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혼녀가 전재산 꿀꺽' 50대男 자살시도 끝에…

ⓒ박상빈 기자

박용규(53)씨는 "상처를 치료중"이라고 했다. "어디를 다치셨냐"는 물음에 박씨는 " 다친 것은 마음"이라고 답했다. 박씨는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보현의 집'에 거주한다. 벌써 일 년 남짓됐다. '보현의 집'은 노숙인 쉼터로 노숙인의 재활과 자활을 지원하는 시립 종합복지시설이다.

지난해 9월까지만 해도 박씨는 강원도에서 목수로 일했다. 성실함을 인정받아 현장소장과 반장일을 겸하기도 했다. 첫번째 부인과 사별한지 17년만에 두 번째 반려자를 만났다. 남은 인생을 약속한 '그 사람'이 전재산을 가지고 사라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돈을 잃은 것보다도 '사람과 신뢰'를 잃은 데 따른 상처가 더 컸다. 자살시도만 몇 번을 했는지 모른다. 높은 곳에서 떨어져 봤지만 죽지 못하자 "죽을 팔자는 아닌가 보다"하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거리를 전전하다 노숙인 쉼터로 들어왔다.

박씨는 "보현의 집에는 나처럼 심리적 상처나 우울증이 깊어 술과 담배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배고프고 추운 것보다 마음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 노숙인들의 더 큰 문제"라고 짚었다. 박씨가 동료와 함께 지난 5월 조길형 영등포구청장에게 "음악활동을 해보고 싶다"고 건의한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악보 볼 줄도 몰랐지만"···밴드도 관객들도 모두가 행복한 공연

ⓒ박상빈 기자

드림플러스(Dream+)밴드. 지난 9월 전국 최초로 창단한 노숙인 밴드. 7명의 구성원 중 3명이 노숙인. 나머지는 사회복지사와 공무원들이다.


이들은 지난 22일 영등포 장애인복지관에서 2개월 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선보였다. 두 밴드에 이어 마지막 순서로 무대에 오른 이들이 이날 부른 곡명은 밥 딜런의 불후의 명곡 'Knocking on heaven's door', 영화 라디오스타에서 심금을 울린 '비와 당신', 샌드페블즈가 부른 1977년 대학가요제 대상 '나 어떡해' 등 3곡.

이날 객석을 채운 200여 명의 관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여기저기서 "잘한다"는 말이 터져나왔다. 한 60대 관객은 두 손을 높이 들어 박수를 치기도 했다.

'영등포구 장애인 사랑의 나눔의 집'에서 셔틀버스 기사로 활동하는 김복식씨(51)는 "이런 공연에 온 것이 처음이지만 분위기가 너무 좋다"며 "힘든 사람도 무언가 열심히 하면 이렇게 훌륭한 공연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낀 행복한 공연이었다"고 말했다.

김성아 영원중학교 치어리딩팀 '포커페이스' 회장(15)은 "재능기부 공연봉사로 이번 행사에 참여해 식전 행사를 꾸몄다"며 "이런 공연을 준비한 노숙인들이 대단하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공연 이후 무엇보다 감명을 받은 것은 무대에 올랐던 밴드 구성원들. 박씨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을 음악으로 풀어보자고 제안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니 앞으로도 계속 더 많은 동료들과 활동하고 싶다"며 웃음 지었다.

이날 기타리스트로 무대에 올랐던 김모씨(55)는 "삶이 너무 힘든데서 오는 스트레스가 많았는데 그 일부분을 음악을 통해 풀고, 나만의 공간을 구축해 갈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며 "악보를 볼 줄도 모르는 상태에서 어깨너머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강사에게 꼼꼼히 배워가는 과정을 통해 앞으로도 이런 활동을 더 해보고 싶다는 동기가 생겨났다"고 말했다.

◇다양한 자활프로그램에 후원금 및 예산 절실

무대에 올랐던 박씨는 "겨울철에 음식이나 난방비 관련한 기부금이 들어오고 노숙인 관련 예산이 배정되는 것으로 안다"며 "그런 것도 중요하지만 이처럼 다양한 재활프로그램을 독려하는 것이 노숙인들의 자립의지에 더 큰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보현의 집과 함께 이번 행사를 주최한 영등포구청의 한 관계자는 "지난 5월부터 노숙인 자활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번 공연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예산이 없어 지난 9월에야 공연이 확정됐다"며 "한국마사회에서 악기구입비 1800만원 전액을 지원했고 보현의 집이 장소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국 마사회에서 3번의 프레젠테이션을 한 끝에 지원금을 얻게 됐는데 앞으로 예산이 확보된다면 다음해 봄 벚꽃축제나 거리 공연봉사 등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향후 이와 같은 공연개최에 기업의 후원이 절실함을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