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통합검색
대한민국 지방자치 정책대상 배너
한눈에 보는 김영란법 '사랑과 전쟁' 법원 판결은?

'ㅋㅋ' 안보냈더니, 김 선배 曰 "화났니?"

단자음 극축약 전성시대…'ㅋㅋ' 'ㅎㅎ'가 스마트폰 시대에 '감정콘트롤타워'로 부상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최광 기자, 홍재의 기자 |입력 : 2014.09.11 05:57|조회 : 56513
폰트크기
기사공유
이모티콘을 쓰지 않은 대화는 종종 오해를 불러일으키곤 한다.
이모티콘을 쓰지 않은 대화는 종종 오해를 불러일으키곤 한다.
#1. 어느 일요일 오전 머니투데이 편집국. 김 차장이 후배 강 차장에게 메신저로 “오늘 회의 들어가니?”라는 문자를 보냈다. 강 차장의 답변은 “네”였다. 김 차장은 당황했다. 바로 며칠 전 다른 후배에게 받은 답변의 대부분이 “네.^^” “네, 선배 ㅎㅎ” 같은 극축약어와 기호들이었기 때문. 이 기호들은 정신사납고 어지러웠지만, 나름 상대방의 감정 상태를 일러주는 일종의 ‘신호’역할을 한 셈이었다. 며칠 뒤 강 차장을 다시 만난 김 차장은 “그 때 화났었니?”라고 되물었다. 강 차장은 “절대 그런 게 아니다”며 기호없는 문자에 대한 ‘해명’을 10분간 이어가느라 진땀을 흘려야했다.

#2. 40대 중앙부처의 한 과장은 문자에 이모티콘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한글 지킴이’다. 한번은 문자가 너무 짧아 마침표 몇 개 더 찍어 아들에게 보냈더니, 아들이 바로 의문을 표시하며 물었다. “아빠는 왜 마침표를 3개 찍어?” 기호 하나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는 젊은 세대에게 아빠가 해 준 설명은 “그냥”이었다.

바야흐로 단자음 극축약 전성시대다. ‘아빠가 방에’ ‘아빠 가방에’ 같은 단어 하나로 인생의 쓴맛을 보던 시대가 지나고 ‘ㅋ’ ‘ㅎ’ 같은 단자음 하나가 인생의 운명을 가르는 시대가 도래했다.

무엇보다 전자의 예는 논리적인 실수로 치부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후자의 예는 감정이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치명적 갈등의 원인으로 부각되기도 한다.

‘네’라는 답변에서 ‘!’를 찍으면 당당하고 활기찬 상대방의 감정을, ‘ㅠ’를 붙이면 억지 춘향이 같은 의무감을, ‘ㅋ’와 ‘ㅎ’을 이으면 무난한 긍정의 답변을 읽을 수 있는 게 스마폰시대 문자 송수신의 기본 법칙이다.

본격적인 스마트폰 시대를 맞아 극축약 단자음들은 이제 통용(通用)을 넘어 감정까지 읽고 제어하는 새로운 대면 관계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서로 얼굴을 보지 않아도, 상대방이 어떤 감정으로 얘기하는지, 어떤 기분 상태인지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증권사에 다니는 7년차 직장인 서모(30)씨는 “메신저로 소통하다보면 ‘네’에 어떤 부호를 붙이느냐에 따라 기분이 매우 달라진다”며 “아무런 부호가 없으면 무성의하다는 인상까지 받는다”고 했다.

사용자들은 이를 ‘부호의 재탄생’이라고 부른다. 단자음과 기호들로 구성된 부호는 사전적으로 규정된 의미의 범위를 넘어 새롭게 형성된 감정의 배열이라는 것이다.

이모티콘을 전혀 쓰지 않는 30대 직장인 김모씨는 여자 친구를 비롯해 다수의 지인들로부터 “화났어?”라는 질문을 여러 번 받았다. 그런가 하면, ‘ㅋㅋㅋ’를 문자에 늘 붙이는 습관을 지닌 대학생 이모(27)씨는 진지한 이야기 도중 이 기호를 붙여 선배한테 쓴소리를 듣기도 했다.

