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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큰 자식과 내 국민연금 나눠 먹으며 살 생각은 해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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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성희 콘텐츠총괄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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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4.27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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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 투자노트]

지난주 ‘게임만 하던 아들이 미친 듯 공부를 시작했다…이유는?’이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많은 분들이 댓글을 달아주셨습니다. ”때가 되면 한다”와 “기다려야 한다”는 조언에 공감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저는 교육전문가가 아닙니다. 세상이 ‘문제아’로 보는 아들 하나 키워온 경험뿐입니다. 한 개인의 경험이지만 그 경험으로 댓글에 대한 저의 생각을 다시 정리해 올립니다. 저와 비슷한 길을 걸으시는 부모님에게 ‘이 사람은 힘든 자녀를 이렇게 키웠구나’ 작은 참조가 되기를 바랍니다.

"다 큰 자식과 내 국민연금 나눠 먹으며 살 생각은 해보셨나요?"


첫째, 기다리다 늦는다?=고3 아들이 공부를 시작했다고 하자 이미 늦었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고3 때는 누구나 열심히 하기 때문에 차분히 준비해온 아이들과 경쟁이 안 된다”는 의견도 있었고 “학종이 기다리지 못하게 한다”는 댓글도 있었습니다. “돌이킬 수 없을만큼 늦은 후에 정신 차리게 된다는 게 문제다. 고3에 정신 차린건 다행이지만 공부로 돈 잘 벌며 살긴 힘들겠네. 그냥 철든 걸로 만족해야지”라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저의 답은 공부가 목적이 아니라면 인생에 늦은 때란 없다는 겁니다. 저는 아들이 스스로 자기 인생을 생각해보고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만으로 만족합니다. 뭐든 자기가 할 일을 생각해냈다는 것 자체가 독립적인 인생을 살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아이들이 이 첫걸음을 뗄 수 있게 기다려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공부가 목적이 아니라면, 좋은 대학이 목적이 아니라면 인생에 늦은 때란 없습니다. 아들 때문에 힘들 때 어떤 분의 딸 얘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그 분의 딸은 중학교 때부터 소위 노는 애들과 어울리며 집에 늦게 들어와 ‘저러다 남자애랑 눈 맞아 사고 치는건 아닌가’ 걱정이었다고 합니다. 고등학교도 못 갈 성적이라 전국을 수소문해 간신히 졸업 인정을 받는 곳을 찾아 보냈습니다. 고등학교에서도 공부를 안 해 이름도 낯선 지방의 한 대학에 겨우 갔습니다. 이 딸이 대학 가서 착실하게 변해 건실한 남자 만나 결혼하고 함께 유학을 갔다고 합니다.

지금 중학교, 고등학교 때 친구들을 만나면 성적순이나 대학순으로 잘 사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대부분은 사는게 거기서 거기입니다. 비슷하다는 거죠. 정말 별 인생이 없다는 것을 나이가 들수록 깨닫게 되네요.

둘째, 기다려도 정신을 못 차리는 아이가 있다?=가장 많은 공감을 얻은 댓글이 “어쩌다 기적 같이 정신차린 걸, 부처같이 참고 잘 기다려만 주면 모두 다 돌아올거라고, 일반화 심하네요”였습니다. 이에 대해선 잘 기다리면 시기의 문제일 뿐 아이들은 다 정신 차린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문제는 부모가 먼저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겁니다.

저는 아들이 말썽을 피며 공부에 소홀하기 시작한 중1 때부터 아들이 공부 하기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시험 치러 가서 잠을 자거나 ‘3’이 좋아서 모든 문제의 답을 3번으로 찍고 왔다는 아들에게 저의 공부하라는 잔소리는 짜증만 돋울 뿐이었습니다. 저는 저대로 공부는 안 하고 게임만 하는 아들을 보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이런 저를 깨우친 것은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었습니다. 중3 때 아들 담임 선생님의 조언으로 온 가족이 정신과를 방문해 심리검사를 하고 상담을 받았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검사 결과를 보더니 “엄마가 제일 문제네요” 했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열심히 일하며 아들 공부 잘하라고 뒷바라지한 거밖에 없는데 제가 문제라니요?” “엄마가 너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자기 주장이 강해 아들을 힘들게 해요.” 그러면서 “아들은 지극히 정상이예요” 했습니다. “아니 공부도 안 하고 게임만 하는데 뭐가 정상이예요?”

