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효 많았다" '아들' 문재인의 절절한 사모곡

변호사 시절 문재인 대통령과 강한옥 여사 / 사진제공=문재인 선거캠프

"저희 어머니가 소천하셨습니다. 평생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워하셨고, 이땅의 모든 어머니들처럼 고생도 하셨지만 '그래도 행복했다'는 말을 남기셨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모친 故 강한옥 여사가 29일 9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아들을 대통령으로 키워낸 강 여사는 찢어지는 가난 속에서도 늘 문 대통령을 향해 '가난하지만 기본은 지키며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정치에 뛰어들던 시절, 그는 소위 '빽' 없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다는 점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사실 문 대통령은 평범한 가정이라기보단 넉넉지 않은 실향민 가정에서 자랐다.

문 대통령의 부친 故 문용형씨는 당시 명문이던 함흥농고를 졸업해 흥남시청 농업계장을 지냈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1950년 12월 흥남 철수 때 젖먹이였던 큰딸 재월을 데리고 형제들과 함께 피란을 내려왔다. 이들이 자리를 잡은 게 문 대통령의 고향 거제도다. 2남 3녀 중 둘째인 문 대통령은 피난살이 중 태어났다.

문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에서 "(부모님은) 아무 연고 없는 남쪽에서 제대로 생활할 수 있는 준비도 전혀 없이 낯선 땅의 삶을 시작했다. 뿌리 잃은 고단한 삶이었다"고 기술했다. 그는 "우리 집의 가난도 아팠지만, 분단과 전쟁 때문에 아버지가 당신의 삶을 잃은 것이 늘 너무 가슴 아팠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의 부친은 거제에 정착한 후 공무원 경력 덕분에 포로수용소 노무자가 됐지만 수입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사업에 나섰지만 소질이 없었다. 부산에서 양말 도매상을 했지만 미수금이 쌓여 부도를 맞았다. 가세가 기울자 강 여사가 힘든 일을 가리지 않고 하면서 7명 가족의 생계를 짊어졌다. 강 여사는 시장 좌판에서 구호물자 옷가지를 팔거나 계란 행상을 하고, 연탄 배달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

문 대통령도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후나 휴일이면 강 여사를 도와 연탄 리어카를 끌거나 연탄을 배달했다. 강 여사의 강직함은 문 대통령의 인생관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문 대통령은 "어머니가 끄는 연탄 리어카를 뒤에서 밀면서 자립심을 배웠다"고 했다. "'돈이라는 게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라는 지금의 내 가치관은 오히려 가난 때문에 내 속에 자리 잡은 것"이라고도 했다.

강 여사가 중요시한 건 강직함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늘 가난함에도 당당하게, 또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할 것을 당부했다. 한번은 문 대통령이 당시 중학교 1학년생이던 시절 함께 기차 암표 장사를 하기 위해 이른 새벽 부산역으로 향했다. 하지만 차마 아들 앞에서 떳떳하지 못한 돈을 벌 수 없어 먼 길을 그냥 돌아왔다고 한다.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부부는 어떻게든 월사금을 마련해 자식을 학교에 진학시켰다. 똑똑한 아들 문 대통령은 명문 경남중, 경남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친구들과 술, 담배를 하고 싸움을 하다가 '정학'을 당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재수 끝에 4년 장학금을 받고 1972년 경희대 법학과에 진학했다.

문재인 대통령 모친상 빈소 모습. 청와대 공개, 2019.10.30. / 사진제공=청와대 제공

문 대통령은 1975년 4월 경희대 총학생회 총무부장으로 유신 반대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경찰에서 조사를 받고 검찰로 이송되는 날 호송차를 따르던 어머니의 모습을 생생히 묘사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어머니가 팔을 휘저으며 '재인아! 재인아!' 내 이름을 부르고 차 뒤를 따라 달려오고 계셨다"면서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멀어지는 호송차를 바라보고 계셨다"고 떠올렸다.

문 대통령이 출소 후 복학이 안돼 낭인으로 지내던 때, 문 대통령의 부친은 1978년, 59세를 일기로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부친의 사망은 문 대통령이 사법고시에 합격하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됐다. 문 대통령은 깊은 회한을 안고 49재를 치른 뒤 전남 해남 대흥사로 들어가 사법고시 준비를 시작했다. 1979년 1차 시험에 합격하고 이듬해 2차 시험을 치렀다.

문 대통령은 이쯤에서야 어머니의 생활이 조금은 나아졌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내가 변호사가 돼서 형편이 조금 나아질 때까지는 우리네 많은 어머니들처럼 그 긴 세월 수없이 많은 눈물과 한숨을 삼키셨다"고 말했다.

생활이 조금 나아졌다지만 강 여사는 늘 외로웠다. 피란길에 오르던 때 강 여사는 형제자매를 뒤로한 채 홀로 떠나왔기 때문이다. 강 여사는 문 대통령이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으로 재직 중이던 2004년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 당시 북측의 동생 강병옥씨를 만났다. 문 대통령은 "제가 아마 평생 어머니에게 제일 효도했던 것이 이때 어머니를 모시고 갔던 게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당선된 뒤에도 강 여사는 늘 그에게 한결 같기를 요구했고, 또 그럴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강 여사는 한 인터뷰에서 "아들은 예측 가능한 사람이다. 대통령이 된다 해도 마음이 변할 사람이 아니다"라며 문 대통령에 대한 신뢰를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6년 12월 25일 어머니 강한옥 여사와 함께 성당에 가고 있다. / 사진제공=문재인 선거캠프

강 여사는 늘 아들에게 조심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군소리가 나올까 지방선거 이후 당선자들이 찾아와도 문도 열어주지 않았다. 누가 되지 않겠다면서 계속 대통령과 멀리 떨어진 부산 영도에 거주해왔다. 대신 강 여사는 주변의 눈을 피해 인근 성당에서 매일 새벽기도만을 하면서 사실상의 은둔생활을 해왔다.

문 대통령이 당선된 뒤 강 여사도 청와대 경내를 걷기도 했으나, 노환으로 인해 2017년부터 차츰 강 여사의 건강이 나빠졌다.

문 대통령이 어머니의 별세를 알리며 쓴 글에선 절절한 효심이 읽힌다. 문 대통령은 "마지막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주 찾아뵙지도 못했다. 때때로 어머니에게 드렸던 기쁨이나 영광보단 불효가 훨씬 많았다"며 자신이 해드린 것보다 해드리지 못한 게 많다고 회한 섞인 맘을 남겼다.

대통령으로서 단순히 모친의 별세 소식을 알리는 글이 아니라 사랑하는 어머니의 아들로서 추억과 못해준 회한 등을 밤새 떠올리며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글이 슬픈 마음에 띄운 절절한 '사모곡(思母曲)'에 가깝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