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현·임영웅·BTS···'패션 빅 모델=성공의 보증수표'일까

(왼쪽부터)웰메이드 임영웅, 네파 전지현, 올리비아 로렌 김태희 이미지/사진=각 브랜드

네파의 전지현, 휠라의 BTS, 밀레의 이문세 그리고 웰메이드 임영웅까지…패션 브랜드에 모델은 브랜드의 얼굴이나 마찬가지다. 특히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고 인기가 많은 '빅 모델'은 흥행의 보증수표로 간주된다. 하지만 '빅 모델'을 고용한 스타 마케팅에 10억원 넘는 돈을 쏟아부어도 브랜드 호감도는 계속 하락하는 경우가 있다. 마케팅 예산을 이만큼 집행했는데…대체 뭐가 문제일까.
빅모델=브랜드 성공의 보증수표? "1020 패피는 무관심" 아웃도어 브랜드 네파가 전지현을 전속모델로 발탁한 것은 2013년이었다. 올해로 8년째 전지현은 네파의 간판 스타 자리를 꿰차고 있다. 아웃도어 호황이 지나고 네파의 매출을 매년 감소했지만 어쨌든, 전지현이 화보에서 입은 옷은 대부분 완판됐다.

마케팅업계에서 빅 모델은 '안전한 선택'으로 통한다. 국내 한 아웃도어 브랜드의 마케팅 부장 A씨는 "전지현 같은 빅 모델은 일단 안전하다"며 "어느 정도의 매출을 보장해주는 효과가 확실하고 대중에게 생소한 모델을 썼을 때의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예산 부담이 크지만 일단 빅 모델을 기용했다면 믿고 맡길 수 있다는 뜻이다. A씨는 "빅모델의 문제는 '믿을 만하다'는 데서 시작된다"며 "대규모 광고비를 책정해 빅 모델을 발탁한 다음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브랜드 마케팅이나 품질에 오히려 더 소홀하게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MBK파트너스는 지난 2013년 네파 지분 94.2%를 9970억원에 사들였다. 하지만 인수 후 예상과 달리 네파는 매출이 고꾸라지기 시작했고 지난해 코로나19(COVID-19)를 기점으로 매출 3000억원 선마저 깨졌다. 2020년 네파의 매출액은 2804억원으로 전년비 14.3% 줄었고 순손실은 1170억원으로 엄청나게 확대됐다. 최정상 스타급 모델 전지현으로도 잡을 수 없었던 실적 하락세였다.

휠라 방탄소년단 화보 이미지/사진=휠라코리아

2018년 화려한 부활에 성공하며 '국민 브랜드'로 재기한 휠라도 '빅 모델'의 한계를 보여줬다. 휠라의 대표 모델은 국내외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BTS(방탄소년단)다. 하지만 보복소비로 패션 매출이 크게 증가한 올해 3분기 휠라홀딩스의 한국 매출액은 8.2% 감소하며 나홀로 뒷걸음질쳤다. 다른 패션기업이 실적 회복에 기뻐할 때 휠라의 3분기 영업이익은 전년비 28% 줄었다.


휠라는 지난해부터 유행의 흐름에 뒤쳐지면서 매출이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 물론 BTS 멤버들이 휠라 화보에서 착용한 제품은 BTS 공식 팬클럽 아미의 큰 사랑을 받으며 모두 완판됐다. 하지만 휠라 브랜드의 생명력을 유지하는데는 '빅 모델' BTS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휠라는 글로벌 브랜드이고 모델은 BTS"라며 안심했을 때, 휠라의 위기는 시작됐다.
모델보다 '브랜드'…매력적인 브랜드가 먼저다 현대백화점그룹 한섬의 토종 패션브랜드 타임과 마인은 '빅 모델', 특히 스타 모델을 고용하지 않는다. 필요할 때마다 브랜드 이미지에 맞는 패션모델을 시즌별로 달리한다. 타임, 마인은 브랜드의 얼굴로 특정 모델을 내세우지 않으며 항상 브랜드가 먼저다. 한섬의 옷을 좋아하는 고객들은 타임 특유의 딱 떨어지는 디자인과 시크함, 마인의 여성스러운 라인 그리고 고급스럽고 탄탄한 원단, 믿을 수 있는 품질을 찾는다. 국내 패션시장에서만 1조원대 매출을 일궈낸 한섬의 저력은 모델이 아닌 브랜드에서 나왔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어패럴의 모델 정혁 이미지/사진=내셔널지오그래픽