“어머니 요즘 애들 대부분 저 정도는 게임 해요. 공부 좀 안 하면 어떻습니까. 먹을 거 먹고 가기 싫다고 하면서도 학교는 가고 친구도 있고 가출하는 것도 아니고 부모와 대화를 거부하는 것도 아니고 우울증도 없고요, 아예 밥 먹는 것을 거부하고 집 나가 버리고 자해하는 아이들도 있어요. 아드님 정도면 훌륭한 겁니다. 아들의 좋은 점을 좀 봐주세요.”

그 의사 선생님과 대여섯번 상담을 받으면서 아들이 공부를 안 해도, 좋은 대학에 못 가도, 그래서 돈을 잘 못 벌고 찌질하게 살아도, 뭐가 그리 큰 일이랴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최악의 경우 다 큰 아들이랑 남편과 내 국민연금으로 살면 되지’ 하는 생각까지 하자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자연히 “공부하라”는 잔소리가 그쳐졌습니다.

그 때부터 갓 낳아 다섯살이 될 때까지 아들에게 잘 먹고 잘 싸고 잘 노는 것 외에 아무 것도 바라지 않았던 오래 전 엄마의 초심으로 아들을 바라보려 했습니다. 게임을 해도 예쁘고 아침에 잘 못 일어나면 안쓰러운, 사랑의 눈으로만 보려 했습니다. 이것이 부모가 정신을 차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제가 엄마의 초심으로 돌아가 정신을 차리자 아들과 관계가 회복됐습니다. 제가 집안일을 하다 짜증을 내면 아들은 달려 나와 “엄마, 무슨 일이야? 내가 뭐 도와줄까” 합니다. 제가 밤에 누워서 휴대폰을 보고 있으면 “엄마, 잘 때 나 불러. 내가 불 꺼 줄께” 합니다. 가끔 제게 와서 “엄마 우리 깊은 대화를 나눈지 오래 됐는데 서로 사는 얘기 좀 하자”라고 합니다.

이런 아들을 보며 ‘공부를 못하면 어때. 저렇게 싹싹한데 뭐라도 해먹고 살겠지’ 하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사랑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아이를 있는 모습 그대로, 존재 자체로, 내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사랑하면 반드시 변합니다.

아이보다 앞서 가서 성급하게 해주려 하면 아이가 부담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공부 안 해도 되니까 너 하고 싶은거 열심히 해봐. 뒷바라지 해줄게”라는 말조차 아이에겐 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냥 노는게 가장 좋을 수 있거든요. 혹은 좋은 일이라도 부모님이 관심을 기울여 간섭하기 시작하면 부담스러워 그만두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아이는 부모가 무엇을 하라고 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힘든 아들을 키우며 얻은 제 결론은 사랑으로 아이와 충분히 대화하며 아이가 도움을 요청할 때까지 기다리는게 최선이라는 겁니다.

셋째, 사람은 잘 안 바뀐다?=“미안한 말이지만 저 결심이 얼마나 갈지 의심이 되네요. 3월까지도 게임만 하던 아이가 4월에 며칠 공부했다고 들뜨고 기쁜 마음에 때되면 알아서 한다고 성급하게 기사 쓴건 아닌지”라는 댓글도 있었습니다. 정말 족집게 같으십니다. 실제로 아들은 4월 모의고사가 끝난 뒤 다시 게임을 시작하더니 공부에 소홀해지더군요.

약간 실망스럽긴 하지만 전혀 예상 못한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하루아침에 변한다는 것은 거의 없으니까요. 일직선으로 이뤄지는 진보는 없습니다. 나아갔다 다시 뒷걸음질치기를 반복합니다. 그저 진보하는 걸음이 후퇴하는 걸음보다 많아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아들에게 “너 왜 또 공부 안해?”라고 물었더니 “슬럼프야. 내가 알아서 할께”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들이 공부를 하든 안 하든,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며, 나아갔다 물러섰다를 반복하는 과정 속에서 좀더 나은 인생의 길로 걸어가기를 응원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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