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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입은 그 털, 어디에서 왔나요[개人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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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승목 기자
  • 2019.01.11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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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목의 개人주의]모피 열풍 이제 그만…'탈 모피' 움직임에 럭셔리 브랜드도 인조 모피로 대체 분위기

[편집자주] 100여년 전 영국의 사상가 헨리 솔트는 "모든 동물은 혈연관계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땅에서 함께 공존해야 할 공동체의 관점에서 동물의 권리를 존중해야 우리도 더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매주 금요일, 무심코 지나쳤던 동물의 목소리를 들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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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사람이 이름을 남기면,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고 한다. 영하의 찬 바람이 매서운 겨울, 백화점에 들어서니 털 붙은 가죽을 남기고 사라진 동물이 호랑이 만은 아닌 듯하다. 밍크와 여우는 말할 것도 없고 요즘은 개와 고양이 등 이름 모를 동물들도 모피를 남긴다.

사람이 이름을 남기는 이유를 우리는 흔히 '공명심'(功名心)에서 찾는다. 명성이든 악명이든, 중요한 것은 본인의 선택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모피를 남기는 동물은 그렇지 않다. 가죽을 위해 태어나 고통 속에 가죽을 남긴다. 두르기만 해도 따뜻한 모피 속에는 싸늘한 죽음이 있을 뿐이다.

모피(毛皮)는 벌거벗은 인류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최초의 의복 재료로 오랜 세월 사랑을 받아왔다. 난방 버튼 하나면 집에 훈기가 돌고 밖에 나설 때는 신소재 방한 용품을 입는 요즘도 모피의 인기는 여전하다. 더 이상 생존필수품이 아니지만 수요는 오히려 더 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유 없는 동물들의 고통도 늘고 있다. 이에 전세계적으로 '모피 프리'(Fur-Free)를 외치는 물결이 거세지고 있다.

당신이 입은 그 털, 어디에서 왔나요[개人주의]
◇모피, 명품의 대명사
오늘날 모피가 갖는 위상과 이미지는 과거와 사뭇 다르다. 자연사 박물관에서 돌도끼를 든 모형 원시인이 몸에 두른 조악한 털옷을 보고 '모피'라고 일컫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모피라고 하면 호화롭고 고급스러운 명품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과거 혹독한 추위를 견디기 위한 생존필수품이었던 모피는 20세기를 거치며 대표적인 '위신재', '사치재'로 탈바꿈했다.

모피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전통적으로 모피 제품을 선호해온 베르사체를 비롯, 유명 디자이너들과 명품 업체들이 앞다퉈 모피 제품을 선보이고 런웨이에 올리며 모피를 찾는 이들도 늘어났다. 국제모피연합 조사에 따르면 1990년 4500만 마리였던 밍크 판매량은 2015년 8400만마리로 2배 가까이 급증했다.

백화점에서 판매 중인 모피 제품(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뉴스1
백화점에서 판매 중인 모피 제품(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뉴스1
모피에 열광하는 것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세계 모피시장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고객이 됐다. 2000년대 들어 급격히 시장이 커졌다. 관세청 분석에 따르면 2001년 1억5000달러 수준이던 모피 수입은 2017년 2억7900달러로 늘었다. 2011년에는 4억2200달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현재 한국은 세계 8위(2015년 기준) 수준의 모피 수입국이다. 불황이 이어진 지난해 11월에도 신세계 백화점의 모피류 판매는 26%가 증가했을 정도다.

◇모피, 무엇이 아름다운가
문제는 모피를 만드는 과정이 그리 아름답지 않다는 것이다. 이미 수년 전부터 비인도적인 모피 생산 과정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멋진 모델이 런웨이에서 모피 코트와 목도리를 두른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모피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담긴 영상을 똑바로 지켜보지 못한다. 오래 전부터 겨울이면 모피 코트를 입은 윤모씨(61)는 "과거 TV에서 모피농장 영상을 접한 뒤부터 모피를 입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모피 생산 과정은 잔인하다. 모피코트를 한 벌 만드는데 여우는 11~45마리, 토끼는 30여마리, 밍크는 55~200여마리가 필요하다. 동물권단체 케어에 따르면 전 세계 모피 재료의 85%는 이른바 '농장'에서 생산되는데 도살되는 동물들은 대체로 생후 6개월 내외의 어린 동물들이다. 좋은 상태를 위해 산 채로 가죽을 벗기는데 모피 손상 최소화를 위해 최대한 천천히 동물의 살가죽을 떼어낸다.

