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통합검색
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관련기사62

[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티그리스 강가에서 만난 사람들

<60> 무덤지기 압둘라와 개밥 주는 노인

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머니투데이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입력 : 2017.04.01 10:33
폰트크기
기사공유
편집자주여행은 스스로를 비춰보는 거울이다. 상처 입은 영혼을 치유하는 수단이다. 여행자들이 전하는 세상 곳곳의 이야기는 흥미와 대리만족을 함께 안겨준다. 이호준 작가가 전하는 여행의 뒷얘기와 깨달음,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하산케이프 지킴이를 자처하는 압둘라/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하산케이프 지킴이를 자처하는 압둘라/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티그리스 강이 도도하게 흐르는 하산케이프. 나는 강가를 오래 걸었다. 그곳에서 처음 만난 사람은 압둘라는 아랍식 이름을 가진 40대 사내였다. 하산케이프는 아랍 지역과 가깝기 때문에 아랍인 투르크인, 쿠르드인들이 섞여서 산다.

사진을 찍고 있는데 40대쯤의 한 사내가 와서 내 카메라를 자꾸 들여다봤다. 그가 나중에 친해진 압둘라다. 여행자는 이 정도 상황이면 그냥 지나가면 안 된다. 사람을 만나고 친구를 사귀는 것이야말로 여행을 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말이 통하고 통하지 않고는 두 번째 문제다. 손짓 발짓만으로도 얼마든지 친구를 사귈 수 있다.

“메르하바” 인사를 했더니 그가 대뜸 “Are you professor?”라고 물었다. 어라? 교수는 무슨 교수. 나는 떠돌이 여행자일 뿐이라고…. 자유분방해 보이기를 원하는 나로서는 뜻밖의 질문이었다. 아무튼, 교수가 아니라 여행자라고 나를 소개했더니 이번엔 카메라에 관심을 보였다.

“프로들이 쓰는 카메라네요?”

이 친구 ‘프로’라는 말을 제법 좋아하네? 요즘 사진 찍는데 프로, 아마추어가 따로 있나? 농담 섞인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카메라만 프로고 찍는 나는 아마추어예요.”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압둘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친구였다. 최종학력은 초등학교 5학년 중퇴. 직업은 무덤지기였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하는 일은 기록가이자 사진가다. 젊어서부터 고고학 발굴 현장을 쫓아다니며 역사에 대한 지식을 익혔다고 했다. 그는 하산케이프를 사랑한다는 말을 습관처럼 되뇌었다. 티그리스 강에 댐을 쌓아 옛도시가 물에 잠기면 자신의 삶도 사라진다고 슬퍼했다. 그 때문에 그는 글쓰기를 배우고 사진 찍는 것을 배워서 하산케이프에 대한 기록을 시작했다. 그렇게 틈틈이 기록한 것들을 모아서 책으로 발간하기도 했다.

다음에는 메소포타미아 전체를 기록하겠다는 큰 꿈을 꾸고 있었다. 나보다 젊은 그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환경 때문에 학교를 다니지 못했어도 의지를 갖고 끊임없이 한길을 달려온 한 사내의 성취는 내 삶을 통째로 자성할 수 있게 해줬다. 여행이 더욱 풍요로워지는 순간이었다.

노인이 개들에게 먹이를 나눠주고 풀밭에 누워있다./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노인이 개들에게 먹이를 나눠주고 풀밭에 누워있다./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그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중절모에 단장, 구두까지 갖춰 신은 노신사 한 분이 푸른 풀빛을 헤치며 저만치서 천천히 걸어왔다. 내 눈에는 풍경에 점 하나 찍을 정도의 작은 변화일 뿐이었다. 하지만 어떤 존재들에겐 엄청나게 반가운 존재인 모양이었다. 노인의 모습은 아직도 까마득하게 멀리 있는데 강가에서 배를 깔고 봄볕을 즐기던 떠돌이 개들이 벌떡 일어나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인과 개들은 서로를 얼싸 안 듯 만났다.

그들의 상봉 장면은 눈물겨울 정도로 극적이었다. 사람과 사람끼리의 만남도 저리 반가울 수 있었으면. 노인이 주머니에서 뭔가 꺼내서 하나씩 나눠주자, 개들은 말 잘 듣는 아이들처럼 순서대로 받아먹었다. 곁에 있던 압둘라에게 물었다.

“저 노인은 누구예요?”

“아! 개 밥 주는 노인이에요.”

“개 밥 주는 노인? 개들의 주인이 아니고요? 매일 저렇게 밥을 줘요?”

“그럼요. 그게 저 노인의 일인 걸요.”

노인은 날마다 일정한 시간에 나타나서 떠돌이 개들에게 먹이를 준다는 것이었다. 혼자 살고 있고 몸도 불편하다는데 그 일만큼은 거르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과 개가 아니라 할아버지와 손자들이 어울린 풍경 같았다. 적요만 떠돌던 강변에 느닷없이 활기찬 기운이 흐르기 시작했다. 먹을 걸 다 나눠준 노인이 한 녀석씩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한참 이야기를 나누더니, 햇살을 이불 삼고 호박돌 하나를 베개 삼아 풀밭에 누웠다.

아무 욕심도 없는 사람이 내뿜는 평화로운 기운이 천지간에 가득했다. 노인과 자연은 금세 경계를 지웠다. 개들도 노인의 주변에 누워 자연 속으로 녹아들어갔다. 세상의 모든 포성은 멈추고 모든 철조망은 걷히고 사람과 동물, 사람과 자연, 동물과 자연의 구분조차 모호해지는 것 같았다.

날이 새면 서로에게 손가락질하고 멱살잡이를 하고, 집 없는 동물들을 학대하고 죽이기까지 하는 세상이 아득하게 멀어졌다.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평화 속에 나를 맡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티그리스 강가에서 만난 사람들

※ 이 기사는 빠르고 깊이있는 분석정보를 전하는 VIP 머니투데이(vip.mt.co.kr)에 2017년 3월 31일 (10:33)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0%
  • 0%


오늘의 주요뉴스



종료된칼럼

대선주자 NOW

실시간 뜨는 뉴스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