'Z세대 교복'으로 불리며 큰 인기를 끈 내셔널지오그래픽 어패럴은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모델 '정혁'과 계약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이 그와 계약할 당시 정혁은 대중적인 인지도가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정혁은 특유의 자유롭고 개성있는 분위기로 내셔널지오그래픽 브랜드 고유의 자연으로의 모험, 탐험이라는 가치를 전달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이 패션 브랜드로 성장하면서 정혁의 인지도도 덩달아 높아졌고 브랜드와 모델이 동반 성장하는 선순환을 이뤄냈다.

브랜드를 살리기 위해 모델을 수차례 변경했지만 매출 하락을 면치 못한 경우도 있다. 아웃도어 브랜드 밀레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밀레는 '내일은 미스터트롯'에서 국민가수로 부상한 임영웅을 모델로 발탁해 이미지 쇄신에 나섰다. 당시 밀레는 1400억원이던 매출이 2019년 1000억원으로 감소하면서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바 있다. 이에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임영웅을 모델로 썼지만 매출 감소는 멈추지 않았다. 결국 밀레는 지난 9월 '국민가수' 이문세로 모델을 변경하면서 '정통 아웃도어로의 회귀'를 선언했다.


국내 패션업에서 마케팅을 담당하는 B씨는 "패션 트렌드를 주도하는 1020세대는 빅 모델의 존재보다는 브랜드가 보여주는 분위기와 가치를 중시하며 실착용 모습을 보여주는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 유튜버를 따라간다"며 "브랜드 특유의 느낌과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 외국인 모델을 쓰거나 무명의 모델로 브랜드 자체와 제품을 강조하는 것이 요즘 패션업계 대세"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밀레 모델로 발탁된 임영웅(왼쪽), 현재 밀레 모델인 이문세(오른쪽)/사진=밀레

'방방곡곡' 전국구 브랜드는 그래도… "'빅 모델'이 정답" 빅모델이 꼭 필요한 브랜드도 있다. 전국 방방곡곡에 매장을 둔 40대부터 60대 '기성세대'를 주 고객으로 둔 브랜드다. 전국 각지 구석구석에 매장을 운영하는 세정그룹의 올리비아 로렌, 웰메이드가 대표적이다. 과거 올리비아 로렌의 간판 얼굴로는 수애가 유명했다. 웰메이드는 정우성이 장기간 모델로 활동했다. 현재 올리비아 로렌 모델은 김태희가, 웰메이드 모델은 임영웅이 각각 맡고 있다. 특히 세정은 20대부터 5060세대까지 아우를 수 있는 모델로 임영웅을 파격 발탁해 긍정적인 매출 효과를 얻었다.

세정 마케팅팀 관계자는 "전국 대리점을 전개하는 브랜드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대중적인 모델을 써야 브랜드에 대한 우호적인 인식을 구축할 수 있다"며 "중장년층 고객은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높고 특히 대리점주들이 "김태희가 입었다"는 식으로 판매촉진활동에 모델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 누구나 들으면 알 수 있는 빅모델이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세정 웰메이드의 모델 임영웅은 30세라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트로트'를 매개로 부상하면서 중장년층에 큰 마케팅 파워를 발휘하고 있다. 세정 관계자는 "중장년 고객은 모델 때문에 제품을 구매하는 경우가 매우 드문데 임영웅이 추천하는 제품에 대해서만큼은 실제 매출로 연결되는 이례적인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며 "웰메이드도 '임영웅 효과'에 힘입어 올해 매출(1월~12월 첫째주)이 전년비 약 25% 늘었다"고 말했다.

(왼쪽)세정 웰메이드 모델 시절 정우성 (오른쪽) 올리비아 로렌 모델이던 수애 화보 이미지/사진=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