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츠러든 제약산업 ‘역풍장범’ 정신 필요

우리나라 제약산업이 본격적으로 신약 개발에 관심을 보이게 된 것은 1987년 국내 제약사들이 독일 제약사의 R&D(연구·개발) 현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이후부터다. 당시 3000여명에 달하는 연구인력이 신약개발에 전념하는 모습은 큰 충격을 줬다. 이때부터 국내 제약사들은 신약개발에 적극 나서기 시작됐다. 30여년이 지난 현재 외국기술을 모방해 약을 만드는 수준에서 자체신약을 만들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나라가 됐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제약산업도 ‘격변의 시기’를 맞았다. 과거에는 동일 기전 내 최고 수준의 신약만 개발해도 성공이라고 했지만 이제는 혁신신약(First in class)이 아니면 살아남기 힘든 시대가 된 것이다. 이에 따라 국내 제약사들이 신약개발에 투자하는 비용은 점점 늘고 있다. 하지만 ‘캐시카우’(현금창출원) 역할을 해온 복제약 규제가 강화되면서 자금력이 부족한 기업들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진다. 여기에 국내외 경제침체는 국내 제약사들을 더욱 움츠러들게 한다.


‘역풍장범’(逆風張帆)이라는 말이 있다. ‘맞바람을 향해 돛을 펴라’는 뜻이다. 역풍장범이란 네 글자에 담긴 의미처럼 국내외 경제침체와 제도변화에 움츠러들지 말고 신약개발이라는 동력으로 정면돌파해야 하는 시점이다. 국내 제약산업을 주도하는 R&D 중심 제약사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R&D 투자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이들은 복제약 영업 중심에서 벗어나 도전적으로 신약개발에 뛰어들었고 이는 다수의 국산 신약개발과 글로벌 기술수출로 이어졌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앞으로 나아가려는 굳은 의지와 극복하고자 하는 정신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조금 더 멀리 내다보고 세계 시장을 겨냥한 신약개발에 초점을 맞춰야 할 때다. 이를 위해선 투자전략 방향도 과감히 수정·전환할 필요가 있다. 신개념의 신약개발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6개월 내지 1년만 늦어도 다른 기업이 주도권을 차지한다. 아무리 좋은 물질을 개발해도 늦었다고 생각하면 글로벌 시장은 관심을 꺼버린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조각조각 떨어진 분야를 하나로 합쳐 완성하는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ovation)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부도 국내 제약산업이 글로벌 제약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발 성공 가능성이 높은 신약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분석하고 거기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직관(경험)과 용기가 필요하다. 제약산업이 발전해야 국민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인식도 중요하다. 제약산업을 ‘규제’해야 하는 산업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적절한 ‘당근’을 주고 제약사가 다시 R&D에 투자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야 진정한 의미의 ‘미래전략산업’이 될 수 있다.

김동연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이사장 겸 일양약품 대표. /사진=일양약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