단자음 축약 중 가장 많이 사용되는 ‘ㅋ’는 그 수만큼 감정의 상태도 달라진다. 보통 두 번 붙여 사용하면, 대화를 계속 하겠다는 의지와 함께 대응을 잘 하고 있다는 ‘무난함’의 증거다. 5번 이상 쓰면 감탄사와 동의어고, 한번 쓰면 ‘이제 그만 대화하고 싶다’는 뜻이거나 ‘온화한 거절’의 의미로 수용된다.

국어사전에서 가장 적은 자음 중 하나로 소외받던 ‘ㅋ’은 스마트폰 시대에 가장 많이 쓰이는 자음으로 추앙받고 있다. 여기에 기표(記標)가 기의(記意)를 대신하며 ‘감정 콘트롤 타워’ 역할까지 수행한다.

이인화(본명 류철균·디지털미디어학) 이화여대대학원 교수는 “부호화된 이미지는 과거 ‘노이즈’로 보는 경향이 강했으나, 최근에는 ‘보이스’로 보는 인식이 강해졌다”며 “이는 스마트폰 등을 통해 말을 주고 받을 때 지시적 대화보다 감정 표현에 더 어울리는 표현 수단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ㅋㅋ' 안보냈더니, 김 선배 曰 "화났니?"


◇ 95%가 아는 ‘ㅋㅋ’ ‘ㅎㅎ’… '습관적 >감정 표출> 경제적 표현'순

‘ㅋㅋ’ ‘oㅋ’ ‘ㅎㅎ’ 같은 감정형 이모티콘에 대해 우리나라 대중들은 얼마나 많이 인식하고 사용하고 있을까. 머니투데이는 오픈서베이와 함께 10~60대 500명을 대상으로 ‘이모티콘 의사소통 행태’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ㅋㅋ’ 등 극축약어를 알고 있는 응답자는 95.0%에 달했고, ‘자주 사용하느냐’는 질문에는 85.6%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극축약어로는 ‘ㅋㅋ’가 72.0%로 1위를 차지했고, ‘ㅎㅎ’(18.5%) ‘ㅇㅇ’(4.3%) ‘ㅠㅠ’(4.0%) 순이었다.

극축약어 사용이유에 대해선 33.5%의 응답자가 ‘습관’이라고 답했고, 26.9%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라고 응답했다. ‘표현을 경제적으로 하기 위해서’라는 응답은 19.5%에 달했다.

극축약어로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긴 적이 있느냐는 물음에는 85.7%가 ‘거의 없다’고 답한 반면, ‘윗세대와 아랫세대와 오해가 생긴 적이 있다’는 답변은 8.8%였다. ‘오해에 대한 구체적 사례’를 묻는 주관식 질문엔 “ㅋㅋ를 비웃은 듯한 의미로 들을 때” “진지한 대화 중에 습관적으로 사용해 분위기를 망치거나 가볍게 비쳐질 때” “반말로 받아들일 때” 같은 답변들이 나왔다.

‘극축약어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항목에선 응답자 45.8%가 ‘언어 표현의 일부다. 표준어의 지위를 획득할 것’이라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반면, 40.4%는 ‘특정 세대만 사용하는 언어표현이다. 사라지진 않지만 널리 퍼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조심스러운 답변을 내놓았다. 13.8%는 ‘한 때의 유행이다. 곧 사라질 것’이라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4
4
'ㅋㅋ' 안보냈더니, 김 선배 曰 "화났니?"

