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산낙지·복어 먹는 동영상 보여줬더니…

"먼저 다가서라… 고민만 말고 부딪쳐라"

구글 안드로이드마켓 헬스분야 1위를 달리고 있는 운동관리 애플리케이션 업체 '눔'은 7개국에서 온 16명의 팀원으로 구성됐다. 정세주 대표(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는 "뉴욕이나 실리콘밸리나 개발자를 구하는 것은 다 똑같이 힘들다. 제품에 집중하면 인재들은 알아서 찾아온다"고 말했다.

뉴욕의 한인 벤처창업가 1세대로 꼽히는 정세주 ‘눔(noom·구 워크스마트랩스)’ 대표(33). 그가 2008년 선보인 운동량 측정 애플리케이션 ‘카디오트레이너’는 사용자가 조깅 등 운동을 할 때 거리, 속도, 칼로리 소모량 등 운동데이터를 저장해 보여준다. 개인 트레이너나 다름없는 이 앱은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은 뉴요커들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출시 후 곧바로 구글 안드로이드마켓 헬스분야 1위를 선점한 뒤 현재까지 누적 다운로드 수 1200만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온 힘을 다해 사람을 사귈 것”
정 대표가 이 앱을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구글의 수석 엔지니어였던 알텀 페타코프를 만나 함께 창업을 했기 때문이다. 알텀이 헬스장을 다니다 “재미있게 운동할 수 있는 걸 개발해보자”며 정 대표에게 제안했던 것이 적중했다. 정대표가 알텀을 만난 것은 2006년 혼자서 뉴욕에 온 뒤 영어도 제대로 할 줄 몰라 헤매던 때였다. 사촌동생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해 알텀을 우연히 만난 뒤 이메일을 썼다. 영어책을 뒤지면서 작문하느라 편지 한 통 보내는 데 몇 시간이 걸렸다. “처음 보는 외국인이랑 무슨 할 얘기가 있었겠어요. 처음에는 만난 게 즐거웠다고 시작했어요. 알텀이 한국의 산낙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길래 유튜브 영상을 찾아 보내줬습니다. 한국인이 복어를 먹는 것도 믿지 못하길래 또 얘기해줬죠. 그랬더니 ‘이렇게 진정성 있는 이메일은 오랜만이라서 고맙다고, 만나서 밥을 먹자’고 하더라고요.” 정 대표는 “낯선 땅에서 가만히 있으면 누구도 다가오지 않는다. 먼저 다가가서 인맥을 만들고 친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개발자든 동업자든 함께 일할 사람을 만나려면 모든 방법을 동원해 만나고 대화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고민할 시간에 부딪쳐 봐라”
정 대표가 뉴욕에 온 것은 국내서 하던 음반 관련 사업을 확장해보기 위해서였다. 그는 대학시절 해외 희귀음반을 들여와 국내에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음반을 사는 사람은 학생이 거의 전부였고, 그마저도 다른 음반사의 견제를 받아야 했다. 정 대표는 병역특례가 소집해제 된 지 닷새 만에 무작정 뉴욕행 티켓을 끊었다. 다니던 학교(홍익대 전자전기)도 포기했다. “재보고 계산하지 않았어요. 비행기 티켓 사고 결정한 거에요. 그냥 지른 거죠. 뉴욕에 온 날 눈이 엄청나게 내렸는데 1시간 40분을 기다려서 택시를 겨우 잡았습니다. ‘근처 가장 싼 모텔로 가달라’고 했죠. 다음날부터 신문을 구해 읽으면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정 대표는 “누가 봐도 편하게 성공할 수 있는 길은 없다. 일단 부딪쳐야 실패라도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실패는 죽는 것이 아니다”
뉴욕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음반 관련 일을 알아보던 중 한국 회사로부터 뮤지컬 사업 제안을 받았다. 미스사이공 등 뉴욕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한국에 오리지널로 들여오는 일이었다. 정 대표는 서툰 영어로 아카데미 상을 받은 감독들을 직접 찾아 다니며 설득했다.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가까스로 팀을 꾸려 일을 성사하려는 찰나 한국 회사에 부도가 난 것. 모아놓은 돈을 다 날리고 할렘가로 들어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당시 주눅 들면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딘가에 나의 실패담을 인정해주는 사업가가 있을 것이라고 저 자신을 설득했죠. 창업가들은 실패를 안타까워하기 보다 실패를 겪으며 새로운 성공가능성을 찾을 수 있어야 하는 법입니다.”


정 대표는 지난해 중소기업청 초청으로 한국에 왔다가 만난 청년들의 얘기도 꺼냈다. 창업을 하고 싶어 하는 청년들은 많았지만, 대부분 실패가 두려워 ‘한 번 해볼까’라는 생각에 그치고 있다는 것. “학생들이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라고 많이 물어요. 그건 ‘외모도 좋고 스펙도 있는데 결혼은 어떻게 하죠’를 묻는 것과 같아요. 경험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으니 제발 시작해보고, 열정을 쏟아보라는 거죠.”


뉴욕=이현수기자 hy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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