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이어 KCGI도 '찻잔 속 태풍' 되나

한진과 한진칼 본사가 위치한 서울 중구 한진 사옥. /사진=뉴스1

한진그룹과의 주주총회에 표 대결을 예고한 행동주의 사모펀드 '강성부펀드'(KCGI)가 '찻잔 속 태풍'에 머물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 22일 현대차 (249,500원 ▼500 -0.20%), 현대모비스 (240,500원 ▼3,500 -1.43%) 주주총회에서 완패한 미국계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모습이 재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

25일 재계에 따르면 대한항공 (20,800원 ▲200 +0.97%)은 오는 27일, 한진칼 (57,700원 ▲300 +0.52%)은 오는 29일 주주총회를 개최한다. 이들의 표 대결이 예고되는 첨예한 사안은 양사 사내이사의 재선임 여부다. 대한항공은 이번 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회장의 사내이사직 재선임 안건을 상정했다. 한진칼 주주총회에선 조 회장 측근인 석태수 대표이사의 사내이사직 재선임 안건이 올라와 있다.


먼저 한숨을 돌린건 한진칼 측이다. 지난 21일 한진칼은 법원으로부터 반가운 소식을 받았다. 2대 주주인 KCGI(지분율 12.8%)의 주주제안 자격을 놓고 제기한 항소심에서 승소했다. 서울고등법원 제25민사부는 한진칼이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안건상정가처분 인가결정'에 불복해 항고한 건에 인용 판결을 내렸다.

그동안 한진칼은 KCGI와 사외이사 선임, 감사 선임 등의 안건을 제안한 것을 두고 갈등을 겪었다. 한진칼은 KCGI가 한진칼 주식을 보유한지 6개월이 되지 않아 주주제안 자격이 없다고 했다. 반면 KCGI는 주식을 3% 이상 보유하고 있어 자격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결국 서울고법은 한진칼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한진칼은 주총에 조건부 안건으로 올렸던 KCGI 측 주주제안을 안건에서 삭제했다. 표 대결 선택지만 남은 KCGI는 주주들에게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에 나섰다.


국민연금 의결권 자문사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도 한진칼에 힘을 실었다. 이들은 지난 24일 석 대표의 사내이사직 재선임 건에 찬성투표를 권고했다. 권고 사유는 "석 대표가 회사 가치의 훼손이나 주주 권익 침해를 특별히 우려할 만한 문제점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KCGI가 한진해운 파산에 석 대표가 영향을 끼쳤다는 주장에 KCGS는 "한진해운 경영악화 주 원인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해운경기 침체 때문"이라며 "석 대표 시절 파산했지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판단하긴 어렵다"고 했다.

물론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당장 서울중앙지법은 이날 KCGI 측이 제기한 검사인 선임 신청을 받아들였다. 한진칼 지분 6.7%를 보유한 3대 주주인 국민연금도 의결권 행사 방향을 아직 공개하지 않았다. 한진칼의 지분 구조는 조 회장 및 특수관계인 28.9%, KCGI 12.8%, 국민연금 6.7%, 기타주주 51.6%로 구성돼 있다.

주총이 이틀 앞으로 다가온 대한항공은 상황이 더 복잡하다. 조 회장이 경영권 유지를 하려면 주총 참석 주주 3분의2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조 회장 측 대한항공 지분은 33.35% 수준에 불과하다. 참여연대와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등 시민사회계는 지분율 약 56%에 달하는 소액주주 상당수의 위임장을 확보해 조 회장 연임안 통과를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또 세계적 의결권 자문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와 국내 의결권자문사인 서스틴베스트는 조 회장이 여러 가지 위법 혐의를 받는 점을 이유로 이사 재선임에 반대표를 행사할 것을 권고했다.

이 상황에서 11.56%의 지분을 보유한 2대 주주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방향이 방향타가 될 전망이다. 국민연금은 이날 오후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전문위)를 열고 의결권 행사 방향을 결정할 예정이다.

재계 일각에선 전문위가 지난 21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현대엘리베이터 사내이사 선임 안건에 기권한 것처럼 비슷한 결정이 나올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한 재계 관계자는 "시민단체 고발 등으로 현 회장의 재판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전문위는 장기적인 주주가치 영향을 고려해 기권하기로 결정했다"며 "조 회장 역시 재판이 진행 중이라 비슷한 결정이 내려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