◇모든 세대 이해한다면 간편한 기호도 ‘언어’ 규범으로 수용 필요

설문조사에서 한 10대 응답자는 주관식 질문에 대해 “내 또래 청소년들의 축약어사용이 도를 넘은 것 같다”며 “지하에 계신 세종대왕이 노할 일이 분명하다. 자랑스러운 한글이 오염되고 있어 발빠른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축약어 사용이 갈수록 빈번해지고, 거역할 수 없는 대세로 자리잡은 이 흐름을 우리는 이제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권재일(언어학) 서울대 교수는 최근 문자를 주고받다 상대방으로부터 ‘oㅋ’라는 답변을 받았다. ‘예. 알았어요’보다 ‘oㅋ’가 주는 짧고 간편한 기호는 국화순화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하진 않지만, 미디어의 시공간 제약을 극복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권 교수는 “이러한 표현이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 언어는 실패한 것”이라며 “언어가 자리를 잡기위해서는 특정 세대, 계층에서만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넓은 구성원들 사이에서 기호로서 가치가 성립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실과 동떨어진 규범은 신뢰성을 잃기 쉽다는 것도 축약어의 범용성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모든 사람들이 짜장면이라고 하는데, 자장면이라고 고수할 수는 없기 때문. 권 교수는 “짜장면을 표준어로 고치는데 2년이 꼬박 넘게 걸렸다”며 “규범언어를 준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든 사람이 편안하게 쓰고 있다면, 그것을 규범으로 받아들이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는 표시인 'ㅠ'의 경우 여성이 남성보다 사용 빈도수가 1.5배 가량 높다/사진제공=스캐터랩
우는 표시인 'ㅠ'의 경우 여성이 남성보다 사용 빈도수가 1.5배 가량 높다/사진제공=스캐터랩

◇ 게임+문자시대를 거쳐 완성된 감정 '축약어'…‘문어’가 아닌 ‘구어’의 역습!

스마트폰에서 줄임말과 이모티콘이 유행하게 된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 시작된 휴대폰 문자와 PC온라인 게임 덕분이다. 휴대폰 문자 시대에는 80자 안에 모든 말을 함축해 넣어야했기 때문에 줄여쓰는 말이 인기였다. 종로3가를 ‘종삼’이라고 하거나 미스터피자를 ‘미피’라고 줄이는 등 필기의 경제성이 중요했던 것.

온라인 게임으로 가면, 이모티콘의 역사를 한눈에 읽을 수 있다. ‘리니지’ 스타크래프트‘ 같은 인기 게임에서 지금 즐겨쓰는 이모티콘의 형태가 처음 태동한 것이다. ‘ㅋㅋ’의 경우 초기에는 ‘크크크’ ‘케케케’ 등 모음과 함께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이후 ‘ㅋ ㅑ ㅋ ㅑ’처럼 자음과 모음을 분리했고 결국 자음만 쓰는 형태로 변했다. 게임 특성상 신속한 진행을 위해 '11111111'(1시 공격) 등 지시어가 나타나거나 GG(굿게임) 등 줄임말도 생겨났다.

2010년대 스마트폰이 본격 유입되고 모바일 메신저가 도입되면서 문자시대와 PC채팅이 결합된 새로운 대화 패턴이 생겨났다. PC메신저를 통해 익힌 구어체 언어 습관과 문자시대를 거치며 배운 줄임말의 형식이 스마트폰 시대에 감정이 개입된 축약어의 형태로 나왔다는 것이다.

스마트폰 세대는 또 영상을 앞세운 시대이기도 하다. 이인화(본명 류철균·디지털미디어학) 이화여대대학원 교수는 “영상 시대가 되면서 문자적 문식성이 보조가 되고 시각적(이미지) 문식성이 주류가 되고 있다”며 “과거를 생각하면 이는 언어파괴지만 한편으로는 언어혁명으로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이어 “자음으로만 형성된 축약어 등 부호화된 이미지는 이제 구어체 흐름으로 바뀌는 형태로, 노이즈가 아닌 보이스로 보려는 움직임이 맞물리면서 감정을 표현하는 언어로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며 “낡은 언어가 사라지고 새로운 언어가 들어오는 시대를 맞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고금평
김고금평 danny@mt.co.kr twitter facebook

사는대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대로 사는 기자

이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 0%
  • 0%


오늘의 주요뉴스



베스트클릭

많이 본 뉴스