로 생명을 끊는 행위를 할 수 있도록 의사가 치명적인 약물(펜토바르비탈 등)을 처방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익숙지 않은 개념이지만, 이미 오리건·워싱턴·뉴멕시코·캘리포니아·버몬트·몬테나 등 미국의 일부 주, 캐나다·네덜란드·벨기에·스위스와 같은 몇몇 국가에서는 합법이거나 처벌되지 않는다.

이 나라들이 의사조력죽음을 허용하는 이유는 우리에겐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있으며, 이것이 일종의 '기본권'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호주 퀸즐랜드주에 거주하고 있는 홀리 워랜드(27)는 빅토리아주에서만 합법화된 의사조력죽음을 호주 전역에서 합법화할 수있게 해달라고 주장하는 활동가다. 그는 몇년 전까지만해도 남들과 똑같이 생활하며 퀸즐랜드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공부하는 학생이었지만, 지대형 근육영양장애(LGMD)라는 유전질환이 심해지며 몸이 점차 굳었다. 이제 그의 몸은 딱딱히 굳어 샤워를 하거나 화장실에 가는 데도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지난 2월 홀리 워랜드가 "4년 전, 처음으로 병원에 실려갔을 때의 모습"이라며 게시한 사진. /사진=인스타그램
지난 2월 홀리 워랜드가 "4년 전, 처음으로 병원에 실려갔을 때의 모습"이라며 게시한 사진. /사진=인스타그램
그는 질환 때문에 본인이 사실상 죽어있어 의사조력죽음이 필요하다며, 이것이 합법화돼야한다고 주장한다. 홀리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내가 갖게된 신체적 장애가 자랑스럽지 않다. 내가 앓는 유전질환에는 치료제도 없다. 더 이상 행복하지 않다"면서 "내가 충분히 살았다고 생각하는 어느 날, 내 인생을 스스로 끝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내가 죽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온몸이 굳어버린 나는, 스스로 죽기를 시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즉, 그에게는 행복하지 않은 삶을 이어가지 않을 권리가 있으며, 스스로 죽음을 도모할 능력이 부족하므로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아픈 몸으로 살아가는 그의 일상생활이 얼마나 힘겨운지 SNS(사회연결망서비스)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개하고, 의사조력죽음에 대한 의식 개선을 추구한다.

한국에서도 지난 7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제 아버지를 제발 죽여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오면서 '안락사'와 '의사조력죽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게시자는 "내 아버지는 지난해 7월 췌장암 3기 판정 이후 5월까지 항암치료를 받으셨다. 이미 췌장암은 말기로 진행됐고 이제 온몸에 암세포가 퍼져있다"면서 "현재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시고 말도 못하신다. 통증이 너무 심해 수면제와 진통제에 의지해서 하루 종일 주무신다. 1분 남짓 깨계실 때면, 아버지는 고통에 빠져계시다가 간신히 손을 움직여 '안락사'를 검색하신다"고 말했다. 그는 "제발 아버지가 죽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빨간날] 기본권엔 한 가지가 빠져있다… '죽을 권리'
◇"나도 한 번 죽어볼까"… '미끄러운 경사면' 이론
하지만 이 같은 '죽음을 선택할 권리'에 대해 우려하는 시선도 만만치 않다. '미끄러운 경사면'(slippery slope·어떤 원칙이 무너지면 연관된 다른 원칙들이 순차적으로 무너지는 현상)처럼, 처음에는 자발적으로 이뤄지더라도 결국에는 타의에 의해 생명을 포기해야하는 상황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환자가 불안, 공포 또는 죄책감에 휩싸여 이성적 판단을 내릴 수 없을 수 있고, 우울증을 동반한 불치병 환자가 감정적·충동적으로 이 같은 결정을 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환자가 자신의 가족이 겪는 재정적·감정적·정신적 부담 때문에 자의 또는 타의로 떠밀리듯 안락사를 선택할 수 있다는 걱정도 있다.

호주 빅토리아주에서 의사조력죽음 합법화 반대 투쟁을 해온 응급의학전문가 스티븐 파르니스는 "필연적으로 부당하게 죽어나가는 이들이 생길 것"이라면서 "미묘하게 '죽으라'는 강요를 당하는 사람들도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타인(의사) 조력 자살이 허용된 스위스로 '죽으러 왔던' 104세의 호주인 과학자 데이비드 구달이 지난 5월9일 한 진료소에서 뜻대로 생을 마감했다고 친 안락사 국제 단체인 '엑시트(출구) 인터내셔널'이 밝혔다. /사진=뉴시스
타인(의사) 조력 자살이 허용된 스위스로 '죽으러 왔던' 104세의 호주인 과학자 데이비드 구달이 지난 5월9일 한 진료소에서 뜻대로 생을 마감했다고 친 안락사 국제 단체인 '엑시트(출구) 인터내셔널'이 밝혔다. /사진=뉴시스
반대론자들은 구달 박사의 죽음 역시 '미끄러운 경사면'의 한 사례로 본다. 의사조력죽음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죽지 않아도 될 이들까지 죽음을 고민하게 되는데 구달 박사의 사례가 그러하다는 것이다.

구달 박사는 지난 5월9일 스위스 바젤에서 바르비투르산염 넴부탈을 투여받아 사망했다. 구달은 나이는 들었지만 위독한 병이 없고 건강한 상태였다는 점에서 건강한 사람이 의사조력죽음을 택한 최초의 사례였다. 그는 "사는 것이 즐겁지 않았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고, 가만히 앉아있는 것만이 내가 하는 일의 전부였다"고 말하며 죽음을 기뻐했지만, 호주 의사협회는 "더욱 더 많은 이들이 죽음을 바랄 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존엄사와 안락사 등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며, 국가적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윤영호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우리는 아직 국민의 품위 있는 죽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가 미흡할 뿐만 아니라 의사결정에서 환자의 의사가 잘 반영되지 않아 덜 수용적"이라면서 "유럽이나 북미처럼 우리나라도 안락사 논쟁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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