모피를 위해 살찌워진 여우. /사진=뉴스1
모피를 위해 살찌워진 여우. /사진=뉴스1
모피 사이즈를 늘리기 위해 좁은 사육장에 가둬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하고 일부러 살을 찌우기도 한다. 케어에 따르면 2017년 억지로 살이 찌워져 눈도 뜨지 못해 도저히 여우라고 보기 어려운 '비만 여우'를 키운 농장이 적발되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개나 고양이도 모피 재료가 되기도 하는데, 개는 의식이 없을 때까지 막대기로 폭행 당하고, 고양이 역시 자루에 넣고 망치로 때리거나 익사시킨다.

◇모피, 가짜가 더 좋아
비인도적이고 잔혹한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모피는 2000년대 들어 전세계적으로 '동물복지' 시각이 성장하며 척결 1순위가 됐다. 동물들도 최소한의 삶의 질을 존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더 이상 모피가 음식처럼 인간의 생존을 위한 제품이 아닌 단지 '멋'을 위한 도구가 됐기 때문에 무분별하게 학대와 살상을 저지를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점차 힘을 얻기 시작했다. 이른바 'Fur-Free' 운동이다.

'모피 해방' 운동은 명품 모피의 발상지인 유럽에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시발점은 영국이었다. 2000년 영국은 모피를 위한 동물사육을 금지했다. 이후 유럽 각국이 모피 농장이나 생산을 금지하기 시작했다. 2007년 유럽연합(EU)은 개·고양이 모피의 수입과 수출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했다. 일본도 모피 농장을 금지했고, 독일은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금지하기로 결정한 상태다.

진짜보다 나은 '가짜'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섬유기술의 발달로 진짜 모피와 비교해도 손색 없는 인조 모피의 인기가 점차 많아지기 시작했다. 이른바 '비건패션'(Vegan-Fashion)이다. 무작정 명품만을 따지기보다 윤리적·사회적 소비까지 고려하는 소비자들이 인조 모피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유명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가 가짜 모피로 만든 'Fur Free Fur'라인이 유명세를 탄 이유다.

중국에서 모피 생산을 위해 사살된 동물들의 모습. /사진제공= 동물권단체 케어(CARE)
중국에서 모피 생산을 위해 사살된 동물들의 모습. /사진제공= 동물권단체 케어(CARE)
◇모피, 이제는 변해야
물 위의 백조처럼, '아름다움'을 좇기 위해 동물의 아픔은 눈 감을 것처럼 보이던 명품 업계도 변하기 시작했다. 이미 여러 럭셔리 브랜드가 탈 모피선언을 마쳤다. 구찌는 2017년 10월 모피제품생산중단을 선언했다. 캘빈 클라인, 보스, 랄프 로렌 등도 '탈 모피'를 선언한지 오래다. 모피로 유명했던 베르사체 역시 지난해 모피 중단 의사를 밝혀 화제가 됐다. 런던패션위크도 올해부터 모피 제품을 런웨이에 올리지 않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소비자의 눈높이와 동물복지, 환경을 모두 고려한 결과다. 샤넬 역시 지난해 모피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아직도 모피를 찾는 애호가가 많지만 더 이상 자사의 윤리기준에 부합하는 동물 재료의 수급이 어렵다는 이유다. 대신 지속가능하고 유해성이 없는 소재를 개발할 계획이다. '진짜'를 '가짜'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에 글로벌 동물권단체 'PETA'는 "직물기술 발달로 동물가죽은 설득력을 잃었다"며 환영 의사를 보이기도 했다. 실제 실용성, 보온성이 중요한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는 이미 모든 제품에 인조모피 '에코 퍼'를 사용 중이다.

한국에서도 모피에 대한 문제의식이 움트고 있다. 지난해 온라인 마켓에서 고양이 모피코트가 판매돼 논란이 일었다. 지난해 케어의 모피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에서 수입된 개·고양이 모피 제품이 서울 인사동 공예품을 비롯, 여러 장소에서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에 국회 이정미 정의당 의원 등은 무분별하고 생산 과정을 알 수 없는 개·고양이 모피 제품을 막는 '관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지난해 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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