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혼 60대女, 친자식에 재산 주려다 '기절초풍' 왜?

↑조혜정 서연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

얼마 전 통계청이 발표한 2011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2011년 우리나라의 재혼은 3만7700건으로 전체 혼인의 11.5%를 차지하고 있다. 결혼하는 10쌍 중 1쌍은 재혼 커플이니 재혼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봐야겠다. 이처럼 재혼이 드물지 않은 시대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계부모와 계자녀간의 법률적인 관계에 대해서 재혼가정들도 잘 모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올해 환갑을 맞은 P씨는 얼마 전 위암진단을 받았다. 살 날이 오래 남지 않았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P씨는 자녀들에 대한 상속문제가 마음에 걸린다. 15년 전 첫 번째 남편과 사별한 P씨는 10년 전 아이들 둘을 데리고 역시 두 아이를 혼자 키우고 있었던 지금의 남편과 재혼했다.


재혼 후 P씨 부부는 같이 음식점을 운영해 돈을 제법 벌었으나 모은 재산을 모두 남편 명의로 했기 때문에 P씨 명의의 재산은 하나도 없는 상태다. P씨도 자기 명의 재산을 원했지만 남편이 "부부는 일심동체이니 내 것이 당신 것이다"라면서 들어주지 않았다. P씨는 너무 재산을 따지면 부부관계가 나빠질까봐 걱정돼 자기명의로 해달라는 주장을 강하게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 P씨는 만약 자신이 사망할 경우 남편 명의 재산에서 자신의 친자녀들이 상속을 받을 수 있는지 알고 싶다.

부부가 공동으로 축적한 재산을 남편 명의로 등기하는 우리의 관념은 2000년대에도 여전히 굳건한 듯하다. 이런 관행은 재혼인 경우에는 자녀들에 대한 상속과 관련돼 상당히 풀기 어려운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우리 법에서 상속은 원칙적으로 피가 섞인 혈족(血族)관계에서만 일어나고 혈족 관계가 아닌 관계에서는 일어나지 않게 돼 있다.(이런 원칙의 예외는 양자가 양부모의 재산을 상속받는 경우뿐이다)


재혼가정의 경우 계부모와 계자녀간의 관계는 피가 섞인 사이가 아니기 때문에 혈족이 아니다. 아무리 정서적으로 친부모처럼 가깝고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른다고 해도 법률적으로 보면 계부모는 부모가 아니라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배우자'에 불과하다. 결국 계자녀는 계부모의 재산을 상속할 수 없다.

따라서 P씨의 친자녀들은 계부 명의의 재산을 상속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P씨 소유재산이 있다면 이는 P씨의 친자녀들에게만 상속되고 재혼 남편의 자녀들에게는 상속되지 않는다.

그러니 만약 P씨가 친자녀들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싶다면 사망 전에 자기 명의 재산을 확보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P씨 자녀들은 어머니가 평생 노력한 대가를 전혀 받지 못할 수 있다. 오랜 기간 남편과 같이 고생해 재산을 모은 P씨와 그 친자녀들에게는 매우 억울한 결론이다.

물론 P씨 남편이 양심적인 사람이라면 오랜 기간 아버지와 자식으로 살아온 정과 P씨의 노고를 생각해 재산 일부를 P씨 자녀들에게 분배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경험적으로 보면 재혼으로 맺어진 계부모-계자녀 관계는 그 사이를 이어주는 사람이 사망하면 단절될 가능성이 높으니 P씨 남편의 양심은 그다지 기대할 것이 못 된다.

그러므로 재혼부부와 재혼을 염두에 두신 분들은 각자 전혼(前婚)자녀들에 대한 상속문제까지 염두에 두고 재산의 명의를 정해야 함을 기억하기 바란다. 순간의 선택이 몇십년 후를 좌우할 수도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