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도 오락가락, '소수주주권 행사요건'

서울 중구 한진 사옥 전경 / 사진제공=뉴스1

한진그룹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며 감사선임과 사외이사 선임 등 안건을 제안한 행동주의 펀드인 강성부펀드(이하 KCGI)에 한진그룹이 맞불을 놨다. 주식 보유기간 요건을 갖추지 못한 KCGI 측에 주주제안권을 행사할 권리가 없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이에 KCGI 측은 "법적 다툼의 소지가 있다"며 소송까지도 불사하겠다고 한다. 문제는 양측의 주장이 모두 일리가 있다는 데서 발생한다. 소수 주주의 권리행사에 필요한 요건에 대해 양측 주장을 뒷받침하는 조항이 상법에 엄연히 병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원의 판단도 오락가락하는 모습이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상법 제363조의 2조(주주제안권)는 발행주식 총수의 3% 이상을 보유한 주주는 주주총회 개최 6주 전에 서면·전자문서로 작성한 사항을 주주총회 목적사항으로 제안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에는 한진그룹 측이 주장하는 보유기간 요건이 없다. 이 조항대로라면 KCGI 측의 반격이 우선시된다.

그런데 상법에는 제542조의 6조(소수주주권) 조항이 따로 있다. 이 조항은 소수주주가 주총 소집청구, 회사 재산상태 조사 및 회계장부 열람, 이사 등 해임 청구, 주주대표소송 제기 등 일련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한 요건을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제363조의 2조에서 요구하는 지분요건(3%)을 대폭 완화해 0.05~1.5%의 지분만 보유한 소수 주주들도 일련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하되 '6개월 이상 주식 보유'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과거 증권거래법 등에 있던 규정이 상법으로 넘어오면서 생긴 조항이다. 상장사의 경우에는 제363조의2조에 비해 소수주주권 행사를 위한 지분요건을 대폭 완화하도록 한 반면 보유기간 요건을 부가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제542조의 6조는 상장사 소수주주권에 대한 특례규정이라고도 불린다. 한진 측의 주장은 이 조항에 따른 것이라는 평가다.

KCGI 측은 현재 한진그룹 주요 자회사인 한진칼 지분 10.8%를 보유하고 있어 제363조의2조에서 요구하는 지분 요건을 충족한 상태다. 그러나 한진칼 지분을 보유한 KCGI 측 펀드의 설립은 지난해 8월28일로, 이날로부터 올 1월31일 석태수 사장의 사내이사 제외, 감사·사외이사 선임 등 내용의 주주제안을 할 때까지의 기간은 약 5개월에 불과해 제542조의6조가 요구하는 '보유기간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상태다.


이에 한진 측은 "KCGI가 주주권 행사를 위한 기본 지식도 없이 투자자를 기만하고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고 반격에 나섰다. KCGI 측은 "6개월 보유기간 요건과 지분요건은 선택적으로 적용이 가능하다. 관련 대법원 판결도 있다"며 주주제안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에서도 소수주주권 관련 두 가지 요건 중 어느 것을 우선할지에 대해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2004년 12월 대법원은 삼애인더스의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삼애인더스가 공격 진영의 씨앤에이치캐피탈을 상대로 낸 주주총회 결의 취소소송에서 삼애인더스 패소 취지의 원심을 확정한 바 있다.

당시의 쟁점은 소수주주권 중 하나인 주주총회 소집 권한을 인정해야 할지 여부였다. 주주총회에서 경영진 교체를 단행한 씨앤에이치 측이 상법상 지분요건 규정(현재의 상법 제363조의 2조)은 충족했다더라도 증권거래법상 보유기간 요건 규정(현재의 상법 제542조의 6조)을 충족하지 못해 주주총회 소집 권한이 없으니, 문제가 된 주총의 결의도 위법하다는 게 삼애인더스의 주장이었다.

대법원은 "증권거래법 규정의 입법취지는 상법상 지분요건을 갖추지 못한 주주에게도 증권거래법이 정한 보유기간 요건을 갖추면 주주총회 소집 청구를 할 수 있도록 해 기업경영 투명성을 제고하고 소수주주 권익을 보호하려는 데 있다"며 "보유기간 요건은 소수주주권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부수적 목적에서 비롯됐다. 증권거래법 규정이 상법 규정을 배제하는 특별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삼애인더스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1년 4월 서울고법도 티엘씨레저 경영권 분쟁과 관련한 주주총회 소집허가 가처분 신청에서 보유기간 요건이 지분요건보다 우선하지 못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서울고법은 "보유기간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더라도 지분요건을 갖추고 있다면 주주총회 소집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며 당시 4.94% 지분을 보유하고 있던 소수주주 측의 주장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또 "상장사 특례규정의 적용범위에 대해 상법상 다른 규정에 우선해서 적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더라도 이는 특례규정과 관련한 모든 경우에 상법 일반규정의 적용을 배제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1차적'으로 적용한다는 원론적 의미의 규정에 불과하다"며 "상법 일반규정의 배제가능 여부는 특례의 각 개별규정에 따라 달리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2015년 7월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이 당시 제일모직과의 합병을 앞두고 있던 삼성물산을 상대로 제기한 주주총회 소집통지 및 결의금지 가처분 신청에서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법은 각각 엘리엇 패소 결정을 내렸다. 당시 문제가 된 내용은 이사의 법령·정관 위반행위로 회사에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생길 염려가 있을 때, 이같은 행위를 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내용의 소수주주권인 '유지청구권'이었다. 법원은 "상장사 특례규정(현재의 제542조의 6조)이 일반규정에 비해 우선한다"며 "회사(삼성물산)의 정관도 상법 특례규정이 정한 것보다 (소수주주권 관련) 단기의 주식보유기간을 정한 것으로 볼 수도 없다"고 엘리엇 패소 취지의 결정을 했다.

KCGI 측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한누리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과 2011년 서울고법 결정은 소수주주권을 제한하는 용도로 보유기간 요건이 활용돼서는 안된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고 2015년 엘리엇 사건에서의 법원 판단이 되레 이례적이라고 봐야한다"며 "한진 측이 주주총회에서나 기타 입장 표명을 통해 KCGI 측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 확인되면 곧바로 법적 절차에 돌입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